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회 대한민국 연극제-릴레이 토크 콘서트 8번째 손님으로 배우 박정자가 초대 되었다. 그녀는 대전에 일찍 도착해 연극제 관계자들과 저녁 식사를 한 후 제주도 '이어도' 극단의 '귀양풀이'를 관람하였고, 방청객들과 좀 더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즉석에서 상경기차시간을 1시간 늦추기도 하여 시민들로부터 "좋아요"라는 환호성과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제 3회 대한민국 연극제-릴레이 토크 콘서트 8번째 손님으로 배우 박정자가 초대 되었다. 그녀는 대전에 일찍 도착해 연극제 관계자들과 저녁 식사를 한 후 제주도 '이어도' 극단의 '귀양풀이'를 관람하였고, 방청객들과 좀 더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즉석에서 상경기차시간을 1시간 늦추기도 하여 시민들로부터 "좋아요"라는 환호성과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 조우성


대전에서는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6월 15일~7월 2일)가 한창이다. 대한민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인물 17명을 매일 초대해 그들의 '연극인생이야기'를 듣는 '릴레이 토크 콘서트'도 이제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지난 23일에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공연을 끝마친 '연극계의 어머니, 대모'로 불리는 배우 박정자가 토크 콘서트 8번째 손님으로 초대되었다. 박정자는 최근 영화 <허스토리>에서 위안소의 과거 관리인으로 출연하여 짧지만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사회는 대전대학교 김상열 교수가 맡아 진행하였다.

배우 박정자는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당시 '극단 신협'의 단원으로 활동했던 큰 오빠의 영향으로 9살 때부터 연극을 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기자가 되려고 1961년에 이화여자대학교 신문학과에 입학했다가 2학년 때부터 학교 연극동아리에서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했다. 3학년 시절 동아방송국이 개국할 때 당시 150대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동아방송 1기 성우로 입사하게 되면서 학교를 중퇴하게 된다. 그녀는 방송국 성우로 활동하면서 연극 배우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정확한 발음과 화술을 습득하게 된다.

"'그 나라의 언어를 알려면 연극을 봐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연극배우들의 역할입니다."

 그녀는 토크 콘서트 중에 2013년 삼성행복대상 여성창조상을 받았던 영상과 2016년에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이예랑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역대 이예랑 연극상 수상자들이 전부 모여 공연하였던 연극 '햄릿'의 영상을 관객들과 함께 보았다.

그녀는 토크 콘서트 중에 2013년 삼성행복대상 여성창조상을 받았던 영상과 2016년에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이예랑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역대 이예랑 연극상 수상자들이 전부 모여 공연하였던 연극 '햄릿'의 영상을 관객들과 함께 보았다. ⓒ 조우성


배우 박정자가 연극인으로 활동한 지 56년, 출연한 연극 작품만 150편이 넘는다. 그래서 연극계 후배들은 그녀를 '연극계의 어머니, 대모'라고 부른다.

"저는 연극계 대모라는 말이 참 싫어요. 제가 42년생으로 올해 77세입니다만 저는 항상 현역 배우, 현재 진행형 배우 이게 좋아요. 대모하면 웬지 연극 무대를 떠나서 멋진 대청마루에 앉아 부채질하고 있는 느낌이 들잖아요. 저는 연극계 대모라는 말을 사실 좋아하지 않습니다."

56년간 쉬지 않고 무대 올라, "저는 저의 우직함, 미련함을 사랑합니다"

그녀는 대학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해서 56년간 한 해도 쉬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이런 자신을 '미련하다, 우직하다'고, 그러나 그런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제가 첫 아이를 임신해 아이를 낳기 전 막달(마지막달)이었는데,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를 그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연극에 온달의 어머니로 출연했습니다. 극 중에서 어느 날 산 속 초막에 평강공주가 물을 마시기 위해서 잠깐 들어오는데, 저도 공주라는 말을 듣고 얼른 바닥에 엎드려 있는 장면을 연기합니다.

제가 엎드려 있는데 호흡을 할 수가 없어 너무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때 아이가 제 목을 타고 입으로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다음에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도 쉬지 않고 무대에 섰어요. 이게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연극을 어떠한 이유가 있었건 한 해도 쉬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거죠. 어떻게 보면 굉장히 미련하고, 다르게 보면 아주 우직한 거죠. 저는 저의 그 미련함, 우직함을 대단히 사랑합니다."

 이날 토크 콘스트에 300여명의 관객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고, 방청객들은  배우 박정자의 연극인생이야기를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진지하게 경청하였다.

