▲영화 <올랜도>의 한 장면
동림영화
임신한 올랜도는 폭탄이 떨어지는 전쟁터를 온 힘을 다해 뛰어간다. 죽음의 공포가 사방에서 터져 오르지만 그녀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살아남았고, 예쁜 딸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며 또한 '작가'가 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에게서 선물 받은 저택은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지만 지금의 올랜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정적이고 행복해 보인다.
올랜도는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400년을 살아왔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몸이 바뀌었고, 여성으로 더 긴 시간을 살았다. 그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지만 여성일 때 그의 성별이 더욱 강하게 인식된다. 이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압력에 의한 것으로, '여성'이 마치 하나의 장애처럼 작용해 주체적인 삶을 산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시대가 변하면서 인식도 변화하지만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올랜도>는 신비로운 판타지 작품인 동시에 지난 400년 역사 동안의 '남성성', '여성성', 그러니까 '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유머러스하게 해석한 보고서다. 이 영화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 우리가 각각의 성에 부여한 당연한 역할을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거부한다.
영화에서 엘리자베스 1세를 연기한 사람은 쿠엔틴 크리스프라는 남자 배우다. 그는 20세기 초 보수적인 영국사회에서 화장을 하고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과감하게 드러냄으로써 많은 젊은 예술가들과 성소수자들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 <올랜도>의 한 장면동림영화
이 영화는 기묘한 힘으로 보는 사람을 끌어당긴다. 원작이 가진 예술성과 간결한 각색, 여러 대가들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영상과 더불어 틸다 스윈튼의 신비로운 매력 덕분이 분명하다. 올랜도에게 결정적 순간이 닥칠 때마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녀의 두 눈 속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이 영화를 찍기 전까지 그녀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데릭 저먼 감독의 뮤즈로서 그의 문제작들에 주로 출연했으며 대중적으로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배우였다.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유명세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좋은 영화를 보는 안목, 예술을 대하는 열린 태도가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현재 그녀는 짐 자무쉬, 웨스 앤더슨, 루카 구아다니노, 그리고 봉준호까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거장들의 러브콜을 받는, 가장 바쁜 배우 중 하나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버지니아 울프가 살아서 이 영화를 본다면 틸다 스윈튼의 연기를 보고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다. 이 소설에 영감을 준 자신의 절친한 친구(연인이었다는 소문도 있다), 비타 색빌웨스트를 떠올릴까? 아니, 어쩌면 틸다 스윈튼에게 영감을 받아 또 다른 소설을 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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