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치마 사무실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녹색전환연구소
-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로 제작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이제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상영하고자 할 때는 목표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다른 플랫폼을 개발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내가 극장 상영을 고집하는 것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본질적인 매력과 집단적 경험에 대한 가능성을 여전히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필요하다면 극장 외의 다양한 플랫폼과 새로운 방식도 고민해볼 의향이 있다."
- 영화처럼 제작비 규모가 큰 예술작업의 경우 수익을 내지 못하면 다음 제작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순환되지 못하는 구조 아닌가."사실 그것이 독립다큐멘터리가 한국에서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처음부터 선순환이 되지 않는 구조였다. 다큐 제작의 지속 가능성은 점점 더 문제가 되고 있다. 감독들이 자신을 혹사시키는 방식으로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면, 누구도 오래 버틸 수 없다. 공적자금을 지원받는다 해도 많아야 2~3천만 원인데 이를 감독 인건비로 쓰고 나면 다른 건 엄두도 못 낸다. 다큐멘터리 제작기간이 짧아도 1년 이상이라는 걸 감안하면 매우 열악한 환경이다. 이런 비순환구조를 해결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정책 전문가들의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극장에서 다큐멘터리를 경험하는 것의 특이성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업영화가 3D, 4D 등을 만들어 새로운 극장 경험으로 관객을 유도하는 것처럼,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극장 경험으로서 특이성을 만들어야 한다. 관객에게 영화가 어떻게 가 닿을 것인가의 이런 고민은 예술가로서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활동가로서의 활동과는 다른 지점이다."
- 예술가로서의 활동과 활동가로서의 활동은 무엇이 다른가?"미학적인 부분에서 다르다. 이 시대에 필요한 질문이 무엇인지를 생산한다는 점은 활동가나 예술가 모두 다르지 않다. 대신 이것이 미학이라는 전달 방식을 취할 때는 각자 훈련되어야 할 부분들이 달라진다. 영화감독이라면 영화 언어를 훈련해야 하는 거다. 그런 부분에 있어 '연분홍치마'는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에 노트북과 카메라를 와이파이와 연결해 현장 생중계를 했던 1인 미디어 등장은 내게 많은 고민을 안겨 주었다. 그전까진 독립다큐멘터리의 주요 역할 중 하나가 대안언론이었다. 주류 미디어들이 접근하지 않은 공간이나 소외된 목소리를 가시화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사회적 기능 중 하나였다.
2009년 용산참사 현장에서는 1인 미디어가 주축이 된 인터넷방송이 현장을 생중계하니까 기존의 미디어 활동가들의 작업은 뒤늦게 현장을 편집해서 올리는 것에 지나지 않아 현장다큐멘터리로서의 의미가 무색해졌다. 그렇다고 이게 공중파처럼 영향력 있거나 조회수가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이 작업을 계속 하려면 이것의 의미를 찾아야만 했다. 이제 다큐멘터리가 단순히 기록의 의미를 넘어서려면 뭘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그 고민에서 시작된 게 <두개의 문>이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두개의 문>은 독립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문법을 창조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열악한 제작 현실 속에서 얻어 낸 값진 수확이 아닐까. 여기엔 첫 연출작이었던 <마마상>(2005)부터 지금까지 늘 함께 작업해온 '연분홍치마' 동료들이 있었다.
- 공동연출이나 공동작업 모두 쉽지 않은 일인데 어떻게 지속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연분홍치마의 공동작업은 단순히 작품만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이 아니어서 가능했다. 우리는 삶의 지향을 같이 하는 경제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다. 물론 우리의 역사 안에서도 갈등과 분열이 있었고 그것을 잘 해소하지 못한 경험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동체를 지속하게 되는 것은 여전히 삶의 지향을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 그런 갈등을 거치면서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힘은 무엇일까?
"같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닐까. 같이 해야 할 이유만큼이나 같이 하지 않아야 할 이유도 많다. 한 100개는 댈 수 있다.(웃음) 그래도 둘을 비교했을 때 아주 조금이라도 같이 하는 게 더 낫다. 그게 결정적인 차이다.
