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장면
커넥트픽쳐스
실제 전쟁을 겪은 폴란드 선생님들의 진심
폴란드도 실제로 6년 동안 전쟁을 겪었다. 독일군에 의해 운영되었던 아우슈비츠는 잔인한 수용소로 유명하고 이곳에서도 수많은 고아들이 부모와 생이별을 해야 했다. 실제로 폴란드에서 북한의 고아들을 돌봐주었던 선생님들은 그 아픔을 실제로 겪어 알고 있기에 더욱 그들에게 마음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들이 겪은 아픔을 치유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이들이 처음 폴란드에 왔을 때 많은 아이들은 영양실조였고 많은 질병을 앓고 있었다. 또한 수많은 기생충에 감염된 상태여서 치료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선생님들은 그들의 건강을 보살피고 그들에게 다양한 기초교육을 시키면서 기꺼이 그들의 두 번째 엄마, 아빠가 되었다. 그들을 진심으로 그 고아들을 사랑했다.
한국 전쟁에서 고아 문제는 사실 북한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북한은 거의 부산까지 전선을 아래로 끌고 내려왔고 다시 패퇴하면서 북으로 전선을 올렸다. 거의 한반도 전체를 훑고 지나갔던 그 전선은 무수한 고아들을 전국에서 양산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 발생한 고아들은 꼭 북한만의 아이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중 많은 수는 남한의 고아가 섞여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 김일성이 그들을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현재까지 남한에서는 이 고아들에 대해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들에 대한 통계, 연구도 전무하고 그들은 모두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내졌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공식 기록도 폴란드 보육 시설에 멈춰있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장면커넥트픽쳐스
지금, 현재도 계속 양산되고 있는 분단 고아들
영화는 한국전쟁의 고아가 북한만의 고아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한반도에 있는 모든 이가 기억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런 고아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남한으로 넘어오는 탈북자 가운데 10대들도 많다. 그들은 자의나 타의에 의해 부모나 가족들과 헤어지고 남한에서 생활한다. 그들은 떨어진 가족들을 그리워 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남한에서 그들은 의지할 누군가를 찾지만 그들의 가족을 대신할 사람을 찾지 못한다. 자유의 땅에서 차갑고 어색한 시선을 받으며 그들은 외로움을 느낀다. 어쩌면 폴란드의 고아들과 다르게 현재의 고아들은 그들의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를 찾기가 더 어려울지 모른다. 영화 속 추상미 감독과 함께 동행하는 탈북소녀 송이도 자신의 상처를 모두 털어놓지 못한다. 그저 목놓아 펑펑 울 뿐이다.
결국에는 이 영화는 지금이라도 분단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고아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된다고 이야기한다. 폴란드 선생님들이 북한에서 온 전쟁고아들에게 다가갔던 진심으로 우리 주변의 탈북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어야 한다. 추상미 감독은 영화 말미에 펑펑 우는 송이를 꼭 안아준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안아줄 차례라고 말한다.
추상미 감독의 첫 연출작은 그녀의 개인적인 경험과 탈북 청소년들의 인터뷰를 활용하여 폴란드의 고아들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아직 끝나지 않은 분단 상황에서 우리는 여전히 그 고아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진심을 다해 이야기한다. 폴란드로 보내졌던 아이들을 기억하는 선생님이 눈물을 글썽이며 북한으로 돌아가기 싫어하던 아이들을 이야기할 때, 관객들의 눈도 붉게 물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우리는 추상미 감독의 입을 빌려 그들에게 이야기한다.
"아이들을 돌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여러 영화와 시리즈가 담고 있는 감정과 생각을 전달합니다.
브런치 스토리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영화에 대한 생각을 전달하고 있어요.
제가 쓰는 영화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저의 브런치 스토리에서 더 많은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같이 영화가 전달하는 감정과 생각을 나눠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