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한국 상업영화 관객수 2위(1600만)를 기록한 영화 <극한직업>의 탄생 이전에 EBS <극한직업>이 있었다.

배우 류승룡은 영화 <극한직업>이 개봉하기 전에 EBS <극한직업> 제작진을 찾아 내레이션을 하겠다고 제안까지 했다고 한다. 만일 성사됐다면 흥미로운 조합이었을 것 같지만 배우이자 성우 윤주상이 2017년부터 <극한직업>의 내레이션을 잘 해내고 있어 정중히 고사했다고 한다.

EBS <극한직업> 심예원 피디는 우스갯소리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영화가 이렇게 잘 될 줄 몰랐고 후회했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영화 <극한직업>의 제작사 어바웃필름의 김성환 대표 역시 한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으로 <극한직업>을 꼽았을 정도다.
 
 <극한직업>의 한 장면

<극한직업>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와 교양 프로그램, 단순히 '극한직업'이라는 이름이 같다는 이유에서 얽힌 해프닝으로 시작했지만 사실 EBS <극한직업>의 존재감은 그 이상이다. 배우들은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생소한 직업을 연기할 때 <극한직업>을 보고 참고한다. 이성민 배우가 대표적이다. <골든타임>(2012)에서 의사 역할을 맡았을 때 그는 <극한직업>을 보고 참고해 연기했다고 한다. 개그맨 유병재 역시 SNL의 한 코너인 '극한직업'을 맡으면서 EBS <극한직업>을 패러디해 인기 코너로 만들었다.

2008년 2월 27일 조기잡이 현장을 첫 방송으로 내보낸 것을 시작으로 EBS <극한직업>은 10년을 한결같이 직업의 세계를 치열하게 포착해왔다. 비록 10년 동안 촬영 카메라의 기술은 진보했을지라도 몇 개월씩 걸려 섭외를 진행하고 친해지고 직업인을 카메라에 담아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과정은 10년째 그대로다. 8년째 <극한직업> 연출을 맡고 있는 KP커뮤니케이션의 노윤구 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EBS '극한직업'을 만드는 제작진이 한 군데 모였다. EBS 심예원, 박성오 CP, KP커뮤니케이션 노윤구 팀장, 앤미디어 임우식 본부장이 지난 2월 말 일산 EBS 사옥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EBS '극한직업'을 만드는 제작진이 한 군데 모였다. EBS 심예원, 박성오 CP, KP커뮤니케이션 노윤구 팀장, 앤미디어 임우식 본부장이 지난 2월 말 일산 EBS 사옥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 EBS

 
"가자마자 촬영은 못한다. 가면 이틀 정도는 계속 친해지기를 시도한다. 처음에 가면 찍지 말라고도 하고 욕도 하신다. 옆에서 일도 같이 도와드리면서 친해지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어느 정도 되면 그 분들도 마음의 문을 연다. 그때부터 신경 안 쓰고 자기 일을 하시면서 슬쩍 물어보곤 한다. 한마디씩 나오는 것들이 있는 것이다." (노윤구 팀장)

"방식도 솔직하다. 많이 찍어서 많이 편집한다. 현장성이 큰 프로그램이지 자막을 갖고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장난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럼에도 매번 수요일 1위나 2위를 한다. 그 힘이 뭘까. 어쩌면 직업의 현장을 담백하게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기교를 부리거나 왜곡하지 않고 그 과정을 객관적이고 담백하게 보여주려는 우리의 노력이 전해지는 것 같다." (심예원 EBS 피디)
 
 EBS '극한직업'을 만드는 제작진이 한 군데 모였다. EBS 심예원, 박성오 CP, KP커뮤니케이션 노윤구 팀장, 앤미디어 임우식 본부장이 지난 2월 말 일산 EBS 사옥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EBS '극한직업'을 만드는 제작진이 한 군데 모였다. EBS 심예원, 박성오 CP, KP커뮤니케이션 노윤구 팀장, 앤미디어 임우식 본부장이 지난 2월 말 일산 EBS 사옥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 EBS

 
간혹 불만을 토로하는 시청자가 있어도 <극한직업>의 제작진들은 그저 감사하다. 컴플레인(complain) 전화가 오면 임우식 앤미디어 피디는 다시 전화를 걸어서 시청자와 소통한다.

