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빌리 엘리어트> 포스터.

영화 <빌리 엘리어트>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꽃이 자라는 데는 물이 필요하다. 그런데 키우는 꽃에 물 대신 '기름'을 주면 어떻게 될까. 아니면 그 앞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며 연기를 뿜는다면? 보나마나 그 식물의 앞날은 없다. 이를 다른 곳에 접목시켜 보자.

꿈을 키우는 데는 당연히 희망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꿈에 희망을 북돋아주는 대신 비난만 퍼붓는다면 또는 선입견에서 비롯된 반대의 입장만 고수한다면? 그 꿈은 이내 사라질 것이다. 게다가 기름과 담배연기만 주던 꽃이 아직 새싹이고, 빛나는 꿈의 소유자가 소년이라면 이를 짓밟기는 더욱 손쉬운 일이다.

권투에는 흥미 없지만, 발레에 재능 보인 남학생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역을 맡은 제이미 벨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역을 맡은 제이미 벨 ⓒ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인 빌리(제이미 벨)가 그렇다. 반강제로 권투를 배우는 그는 재능도, 흥미도 없다. 코치가 보다 못해 빌리에게 샌드백 치기를 시키자, 그는 발레수업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리듬을 탄다. 발레를 가르치던 윌킨스 부인(줄리 월터스)은 이를 보고는 그에게 수업을 듣기를 권한다. 그 후로 빌리는 조금씩 발레에 빠져들고, 그녀에게 일대일 교습을 받는다. 게다가 엘리트만 갈 수 있다는 로얄 발레학교의 오디션까지 보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가 오디션을 보기까지는 결코 순탄치 않다. 사회적 편견이 그의 재능을 옥죈다. 그 편견이란 발레는 여자가 하는 것이라는, 막연하고도 근거 없는 선입견이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가족들은 거칠게 반대한다. 까닭을 보다 깊게 살펴보면 좀 더 복잡하다.

일찍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의 집안은 할머니, 아버지, 형 그리고 빌리 이렇게 네 식구다. 보시다시피 남성 위주로 구성되어있다. 게다가 아버지는 완고하며 형 또한 그에 못지않게 고집이 세다. 이렇다 보니 가정의 거센 반대는 빌리의 꿈을 향한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나마 할머니는 그를 응원하지만, 영향력이 크지 않은 탓에 큰 힘이 되어주진 못한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포기 않는 윌킨스 부인은 빌리를 찾아간다. 그로 인해 아버지, 형, 윌킨스 부인, 빌리는 4자 대면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영화의 첫 번째 명장면이 나온다. 결국 이들의 만남은 언쟁으로 번지며 대립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그 한가운데 있던 빌리의 짜증나고 답답한 심경을 탭댄스로 표현한다.

원뜻과는 어긋날지 모르나, 이를 보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그의 불안정한 마음을 감정이 담긴 대사로 듣는 대신 울분의 탭댄스로 마주하니 단번에 와 닿으며 머릿속에 각인된다. 거기에다가 경쾌함을 넣어 보는 재미까지 선사한다. 인물의 감정묘사와 재미, 두 마리의 토끼를 다잡은 훌륭한 연출이다.

아들의 미래와 자존심, 갈림길에서 아버지의 선택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역을 맡은 제이미 벨과 재키 역을 맡은 게리 루이스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역을 맡은 제이미 벨과 재키 역을 맡은 게리 루이스 ⓒ (주)팝엔터테인먼트


여기까지만 보면 아버지인 재키(게리 루이스)와 형, 토니(제이미 드레이븐)는 악역에 가깝다. 하지만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중반부터는 이들에게도 감정이입을 하도록 만든다. 이들은 파업 중인 광부들이다. 그것도 몸을 사리지 않는 열성적인 노조다. 이들에게는 회사만이 아니라 파업 미 참여자들 또한 적이다. 그들에게 배신자라며 심한 말을 해댄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이 영화 속 두 번째 명장면이자 최대 감동 포인트를 만들어낸다.

절대 타협이란 없을 것 같던 재키는 변한다. 어느 날, 아들의 재능을 알아차린 그는 곧장 윌킨스 부인에게 달려가 조언을 구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빌리가 발레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파업 중인 그는 재정적으로 힘들다. 이제 그는 아들의 미래와 자존심, 두 갈래 길에 선다. 어떤 선택을 할까.

결국 그는 막내아들을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고 출근버스에 탄다. 그렇게 욕을 하던 미 참여자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이때 토니가 눈치 채고 쫓아와 뜯어말리자 그는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빌리만은 자신들처럼 자라지 않기를 바란다고. 완고하던 아버지의 눈물어린 고백이 생각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감정이입의 대상이 빌리에서 재키로 단번에 넘어갈 정도로.

성 차별 사회에 던지는 이 영화의 메시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역을 맡은 제이미 벨과 윌킨슨 부인 역을 맡은 줄리 월터스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역을 맡은 제이미 벨과 윌킨슨 부인 역을 맡은 줄리 월터스 ⓒ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꿈을 가진 소년의 성장담이자 사회적 선입견에 던지는 도전장이다. 자라오면서 '네가 여자냐? ~하게?' 또는 '여자가 무슨 ~야' 등 편협한 시선에서 나오는 말들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하다 못해 어릴 적에는 남자아이가 분홍색이 좋다고 하면 장난식으로라도 질색하거나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기 일쑤였다.

여성의 경우에는 분홍, 노랑 등 여성적으로 보이기 쉬운 색상을 좋아하도록 자신도 모르게 강요당했다. 이러한 경험들을 겪으며 크다보니 결국 남성의 일과 여성의 일이 따로 있다는 이분법적인 구도가 무의식 속에 박히게 됐다.

다행히도 현재는 예전과 달리 세상이 꽤나 개방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갈 길이 남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성별로 나눠져 있는 '선'을 지우려 노력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빌리의 경우처럼 옆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조력자는 현실에선 찾기 쉽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는 굳이 찾지 않아도 나타나 '선'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려 한다. 결국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물과 거름을 주며 꿈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혹시 아는가. 이런 우리를 도와줄 햇빛과도 같은 누군가가 나타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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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를 꿈꾸는 일반인 / go99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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