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이전까지 한국의 아티스트들은 사전심의를 통해 창작의 자유를 제한당했다. 이 부조리에 저항한 이가 바로 정태춘이다.
문화기획봄
- 임 : "공윤위의 사전 검열에 대해 특히 민감하셨던 이유가 있습니까."
정 : "첫 앨범 만들 땐 '어떤 음악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막 제대해서 서울 상경한 후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만든 음악이었죠. 그런데 공윤위에 가사를 제출했더니 '출처를 밝혀 달라'는 겁니다. 제 가사를 표절로 본 것이지요. '시인의 마을'의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도 안 된다고 해서 '생명의 친구 자연의 친구'로 가사를 고쳤습니다. 당시 저는 전업 뮤지션을 생각하지 않았던 터라 수정 과정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서라벌 레코드가 출판사 성음사로부터 출발했기에, 사장님께서 다 고쳐주셨지요.
그 이후에도 계속 가사가 심의에 걸렸습니다. 때로는 소명서를 써서 억울함을 표해보기도 하고, 정 안되면 공윤위에 직접 찾아가서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심의 위원 분들 중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가만히 있는데 유독 작곡가, 음악 하는 분들이 '노래를 꼭 이런 식으로 만들어야 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소명을 하면 봐주거나 고치거나 하며 심의를 통과했지요. 계속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공윤위 사무국장과 친분이 생겨서 '정 형, 나하고 같이 고칩시다' 하며 가사를 수정했던 기억도 납니다.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곡들은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이야기 노래 마당'이라는 제목의 소극장 순회 콘서트에서 부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토크 콘서트처럼 관객 분들 앞에서 기타 두 대 두고 공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자리였는데 저에게는 굉장한 활로였지요. 그렇게 참고 참다 '아, 대한민국'에서 본격적으로 싸움을 시작하게 됩니다. '나는 내 노래를 발표해야 한다. 심의를 넘어서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심의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지요."
- 임 : "심의 철폐 운동의 시작이 그때였군요."
정 : "1990년대 초부터 심의 철폐를 주장하고 저항을 시작했죠. <아, 대한민국> 이후 1993년의 <92년 장마 종로에서>앨범 역시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자 다시 한번 기자회견을 열고 이 제도의 부정성을 알렸습니다. 결국 불법으로 발표하게 됐고요."
정태춘이 불법으로 발표한 <아, 대한민국>과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한국대중음악을 대표하는 명반이다. 대한민국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아, 대한민국'을 보라. 2019년의 20대 청년도 이 노래를 들으며 '세월이 흘렀는데 어쩜 이렇게 세상이 똑같지?'라며 한숨을 쉰다.
정태춘은 변하지 않는다. 언젠가 교육방송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혁명을 꿈꾸고 있다...'. 그 어떤 뮤지션도 라디오에 출연해 '혁명'을 논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투쟁의 기지를 40년간 이어가는 뮤지션은 정태춘이 유일하다. 그는 국보 뮤지션이다.
- 임 : "결국 공연 사전 심의 제도는 1996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으며 6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벌써 20년이 더 지났네요."
정 : "흥미롭게도 저의 첫 앨범에 대해서는 정부 당국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 92년 장마 종로에서 >를 내며 기자회견도 하고, 불법 발매를 할 땐 바로 기소되었습니다. 헌법소원을 청구했죠. 이후 6년이 지나서야 국회에서 개정안이 만들었다고 문화관광부(현재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나와달라고 합니다.
사무실에 전화기 하나 갖다 놓고 '국회 상임위에서 이 안을 두고 최종 논의를 하고 있다. 오케이 한 말씀만 해달라...'고 하기에 법 조항을 봤더니 이게 완전히 없어진 게 아닙니다. '필요에 따라서 심의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여전히 있었습니다.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죠. 마지막까지 정부는 노래에 대한 심의를 유지하고 싶었던 겁니다. 소위 '국민들의 문화생활에 어떻게든 개입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정태춘 박은옥 40주년을 맞아 젊은 세대도 정태춘의 음악을 알아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두 가지를 강조하자. 우선 한국을 대표하는 연가 '사랑하는 이에게'를 쓰고 부른 사람이 정태춘이다. 동시에 1996년 헌법재판소 소원을 청구해서 '사전심의 철폐'를 이끌어낸 사람 역시 정태춘이다. 그는 충실한 예술가요, 사회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현실을 바꾸려고 했던 실천주의자였다. 정태춘은 '예술가의 완성형'이다.