"시청자분들께서 꼭 '아니 어떻게 <극한직업>에서 이럴 수가 있어요?'라고 말씀하신다. 프로그램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전제된 상태로 불평을 하시는 거다. 당시 상황을 설명드리면 '어려운 거 다 아니까 좀 더 잘 만들어주세요'라면서 잘 정리가 된다. 불평을 하면서도 애정이 있다는 게 느껴진다. 사실은 불평하는 게 아니라 잘 보고 있으니까 잘못하지 말라고 계속 잘 만들라는 격려 전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앤미디어 임우식 피디)
  
 EBS '극한직업'을 만드는 제작진이 한 군데 모였다. EBS 심예원, 박성오 CP, KP커뮤니케이션 노윤구 팀장, 앤미디어 임우식 본부장이 지난 2월 말 일산 EBS 사옥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EBS '극한직업'을 만드는 제작진이 한 군데 모였다. EBS 심예원, 박성오 CP, KP커뮤니케이션 노윤구 팀장, 앤미디어 임우식 본부장이 지난 2월 말 일산 EBS 사옥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 EBS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많이 배운다. 내가 담당자이지만 시청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BS가 교육방송이지만 억지로 가르치려고 하면 잘 안 받아들여진다. 오히려 교육적인 면에서 '가르쳐줄게, 외워봐'가 아니라 교양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직업을 아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본다." (심예원 피디)

방송이 나가고 나면 시청자들은 시청자 게시판에 방송에서 나온 업체를 알려달라는 문의를 해온다. <극한직업> 시청자 게시판에 있는 대부분의 게시글이 업체를 문의하는 내용이다. <극한직업> 제작진들은 모두 손수 댓글에 답글을 달아준다.

"시청자분들이 궁금해하시지 않나. 업체들이 저희 <극한직업> 촬영을 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니 답글을 달아 이들의 정보를 알려드리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다른 프로그램의 경우 아예 게시판을 통해 업체명을 공개하기도 하지만 업체를 홍보하는 게 주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하나 답글을 다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노윤구 팀장)

<극한직업> 제작진의 고충
 
하지만 아이템 회의를 시작으로 업체 섭외, 촬영, 편집, 방송에 내보내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구간 구간 어려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진짜 극한직업은 EBS <극한직업> 피디들'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피디들이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 건 업체 섭외다.

우선 해당 아이템이 얼마나 시의적절한지, 해당 업장이 안전 규정을 지키는 현장인지를 판단한 뒤 해당 제품과 관련이 된 업체를 섭외한다. 시의적절한 아이템이란 예를 들면, 겨울철에 '어묵공장'을 섭외하는 센스를 발휘하는 식이다. 하지만 조사를 다 하고 섭외 시도를 해도 어김없이 10건 중에 8건은 거절하는 전화를 받는다는 게 <극한직업> 제작진의 설명이다. 2년 가까이 걸려서 섭외가 되는 경우까지 있다.

왜 이렇게 어려울까? 현장의 피디들은 '극한직업'이라는 이름이 매력적이나 이 때문에 정작 섭외가 힘든 경우가 많다고 덧붙인다. '극한직업'이라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 주로 힘든 현장을 다룬다는 인식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극한' 업체가 아니"라면서 촬영을 고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럴 때 <극한직업> 제작진이 나서서 시간하고 노력을 들여 편견을 깨면서 섭외 작업에 들어간다. 때로는 섭외를 하다가 '쌍욕'을 먹기도 한다. <극한직업> 방송 초기에는 열악하고 힘든 곳을 많이 찾아다녔다면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극한직업>이 5년 정도 지난 시점인 2013년에는 1% 정도의 시청률로 시청자들이 극한 노동현장을 다루는 것에 있어 식상해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제작진에서 어떻게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세상에 극하지 않은 직업이란 없다'는 생각 아래 조금 더 아이템을 생활밀착형으로 찾기 시작했다. 어렵고 힘들고 열악한 곳만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관심 있는 게 뭘까를 고민하면서 아이템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2016년에는 평균 시청률이 2.9%까지 올랐다." (노윤구 팀장)
 
"생활밀착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옛날 같았으면 낭떠러지에서 약초를 캐거나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의 힘든 노고를 주로 다루었다면 요즘은 찐빵이나 어묵, 소시지를 만드는 사람들을 다룬다는 뜻이다. 아이템이 크진 않기에 이걸 무슨 '극한직업'에서 다루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시청자들도 만족하고 현장감도 충분히 줄 수 있는 아이템이 되더라. 마침 시청률도 잘 나왔다." (박성오 EBS 피디)

