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레슬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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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가 기분 좋게 자신의 훈장과도 같은 상처들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져도 관중들의 함성이 들리면 모든 고통을 잊게 된다고 그는 웃으면서 말한다. 그 함성소리를 쫓아 수십 년을 살아왔으나 결국 남은 것은 병든 육신뿐이다. 지금도 길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팬들이 있을 만큼 그의 과거는 대단한 것이었지만 영화는 그 흔한 회상 장면 하나 없이 오로지 현재에 집중한다.
거칠고 불안한 카메라(핸드핼드)는 랜디에게 완전히 밀착해 그의 뒤를 쫓는다(영화를 보는 내내 투명인간이 되어 그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다). 성실하고 집요하게 관객의 시선을 대신하는 카메라 덕분에 관객은 랜디의 현재를 보는 것만으로도 어제의 영광과 추락을 보지 않고도 실감할 수 있다.
숙취로 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희망적이었던 스테파니와의 관계 회복은 실패로 끝나고, 스테파니의 경멸어린 시선에 랜디는 좌절한다. 그에겐 그저 실수였을 뿐이지만 스테파니에겐 평생 반복되어온 실망과 상처였던 것이다. 그는 다시 혼자가 되고, 유일하게 자신을 받아주는 링 안으로 돌아간다.
링 안과 링 밖은 엄연히 다른 세상이다. 두 개의 이름, 두 개의 세상. 안과 밖의 밸런스를 맞추지 못한 랜디의 삶은 그를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현실의 삶이 준 상처가 과연 링 위에서 받는 환호로 치유 될 수 있을까? 목숨을 담보로 경기를 치르는 랜디. 부들부들 떨리는 두 다리로 링 위에 선 땀에 젖은 그의 모습에서 절규가 느껴지고, 쏟아지는 조명과 관중들의 함성을 받으며 그가 높이 날아오른다.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랜디의 삶을 모르는 누군가는 '노장은 살아있다'며 그의 경기에 박수를 보낼 것이지만 그의 삶을 목격한 관객들은 착잡한 마음에 한동안 괴로울 것이다.
성형 부작용으로 완전히 변해버린 그의 외모, 그러나
▲<더 레슬러>의 한 장면NEW
관객이 랜디의 삶과 고통에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캐릭터와 그를 연기한 미키 루크의 개인사가 묘하게 닮아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그는 배우로서도 스타로서도 굉장한 인기를 누렸고, 그의 이름은 섹시한 배우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연기 보다 복싱에 집중하면서 대중들은 그의 존재를 서서히 잊게 되었고, 그의 자리는 다른 미남 배우들로 채워지게 된다.
20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의 이름이 대중들의 입에 다시 오르내리게 된 것은 성형 부작용으로 인해 완전히 변해버린 외모 때문이었다. 과거의 아름다웠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사람들은 망가진 외모에서 그의 망가진 인생을 상상했다. 안타까운 마음과 별개로 그가 재기에 성공하고 과거의 영광을 누릴 수 있을 거라고 믿기는 힘들었다.
그의 외모가 하나의 캐릭터로서 오히려 빛을 발하게 된 것은 <씬시티>(2005)를 통해서다.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의 장르적 특성상 그의 외모는 장점이 되었고, 관객들은 이를 그만의 개성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배우로서 그의 존재감이 폭발하게 된 것은 <더 레슬러>에서다. 미키 루크 개인의 굴곡진 인생이 랜디라는 캐릭터에 설득력을 더하면서 배우와 배역의 완벽한 조합을 보여준 영화는 2008년과 2009년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으며 이후, 미키 루크는 젊은 시절 전성기 때 이상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대중들은 이제 그의 외모에 집중하지 않는다. <나인 하프 위크>에서의 치명적인 미소 이상으로 관객들은 <더 레슬러> 속 미키 루크의 초라한 뒷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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