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스틸컷
넷플릭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발생한다. 왜 어떤 학자나 전문가도 이들의 주장에 반박하지 않는 것인가.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지 못할 만큼 '지구는 둥글다'라는 근거는 약한 것일까. 이에 대해 다큐에 등장하는 전문가는 말한다. 확증 편향에 빠진 사람은 다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는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머리로 이해를 못하는 게 아닌 마음이 이해를 거부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이들과 토론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어떠한 근거와 논리를 들이대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의 태도 때문이다. 지구가 평평하다 주장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근거와 논리만을 절대적인 것이라 받아들이고 반대편의 의견을 무시한다. 신념에 반대되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에게 전문가들의 열변은 헛고생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가장 큰 무기가 있다. '내가 믿고 싶은 걸 믿는 게 남에게 피해주는 게 아니잖아요'라는 입장이다. 마크를 비롯한 지구가 평평하다 주장하는 이들은 카메라에 대고 이 말을 반복한다. 애초부터 그들에게 지구가 평평하다, 아니다는 과학적인 토론을 통해 밝혀내고자 하는 중요한 진실과 거리가 멀다. 그들에겐 '내가 믿고 싶은 걸 믿고 그 믿음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행복이 더 중요한 셈이다. 지구가 평평하다 믿는 사람들의 '유튜브 스타' 마크는 그들과의 실제 만남에서 마치 영웅과 같은 대접을 받는다. 어떤 사람은 그와 사랑에 빠지고, 어떤 사람은 선물을 주며,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포옹을 한다.
남들과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은 외롭고 힘들기 마련이다. 특히 그 주장을 반복하고 더 힘주어 말할수록 주변 사람들과 멀어지고 조롱을 당한다. 이들에게 마크는 큰 힘이 되어준다. 그래서 그들은 '이것이 진실이고 통용되어야 한다'는 강한 주장보다는, '남에게 피해주는 게 아니니 믿게 내버려두라'는 배려를 촉구한다. 어쩌면 이 다큐멘터리는 확증 편향을 통해서라도 행복을 찾은 소수자들의 이야기로 끝을 낼 수 있었다. 마크와 친구들의 행복한 표정을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끌 수 있는 선택이 있었음에도 카메라는 확증 편향이 지닌 블랙홀과 같은 함정을 보여준다.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이 마지막 인사와 함께 자신이 갇혀 있던 리얼리티 쇼의 세계에서 나와 실제 세계로 향할 수 있었던 이유는 30년을 살아온 세상이 '가짜'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그는 아무런 미련 없이 진짜 세상을 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확증 편향에 빠진 사람들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진짜 세상이며 그들이 믿고 있는 게 오히려 가짜 세상이다. 그들은 진짜를 가짜의 눈으로 바라봐야 되기 때문에 더 깊은 늪에 빠진다. <트루먼 쇼>가 트루먼 한 사람을 속이기 위해 섬 전체를 세트장으로 만들었다면 평평한 지구를 주장하는 이들은 지구를 넘어 우주까지 새롭게 정의를 내려야 되는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
마크는 평평한 지구의 세상에서 자신을 좋아한다는 여자를 만났고 자신을 추앙하는 신도를 만났으며 절친한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들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주장을 해나가야 한다는 짐을 짊어지게 된다. 단순히 '난 그렇게 믿어요'로 끝날 문제를 넘어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삶은 이 가짜에 너무나 깊게 들어갔으며, 그가 다른 주장을 하는 순간 주변 사람들은 떠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트루먼처럼 진실을 알고 거짓을 버리고 나갈 수 없다. 이미 그의 실제적 삶이 거짓에 너무 깊게 물들어 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