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희와 그의 50년 지기 음악 동지 기타리스트 강근식과 베이시스트 조원익.

이장희와 그의 50년 지기 음악 동지 기타리스트 강근식과 베이시스트 조원익. ⓒ PRM

"이장희는 몇 차례의 사건이다. 그는 늘 나타났다 사라졌다." 

2018년 3월,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을 맡았던 대중음악평론가인 성공회대 신현준 교수가 이장희를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쓴 글의 서두다. 불연 듯 나타나 '그건 너', '한잔의 추억', '불 꺼진 창' 등은 19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명곡을 만들었고, 1975년 대마초 파동 이후 홀연히 한국을 떠났다. 

2013년 이후 6년 만에 서울에서 여는 단독 콘서트 '나 그대에게' 개최를 앞둔 13일, 서울 정동의 한 식당에서 이장희와 기자들이 만났다. 그의 음악적 동지 기타리스트 강근식, 베이시스트 조원익도 함께했다. 

기자간담회에 앞서 세 사람은 '내 아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 '그건 너'를 공연했다. 제대로 된 음향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식당의 작은 룸. 하지만 이장희의 쩌렁쩌렁한 성량과 특유의 감성이 담긴 노래와 강근식의 일렉 기타, 조원익의 콘트라베이스 연주만으로, 간담회 룸은 작은 콘서트장이 됐다.    
 
"노래를 하니 내가 가수 이장희라는 걸 증명하는 것 같네요." 

노래를 마친 이장희는 호탕하게 웃었다. 한국 나이로 일흔셋.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이장희·강근식·조원식, 50년 지기 음악 동지들
 
 강근식은 1970~80년대를 대표하는 세션 밴드 '동방의 빛'의 기타리스트로, 당대 최고의 가수들의 음반 편곡과 연주를 담당했다. 영화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겨울로 가는 마차> 등의 영화 음악을 담당하며 영화 음악에 한 획을 그은 음악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열 두시에 만나요 브라보콘', '트라이' 등 우리에게 친숙한 광고 음악들을 만들기도 했다.

강근식은 1970~80년대를 대표하는 세션 밴드 '동방의 빛'의 기타리스트로, 당대 최고의 가수들의 음반 편곡과 연주를 담당했다. 영화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겨울로 가는 마차> 등의 영화 음악을 담당하며 영화 음악에 한 획을 그은 음악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열 두시에 만나요 브라보콘', '트라이' 등 우리에게 친숙한 광고 음악들을 만들기도 했다. ⓒ PRM


이장희는 양옆에 앉은 강근식과 조원익을 "50년 된 음악 친구들"이라고 소개했다. 강근식과 조원익은 1970~80년대 최고의 세션 밴드 '동방의 빛' 멤버로, 당대 수많은 가수들의 음반 작업에 참여한 바 있다. 

"대마초 파동(1975년) 이후 한국을 떠나 다른 일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10년 전 <무릎팍도사> <놀러와> 쎄시봉 콘서트 특집 후 인연이 닿아 이렇게 같이 음악 하고 있습니다. 50년 된 지기들과 아직도 함께 음악을 하는 건 우리뿐 아닐까 싶은데, 함께 음악도 하고, 이렇게 기자회견까지 열 수 있다니 참 좋습니다." 

강근식은 "스무살 즈음 만나 음악 이야기로 밤을 새우고, 레코드판 구하기 힘든 시기에 누가 어디서 판 하나 구하면 신줏단지 모시듯 들고 와 밤새 듣고 그랬다. 음악으로만 뭉쳐진 우정"이라고 소개했다. 

조원익에게 이장희는 중고등학교 동창이자, 음악 생활을 함께 시작한 동지이자, 멀어졌던 음악 활동을 다시 이어가게 해준 친구. 조원익은 "10년 전 울릉도에 한 번 내려오라는 말에 내려갔다가 자연이 너무 아름다워 그대로 머물렀다. 함께 지내면서 같이 음악도 하고 그렇게 됐다"고 덧붙였다.   

울릉도에서 펼친 황혼의 음악 인생 
 
 조원익은 1970~80년대를 대표하는 세션 밴드 '동방의 빛'의 베이시스트로, 이장희, 송창식, 조동진, 김민기 등의 초기 음반과 영화 <별들의 고향> 사운드 트랙 음반에 참여했다. 제작자로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기획과 기념 음반 제작을 진두지휘했다.

조원익은 1970~80년대를 대표하는 세션 밴드 '동방의 빛'의 베이시스트로, 이장희, 송창식, 조동진, 김민기 등의 초기 음반과 영화 <별들의 고향> 사운드 트랙 음반에 참여했다. 제작자로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기획과 기념 음반 제작을 진두지휘했다. ⓒ PRM

1975년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사업가로 활동하던 이장희는 우연히 찾은 울릉도의 아름다운 자연에 반해 사업을 정리하고 울릉도에 정착했다. 2011년 컴백하며 발표한 곡 제목도 '울릉도는 나의 천국'이다. 최근에는 경상북도가 계획한 울릉도 공연장 건립에 자신의 집 앞뜰 땅 일부를 기증했다. 이렇게 건립된 것이 2018년 오픈한 울릉천국 아트센터다. 지난해 5월과 7~8월 상시 공연을 펼쳤고, 올해부터 매회 5월부터 10월까지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북반구 어느 곳이나 그렇지만, 울릉도의 5월은 참 아름답습니다. 지난해 5월에 우리 셋이 함께하는 공연을 처음 했는데 호응이 좋았습니다. 인구 만 명도 안 되는 작은 섬에 극장이 지어지고, 관광객들과 함께 음악을 나눕니다. 대화도 물론 하지만 음악에는 대화가 필요 없는 정서의 교류도 나눴습니다. 우리 셋 다 술을 좋아하는데 공연을 마치고 석양을 보면서 술도 한잔 하고...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두 번째 전국투어 '나 그대에게'를 시작하는 가수 이장희와 그의 50년 음악 동지, (좌) 기타리스트 강근식과 (우) 베이시스트 조원익.