▲정태춘 박은옥의 음악 여정 40주년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의 <정태춘 박은옥 데뷔 40주년 기념전 : 다시, 건너간다>를 통해 전시 중이다.문화기획봄
- 임 : "2012년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를 향한 환대를 보며 정태춘과 박은옥을 기다려온 분들이 이렇게 많구나, 감격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그냥 노래가 속에서 우러나오니까 썼어요. 운도 좋았고, 마음이 움직이니까 몸도 같이 움직였어요. '이것은 아니다'라 생각한 건 자연스럽게 '아니다'라고 말했고요. 그렇게 제 소신과 내면의 생각대로 창작하고 행동할 수 있던 것도 행운이에요."
- 임 : "말씀하신 대로 정태춘의 음악 인생 40주년을 맞아 다양한 플랫폼이 만들어졌습니다. '정태춘 박은옥 데뷔 40주년 기념 사업회'가 발족했고 전국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전시회는 물론 다큐멘터리 영화도 촬영 중이고, 기념 앨범도 발매됩니다."
정 : "올 한 해 나의 콘텐츠를 다 공개할 예정입니다. 영화는 내년 여름 쯤 개봉 예정으로 촬영 중입니다. 기념 앨범엔 두 곡의 신곡과 과거 발매한 '사람들'의 가사를 바꿔 재수록했습니다. 신곡 '연남, 봄 날'과 '외연도에서'가 있고요. 나머지는 이미 발표했지만 다시 불러보고 싶은 젊은 시절의 노래들로 채워집니다. 또 시집 두 권과 노래 에세이 책 등이 나왔고 <붓글> 전시도 하고 있고..."
- 임 : "정새난슬은 2016년 단독 앨범 <다 큰 여자>를 통해 호평을 받았는데요. 지금도 음악 활동을 하고 있나요?"
정 : "음악은 거의 접은 상태입니다. 그림 그리고 글 쓰고 책을 내고 있죠. 본인은 지금 자신을 뮤지션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첫 앨범을 들어보고 '너 다른 거 하지 말고 음악만 하라!'고 칭찬할 정도로 결과물이 좋았는데 시장의 반응이 좋지 않아 안타까웠습니다."
- 임 : "40년 긴 커리어 중 정태춘의 음악적 성과를 종합하는 단 한 장의 앨범을 꼽아주신다면."
정 : "단연 가장 최근의 <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입니다. 제 이야기, 내용도 훌륭하지만 음악으로의 성취도 가장 좋았습니다. 음악적으로나 가사나 가장 완성도 높은 앨범으로 또, 마음 짠한 애정으로... 아마도 모든 창작자들이 그럴 거예요. 가장 마지막 작업, 거기에 가장 애착이 가지 않을지..."
- 임 : "앨범의 마지막 파트엔 '92년 장마, 종로에서'가 다시 실려있습니다."
"그 곡이 1993년 발매됐는데 당시 편곡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1절부터 강하게 치고 나오기보다 잔잔히 시작하면서 분위기를 고조하고 싶었어요. 더불어 오늘날 젊은 세대들에게 이 노래를 헌정하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 임 : "음악하신 지 정확히 40년입니다. 향후 정태춘의 음악 세계를 예고해주십시오."
정 : "40주년 콘서트를 11월까지 진행합니다. 그렇게 방대했던 40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영화가 나오면 관련해서 언론에 좀 노출될 수 있겠지만 그 정도로 끝낼 겁니다. 그리곤, 마케팅이 없는 작은 기획 공연이나 초청 공연 등으로 생계를 위한 직업으로서의 가수 활동은 계속 하겠지요. 그러나, 새로운 창작과 앨범은 못할 것 같고요. 내 안의 이야기는 <붓글>로 계속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는 4월 12일부터 4월 29일까지 < 정태춘-박은옥 40주년 기념전 : 다시, 건너간다 >를 진행하고요. 영화가 개봉하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겠지요. 마지막으로는 조용히 살겠다, 하는 것이 제 계획입니다. 로맨티시스트로의 음악을 했다면 창작 작업을 계속하는데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제 노래는 세상과의 관계를 통해 나온 것이지요."
정태춘 박은옥의 40주년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기록되고 있다. 이날 토크콘서트에 참여한 영화팀 관계자는 "귀와 눈이 즐거운 음악 다큐멘터리로 콘셉트를 잡고, 전체 상영 시간 95분 중 80분 이상을 음악으로 채워 정태춘의 음악 세계와 존재, 행보를 의미 있게 담아낼 기회가 될 것이다"라는 계획을 공개했다. '어떤 노래가 영화에 수록되면 좋을까'라는 질문에 정태춘은 "그것은 영화 쪽의 일"이라며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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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20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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