이날 토크 콘스트에 300여명의 관객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고, 방청객들은 배우 박정자의 연극인생이야기를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진지하게 경청하였다. ⓒ 조우성


이렇게 그녀를 계속 무대에 서게 만든 원동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연극은 제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저는 '연극은 나에게 숨쉬는 것과 같다, 호흡이다'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연극을 하지 않고 잠시라도 뭔가 공백이 있으면 저는 제가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아요. 뭔지 쓸모 없는 인간으로 느껴져요. 거울을 통해서 봐도,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싫어요. 제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공연을 연습하는 연습장, 연극의 막이 올랐을 때의 분장실, 그리고 연극 무대, 딱 그 세 가지입니다."

김상열 교수가 "후배들에게는 정말 감동적인 말 중에 하나일 것 같아요. 근데 이렇게 생각하거나, 되기가 쉽지 않거든요"라고 말을 하자,

"그러니까 바보 같아야 해요. 너무 똑똑하면 안 돼요. 너무 똑똑하면 연극을 할 수가 없어요. 내 자신이 너무 꽉 차 있으면 다른 인물들이, 다른 작품들이 나한테 들어오지 못해요. 어느 정도 내가 바보처럼 비워져 있어야, 빈 자리가 있어야 그들이 들어와서 나하고 함께 할 수 있죠."

실수 하지 않게 "연습하고 또 연습해"

그녀는 2015년에 연극 <키 큰 세 여자>에서 90이 넘은 치매 증상이 있는 노인 역할을 두 시간 동안 연기했는데, 대사의 양이 너무 많아 그게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당시의 심정을 "아, 그건 죽음이었어요"라고 표현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무대 위에서 그 많은 대사를 연기하니까 내 머리가 꽤 좋은 줄 알아요. 여러분들하고 조금도 다를 바 없어요. 여러분들보다 못할 수도 있어요. 나이를 먹으면서 대사를 외우는 집중력도 떨어지고, 기억력도 많이 희미해져요. <키 큰 세 여자>를 하는 동안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안 돼요.

집에 오면 대본하고 새벽까지 싸움을 해요. 혼자 앉아서 계속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아들과 며느리가 '어머니가 아직도 안 주무시고 대본을 보고 계시네, 혼자 연습을 하고 계시네' 그걸 보죠. 저는 제가 괴롭다고 누구한테 엄살을 부려본 적이 없어요. 이건 내 몫이니까, 이건 내 운명이기 때문에. 저는 연기를 잘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연극의 신이 있다면 연극의 신에게, 하나님께, 실수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저는 관객들에게 그 감동을 전해줄 수 있도록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전시 문화예술과 문용훈 과장이 대전의 명품인 성심당 빵을 박정자 배우에게 선물하고, 대전연극협회에 영구보관할  액자사진에 사인을 받았다.

대전시 문화예술과 문용훈 과장이 대전의 명품인 성심당 빵을 박정자 배우에게 선물하고, 대전연극협회에 영구보관할 액자사진에 사인을 받았다. ⓒ 조우성


<키 큰 세 여자> 공연을 마치고 등장인물 세 명이 무대에 나와서 커튼콜을 하는데, 두 사람이 객석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딱 보니 아들과 며느리에요. 두 사람의 기립박수가 그 날 저를 얼마나 눈물 나게 했는지 몰라요. 서로 이해한다는 거죠. 나눠 갖는다는 거죠. 매일 대본과 씨름하는 저를 보았잖아요. 기쁨이면 기쁨, 고통이면 고통, 감동이면 감동을 함께 나누는 것. 아마 제가 죽을 때까지 그 날 아들, 며느리의 기립박수는 잊지 못 할 겁니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연극이 쉬워질 법 한데, 그녀는 더 무섭고 어렵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점점 더 어렵죠. 점점 더 무서워요. 점점 더 겁이 나죠. 젊었을 때는 동서남북을 모르니까 좋았어요. 20~30년 되니까 '이제 연극이라는 게 뭐다', '이제 내가 연극 배우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가장 열광시키는 건 연극이지만 지금은 점점 더 겁이 나죠. 무섭습니다. 두렵습니다. 연극이 나한테 얼마나 큰 두려움을 주는지, 그건 점점 더 날이 갈수록 절감하게 돼요."

"박정자는 19살 미남배우들과 연애를 한다고" 다들 부러워 해

연극 < 19 그리고 80 > 작품에서 그녀는 80세 노인으로 나와 19세 청년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었다. 

"계속 배우들이 달랐습니다. 최근에는 지금 군대에 가 있는 '강하늘'이 제 파트너였는데,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너무 이뻐요. 너무 잘 자랐어요. 그렇게 예의가 바를 수가 없어요. '이종혁'이라는 친구도 여러분이 아실 거예요. 그 친구가 2002년 초연 때 제 파트너였고, 그 다음에는 '김영민'이라는 배우가 아주 사랑스러운 저의 파트너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부러워했어요. 이 나이까지 연극을 하는 것도 부러워 죽겠는데, 어떻게 박정자는 19살하고 연애를 하느냐고 그래요."

