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3일 MBC <뉴스투데이>에서 보도한 '몰카 찍어 엄마 사생활도 공개... 도 넘은 '유튜브 세대' 중 한 장면
MBC
아이를 발견한 엄마가 "깜짝 놀랐네"라고 말하자, 아이는 웃으며 도망친다. 잠시 후 작가의 '전하는 말씀'이 흘러나온다.
"'좋아요' 한 번 눌러주세요. '싫어요' 하면 너무 싫어."
아래에 붙은 댓글들을 살펴보니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점잖게 타이르는 글도 있었으나 대개 이런 투였다.
"너 뉴스 떴어 인마 ㅋㅋㅋ "
"자식이 쓰레기네"
"그만해 미친X아"
"사람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구별해야지 XX"
이것들은 비교적 '순한' 편에 속한다. '유충'으로 시작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를 써놓은 이가 있는가 하면, 어머니에게까지 욕설을 퍼붓는 이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뉴스를 보고 몰려온 이들이 (안 그랬다면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을) 비디오의 조회 수를 대폭 올려놓고 있었다. 보도 하루만에 15만 뷰를 넘어섰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문제의 비디오보다 격한 감정을 쏟아낸 댓글들이 훨씬 더 유해하다고 생각한다. 어린 아이가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학교나 주위 어른이 '사람을 찍은 영상을 함부로 인터넷에 올리면 안 돼요'라고 가르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아이가 뻔히 볼 수 있는 게시물 아래 걸쭉한 욕설과 잔혹한 글로 도배한 어른들은 도대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내가 보기에는 '아이들이 찍을 만한' 비디오였다. 어른들 눈에는 아무 감흥도 없을 집안의 풍경과, 들키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촬영한다는 사실 자체가 신나는 모험처럼 느껴졌을 테니 말이다(나는 논란이 된 영상보다 아이 자신의 얼굴이 담긴 비디오가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문제는 휴대폰 카메라처럼 '값싸고 쉬운 기술'의 진화속도가 교육이 따라가기 벅찰 만큼 빠른 속도로 진화한다는 점이고, 이렇게 제작된 영상을 간편히, 제한 없이 올려주면서 돈을 버는 회사가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는 드라마를 보고 어른 말투를 배우는 아이들에게 저주를 내뿜지 않는다. 이 현상이 바람직한 것은 아닐지 모르나, 이런 변화는 시청자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구분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텔레비전의 속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설사 아이를 방에 보내고 어른들만 남아 텔레비전을 본다 해도, 배우들의 격정적인 대사는 벽을 넘어 아이들의 귀에 고스란히 꽂힌다.
조슈아 메이로위츠는 텔레비전의 무차별적 정보 유포 행위가 사람들을 나이, 성별, 역할로 구분해 온 경계를 무너뜨린다고 주장했다. '장소 감각의 상실'이란 사회적 역할의 붕괴를 의미한다. 과거에 아이들은 그림책을 봤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읽을 수 없거나 읽기 어려운 표현으로 된 책과 신문을 읽었다.
남성과 여성은 각기 구분된 공간에서 같은 성별끼리 정보를 공유하며 성역할을 재생산했다. 하지만 텔레비전은 글을 읽지 못해도 볼 수 있으며, 방송은 시청자들의 나이와 성별을 구분하지 않은 채 온갖 정보를 내뿜는다. 이런 정보를 접한 시청자들의 정체성이 뒤섞이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닐 터이다.
그렇다면 유튜브는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까? 과거 책과 텔레비전 사이에 일어났던 충돌이 현재 인터넷과 유튜브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다음이나 네이버 등 서치엔진을 통한 검색은 일단 글을 알아야 할 수 있고, 일정한 요령과 지식을 갖춘 사람일수록 정보를 더 잘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유튜브는 지식과 요령은 고사하고, 아예 글을 몰라도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연관된' 내용의 비디오를 직접 골라 '추천'해 주며 '자동 플레이'까지 해 준다. 유튜브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재앙은 봐도 봐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튜브의 월 사용자 수는 15억이 넘는다. 이들은 (2018년 기준으로) 1분마다 300시간 분의 비디오를 올리는데, 매일 43만 시간이 넘는 영상이 새롭게 충전되는 것이다. 단 하루에 업로드되는 비디오만 보려 해도 50년이 걸리는 것이다. 물론 '50년'은 잠도 안 자고, 일이나 공부도 안 하고, 밥도 안 먹으면서(혹은 보면서 먹거나) 시청할 때의 이야기다. 만일 6시간 자고, 8시간 일하면서 시청하면 100년이 지나도 하루 분량을 소화할 수 없다.
▲"유튜브의 월 사용자 수는 15억이 넘는다. 이들은 (2018년 기준으로) 1분마다 300시간 분의 비디오를 올리는데, 매일 43만 시간이 넘는 영상이 새롭게 충전되는 것이다."오마이뉴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양'보다 '질'의 문제다. 앞에서 '웹과 유튜브'의 관계를 '책과 방송'에 비유했지만, 유튜브와 방송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존재한다. 유튜브와 달리 방송은 '누구나' 만들어 방영할 수 없으며, 내용에 까다로운 규제와 제약이 따른다. '공익성'이 지상파의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비록 방송의 공익성은 대개 불만족스러운 상태에 머물지만, 유튜브는 아예 '공익' 자체를 내세우지 않는다. 공익은커녕, 공과 사의 경계조차 무너진 공간이다. 재미와 주목, 오직 이 2가지가 지배하는 곳이며, 이것은 쉽게 금전으로 환산된다.
극단적 대립의 매체
유튜브의 또 다른 문제는 사회를 극단적 대립으로 이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과 영국에서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에 근본적 결함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온건한 영상을 보는 사람에게까지 극단적 주장이 담긴 음모론이나 실체불명의 주장이 담긴 비디오를 권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공간 자체가 편향적 정보를 추구하게 만든다는 견해는 오래 전부터 존재했으나, '영상'이 갖는 접근성은 정보 편향의 위력을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이른바 '가짜뉴스'의 영향력이 나이, 성별, 교육수준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며,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다음 글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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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