예전엔 희생하는 느낌으로 같이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지금은 감사하기 때문에 같이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작년에 많이 아팠는데 수술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연분홍치마가 엄청 위안이 됐다. 돌아갈 곳이 있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힘이 되었다. 지금은 유급 안식년이기 때문에 활동비가 나오니까 걱정을 안 하고 있다. 비록 아직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활동비지만. 내가 쉬어도 연분홍치마 다른 활동가들이 애써주고 있는 덕분이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내 몸부터 가꿔야
▲연분홍치마 사무실 고양이연분홍치마 사무실에는 고양이 3마리도 함께 지내고 있다.녹색전환연구소
2017년 김일란 감독은 위암 수술을 받았다.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하는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건강 문제가 크게 이슈화 되기도 했다.
- 수술이나 질병처럼 몸의 큰 변화를 겪고 나면 그 이전과 이후의 경험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
"그렇게 아팠는데도 사람이 참 안 변한다.(웃음) 기질 같은 건 변하지 않았지만 건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좀 느낀 바가 있다. 내가 속한 이 사회가 건강하지 않다면 아무리 개인이 노력한다 해도 외부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 삶의 기본 조건이기에 사회가 함께 건강해야지만 나의 건강도 보장받을 수 있다.
개인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 귀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에 영화 상영회를 통해 만난 관객들이 '그래서 좋은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엄청난 질문을 할 때, 일단 나부터 잘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하기 위해서 내 마음의 고통, 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알아차리려 노력하고 있다."
- 처음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이후 거의 쉬지 않고 현장에서 달려온 것 같다. 어릴 때 꿈도 영화감독이었나?
"구체적으로 어떤 직업군을 원하지는 않았는데 막연하게 모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내가 어릴 때는 스필버그와 홍콩 누아르가 신이었다. 스필버그 영화 중에 어드벤처 장르가 많았는데 그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중학교 때는 다니던 학교 근처에 대학들이 많았다. 1980년대 그 시절엔 시위가 진짜 많았다. 늘 최루탄 냄새와 함께 10대를 보냈다. 언니, 오빠들이 싸우는 걸 보고 한편으론 멋있다는 생각도 했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싸우는 걸까, 그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이 사회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영화를 좋아한 건 할머니 영향이 컸다. 할머니가 홍콩무협 영화를 너무 좋아하셔서 손녀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극장에 데리고 다니셨다. 할머니와 함께 극장에 갔던 까마득한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할머니는 내게 많은 영향을 끼친 분이었다. 할머니와 관련된 에피소드 중 하나가, 내가 첫 생리를 했을 때 할머니가 우셨다. 이제 우리 손녀딸 불쌍해서 어떡하냐고. 그게 너무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아마 그 시대를 살아 온 여성들의 삶이 녹록지 않았듯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큰 제약이라고 느껴서 그러신 게 아닐까."
-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할 예정인지 궁금하다.
"그동안의 작업들이 다 현장에서 이야기를 발견하고 만든 작품이었다. 앞으로도 주류가 조명하지 않는 곳을 찾아가서 비추고 싶다. 그동안 영화를 만들면서 수익이 난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 작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독립영화 지원체계와 같은 대안이 필요하다. 이것을 한 개인이나 단체가 만들 수는 없기에 일단은 영화진흥위원회와 독립영화협회 등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는 중이다."
- 녹색전환연구소에서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변화를 '녹색전환'으로 일컫고 이에 대한 연구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녹색전환'은 무엇인가?
"작년에 수술하고 회복하던 차에, 살고 있던 동네를 걷다가 뒷동산이 있는 걸 발견했다. 구청에서 가꾼 작은 산인데 정비를 잘 해 놓아 다니기 좋았다. 적어도 하루에 1만 보는 걸어야 수술한 부위가 자리를 잘 잡는다고 해서 그 뒷동산을 자주 걸었다. 몸이 아프니까 정말 신기한 게 예전과 달리 초록이 너무 좋고, 햇빛과 새 소리 이런 것들에 엄청 위안을 받았다. 그곳을 산책하면서 그동안 이런 뒷동산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던 시간들을 반성했다.
예전엔 운동이나 걷기, 이런 것들이 일부러 시간을 내서 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다 바쁘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들이기도 했고. 지금은 우선순위가 바뀐다는 게 어떤 건지 알 것 같다. 무언가를 한다는 게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더라. 삶이 전체적으로 재배치되어야 녹색이 내 삶에 들어올 수 있다. 지금은 산에 올라 햇볕을 쬐면서 앉아 있는 5분의 시간이 참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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