두 번째 전국투어 '나 그대에게'를 시작하는 가수 이장희와 그의 50년 음악 동지, (좌) 기타리스트 강근식과 (우) 베이시스트 조원익. ⓒ PRM

 
이장희는 50년 우정을 "음악이 연결해준 것"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기타를 치고 노래하면 옆에서 친구들이 목소리에 맞춰 받아주고, 이런 교류가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음악에는 말이 필요 없어요. 말이 없어도 서로 통하고, 끈끈하게 이어져 오죠. 70이 넘어서도 술 한잔 하면서 음악 이야기 나눌 친구들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입니다." 

이장희는 올해 이 좋은 친구들과 전국 투어 공연에 나선다. 오는 3월 8일과 9일 열리는 서울 LG아트센터 콘서트를 시작으로 광주, 부산, 대구 등지에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콘서트 제목은 그의 대표곡,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에서 따온 '나 그대에게'다. 

"전에는 이 노래가 단조로운 것 같아 썩 좋아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제 노래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고, 많은 분이 아름답다고 해주시더라고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나이가 들수록 이 노래에 애착이 가더라고요. 노래 제목처럼, 공연에 와주신 분들께 나의 사랑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잘 맞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일흔하고 셋' 된 이장희, 그는 여전히 꿈을 꾼다 
 
 두 번째 전국투어 '나 그대에게'를 시작하는 가수 이장희.

두 번째 전국투어 '나 그대에게'를 시작하는 가수 이장희. ⓒ PRM

 
지난 9일 방송된 KBS 2TV <불후의 명곡>은 이장희 편으로 꾸며졌다. 이장희 편은 지난 2012년, 2015년에도 진행된 바 있는데, 까마득한 후배들이 자신의 곡을 재해석한 무대를 볼 때, 그는 어떤 마음이 들까? 

"속으로는 젊은 사람들이 내 노래를 좋아할까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노래라는 건, 제가 부르는 유행가는 특히 시대를 타고 넘어가는 곡이거든요. 제 콘서트에 와주시는 분들도 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분들이고,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시는 거거든요. 현재는 늘 괴롭지만 지나간 것은 늘 아름다운 거니까.

후배들이 재편곡한 음악을 들으면 왜 이렇게 잘하나 싶기도 하고 우리가 음악 하던 때랑은 다른 차원이구나 싶죠. 음악적인 내용을 보면 감탄하고, 훌륭하구나 싶죠. 우리나라 음악이 이렇게 발전했구나 생각하고요. 다만 아쉬운 건 우리 때랑 정서가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전 좀 이질적으로 느껴졌어요. 하지만 저도 요즘 친구들이 좋아하는 게임 이런 거 할 수도 없고 잘 모르잖아요. 같은 거죠." 

 
 이장희와 그의 50년 지기 음악 동지 기타리스트 강근식과 베이시스트 조원익.

이장희와 그의 50년 지기 음악 동지 기타리스트 강근식과 베이시스트 조원익. ⓒ PRM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 난 그땐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할까 
그때도 울 수 있고 가슴 한구석엔 아직 꿈이 남아있을까' 


이장희가 스물여덟에 쓴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의 노랫말이다. 공연을 앞두고 두 시간 만에 써 내려간 곡이라고. 60대가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졌던 20대의 이장희는 '육십하고 하나일 때도 가슴 한구석에 꿈이 남아있을까' 궁금해하며 노랫말을 적었다. 그리고 그 나이를 훌쩍 넘은 70대의 이장희는 그 질문에 답을 줄 수 있을 듯하다. 칠십하고 셋이 된 그에게는 여전히 꿈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어쭙잖다고 생각했어요. 40년 동안 노래 한 번 안 하고 살았는데 콘서트를 하고, 노래하다 보니 노래가 다시 좋아졌어요. 그런데 다시 노래를 부르려고 하니 내가 너무 나대는 것 같은 거야. 근데 노래하는 게 참 좋아요. 어릴 때 대학 그만 두고 음악만 할 만큼 좋아했는데 그게 생각나더라고. 내 나이 80이 될 때까지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바라는 건 내가 한국에서 첫 싱어송라이터였어요. 지금 내 인생이 황혼인데, 황혼은 쓸쓸하지만 참 아름다운 거기도 한 거거든요. 지금 참 안온하다는 느낌이 들다가도, 한쪽에선 쓸쓸하고 허무하기도 해요. 이런 내 복잡한 마음을 노래로 한번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심정을 노랫말로 쓰고 싶은데 왜 지금은 이걸 하지 못하나. 어릴 땐 참 재능이 있었던 것 같은데. (웃음) 그런 걸 한 번 해봐야겠다는 꿈이 있어요."  


내내 유쾌한 목소리로 질문에 답한 이장희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공연하는데 많이 와줬으면 좋겠어. 그래야 우리도 재미있게 할 수 있으니까. 고맙습니다! 땡큐!" 하며 손을 흔들었다. 인생 후반기를 멋지게 살아가는 그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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