또 제작진이 원하는 촬영일자와 업장이 원하는 날짜가 다른 경우도 있다. 제작진은 최대한 바쁠 때, 즉 성수기에, 바쁘고 생생한 현장을 담고 싶어한다면 정작 업장에서는 "바쁠 때 오지도 말라"(임우식 피디)고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EBS '극한직업'을 만드는 제작진이 한 군데 모였다. EBS 심예원, 박성오 CP, KP커뮤니케이션 노윤구 팀장, 앤미디어 임우식 본부장이 지난 2월 말 일산 EBS 사옥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EBS '극한직업'을 만드는 제작진이 한 군데 모였다. EBS 심예원, 박성오 CP, KP커뮤니케이션 노윤구 팀장, 앤미디어 임우식 본부장이 지난 2월 말 일산 EBS 사옥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 EBS

 
"하나하나가 다 생업이고 매출에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에 오징어잡이 배 위에서 한 서너 명이 카메라 잡고 있으면 안 된다. 제작 현장 자체가 그 사람들의 작업 공간이기 때문에 인원이 많이 들어가는 걸 원하시지 않는다. 항상 설명드릴 때 많은 인원이 절대 가지 않고 피디하고 조연출이 작은 카메라 한 대씩만 들고 최대한 성가시지 않게 찍겠다고 설명을 드린다. 만일 여기서 한 명이 더 들어간다면 걸리적거린다면서 섭외가 안 될 수도 있다." (임우식 피디)

어렵사리 섭외에 들어가면 촬영하는 건 좀 수월해야 하는데 촬영하는 것 역시 만만치 않다. 위험한 현장을 담는 날에는 촬영도 덩달아 위험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현장에 있는 작업자들이 정작 <극한직업> 제작진들에게 '너희들이 '극한직업'"이라고 말을 거는 아이러니한 경우도 있다.

"사실 <극한직업> 피디가 '극한직업'의 대표격이다. 작업자랑 같이 절벽을 타기도 하면서 같은 시점에서 촬영을 하기 때문이다. 이분들, 섭외만 퇴짜맞는 게 아니라 보험을 들려고 하면 프로그램 이름 물어보고 보험 회사에서 가입도 안 해준다." (박성오 피디)

"원래는 2박 3일로 배를 타러 나가는 일정을 따라갔는데 고기가 너무 많이 잡힌 것이다. 고기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육지로) 돌아오지 않으셨다. 그래서 열흘을 갇혀서 나오지를 못했던 적도 있었다. 그 분들에게는 그게 생계이고 이때 안 잡으면 손해를 보니까 촬영이고 뭐고 없는 것이다. 피디들이 거의 열흘동안 육지로 나오지 못했다.

되게 많은 피디들이 <극한직업> 현장을 거쳐갔다. 고척돔 지붕을 만드는 방송을 찍고 한 피디가 그만뒀다. 눈이 내리는 날이었는데 작업하시는 분들에게도 미끄러웠던 현장이었다. 그거 찍고 난 다음에 '나는 좀 더 오래 살아야 할 것 같다'면서 그만뒀다. 또 다른 피디는 필리핀 광산 현장에서 다이너마이트를 만난 피디도 그 편을 마지막으로 그만두었다." (노윤구 팀장)


또 화면이 잘 나오게 만들려 욕심을 내다 보니 장비가 망가지는 일도 있다.

"한 번은 고프로라는 40만 원짜리 카메라로 잣나무를 제대로 담아보려고 장대 끝에 매달아서 휘둘렀는데 세 번 휘두르니 아작이 나더라. 또 멧돼지 사냥하는 개의 시점을 담으려고 개 목에 카메라를 걸었는데 개가 갔다 오니 카메라가 없어진 적도 있다. 2박 3일 찍으면 카메라가 한 대씩은 날아간다." (임우식 피디)

'극한직업인'인 <극한직업> 피디들이 일하는 일터를 취재하고자 현장에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2월 말 피디들과의 대면 인터뷰를 마치면서 전달했다. 피디들은 업체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서 역시 조심스러워 했다. 업체로부터 온 최종적인 답변은 '거절'이었다. 대신 피디들은 현장 사진을 보내왔다. 아래는 그 사진이다.
 
 EBS '극한직업'에서 진짜 극한직업은 EBS '극한직업' 피디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들은 '극한직업'의 현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카메라를 먼저 들이댄다.

EBS '극한직업'에서 진짜 극한직업은 EBS '극한직업' 피디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들은 '극한직업'의 현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카메라를 먼저 들이댄다. ⓒ EBS

 
 EBS '극한직업'에서 진짜 극한직업은 EBS '극한직업' 피디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들은 '극한직업'의 현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카메라를 먼저 들이댄다.

EBS '극한직업'에서 진짜 극한직업은 EBS '극한직업' 피디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들은 '극한직업'의 현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카메라를 먼저 들이댄다.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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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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