 행사가 끝난 후 대전지역의 지상파 방송국에서 배우 박정자를 취재하였다. 그녀는 산책하던 중 자신을 알아 보고 함께 사진 촬영을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등 편안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행사가 끝난 후 대전지역의 지상파 방송국에서 배우 박정자를 취재하였다. 그녀는 산책하던 중 자신을 알아 보고 함께 사진 촬영을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등 편안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 조우성


최근 그녀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끝냈다.

"이 공연은 워낙 제작비가 많이 들고, 무대 메커니즘이 워낙 복잡해요. 배우와 스텝이 합쳐서 130명이에요. 모든 스텝들은 사실 다 영국 사람들이고, 라이센스 계약을 해서 무대소품 등을 외국에서 가져와야 되고. 그래서 이동 등에 너무 많은 비용이 발생해서 우리가 지방 공연을 할 수가 없었어요. 우리도 빨리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외국에 수출을 해야 될텐데, 그런 생각이 앞섭니다."

2016년에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이예랑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역대 이예랑 연극상 수상자들이 전부 모여 햄릿을 공연했다. 그때 그녀는 독특하게 남자역인 오필리아의 아버지 '클로디어스' 역을 맡아 연기했다.

"연출가 손진채씨가 이 작품을 준비할 때 저보고 '선배님, 남자 역인데 괜찮으세요' 그러길래 '오케이, 나한테 무슨 역이든 맡겨봐요. 난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내가 할 수 없는 건 없어요. 저는 특별한 걸 좋아해요. 상식적인 건 싫어요'라고 말했어요. 햄릿에서 왕비, 오필리아 역은 너무 상식적이죠. 저는 상식을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오필리아의 아버지, 저는 무대 위에서 남자역도 참 즐겁게 해요."

연기 56년 차, 그래도 그녀는 항상 새로움에 도전한다. 앞으로 '더 도전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을까' 궁금하다.

"저는 그동안 하고 싶은 거 다 했어요. 어떤 역이든지 저한테 오거나 아니면 제가 택할 수 있으면 정말로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녀는 제 3회 대한민국 연극제에서 스탭으로 고생하고 있는 연극계 후배들을 위로하기 위해 일부러 그들이 일하고 있는 장소로 찾아가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제 3회 대한민국 연극제에서 스탭으로 고생하고 있는 연극계 후배들을 위로하기 위해 일부러 그들이 일하고 있는 장소로 찾아가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 조우성


"우리는 인생이라는 무대의 단역배우, 마지막에 박수 받을 수 있게"

김상열 교수가 "연기자 생활을 꿈꾸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에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했다.

"여러분들은 연극을 56년 하고도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남은 박정자를 보고 계십니다. 너무나 척박하기 때문에 연극을 해서는 정말 빵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지금 전국적으로 연극 영화과는 엄청 많고, 합격하기도 너무 어렵지 않습니까? 각자 그들의 꿈을 향해서 젊은이들이 가는데, 저는 그냥 이런 이야기만 하고 싶어요. '살아남아라'라고.

내 인생은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에요. 오늘 이 시간도 저 아니면 저를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다 각자의 배역을 맡아서 살아가는 겁니다. 세익스피어는 <맥베스>를 통해 인생을 이렇게 독백합니다. '인생이란, 다만 걷고 있는 그림자. 무대위에 나타나서 몇 마디 쯤 내어 밷고 무대 밖으로 사라져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은 초라한 단역배우에 불과하다'고. 저는 박정자라는 이름의 배역으로 살아가고 있고, 여러분은 각자 여러분들의 이름 석자를 가지고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연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저는 관객들로부터 나름대로 박수를 받아야 될 겁니다. 마지막에."

<지난 연재 기사 보기>
1부 이순재 "젊고 인기많은 배우가 대본을.." 이순재가 분노한 까닭은?
2부 남명렬 남명렬 "'탐정 리턴즈' 함께 출연한 권상우, 나 부럽다고..."
3부 장영남 "여자는 여배우, 남자는 그냥 배우? 세상의 편견이 싫다"
4부 김선영 "아이를 낳고... 너무 가난하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다"
5부 윤문식 "연극은 나의 원수, 폐암 진단 받고도 공연했다"
6부 이종국 진규태 배우 이종국 "말더듬 언어장애 딛고 20년 MBC 성우도 했다"
7부 성지루 경상·강원·전라 3개 사투리로 연기, 성지루가 말한 비결


배우 박정자 대한민국 연극제 허스토리 빌리 엘리어트 김상열 교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널리스트, tracking photographer. 문화, 예술, 역사 취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