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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온 김애자(79) 할머니가 3일 오전 70주년 4.3추념식이 열리는 제주4.3평화공원에서 위령탑 각명비를 찾아 오열하고 있다.
 일본에서 온 김애자(79) 할머니가 3일 오전 70주년 4.3추념식이 열리는 제주4.3평화공원에서 위령탑 각명비를 찾아 오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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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를 짚은 할머니가 위령탑 각명비에 손을 올려놓고 한 없이 흐느꼈다. 고개를 떨구며 다시 손으로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각명비를 쓰다듬었다.

1948년 12월18일 한겨울 입김을 내뿜고 엄마와 내달리던 그날. 어머니를 잃었다. 사촌 오빠와 언니까지 이별한 평생 기억에 품고 살던 그날이었다.

김애자(79) 할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철공소 기술자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을 거쳐 중국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광복후 고향으로 가라는 중국 당국의 말에 따라 부모님 고향인 제주 땅을 밟았다. 아버지는 돈을 벌이기 위해 다시 일본으로 향했고 어머니와 단둘이 표선면 토산리에 터를 잡았다.

어머니는 보따리 장사를 하며 딸을 먹여 살렸다. 신기한 물건이 많았다. 4.3이 발발하고 군인과 경찰은 어머니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산에 올라간 사람들과 내통한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느닷없이 경찰이 쳐들어와 어머니를 구타하기 시작해다. 당시 김애자 할머니의 나이는 9살이었다.

눈 앞에서 어머니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매 맞는 모습에 울음을 쏟아냈다. 사촌 오빠, 사촌 누나 등 친인척들이 하루 사이 모두 폭도로 내몰려 목숨을 잃었다.

"경찰이 내 앞에서 어머니를 얼마나 때렸는지 몰라. 어머니를 잃고 여러번 죽으려고 물 속에도 뛰어들었지만 죽지를 못했어. 70년이 지났지만 그때 충격은 가시질 않아"

그리고 70년만이다. 일본에서 비행기표를 끊고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았다.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척의 도움을 받아 각명비에서 어머니 이름 석자를 찾아냈다.

"오늘 내 눈으로 대통령을 볼 수 있을까. 억울하게 돌아가신 어머니의 한이 풀렸으면 좋겠어. 70년만에 찾은 추념식이 그런 날이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시간 부연자(88) 할머니가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추념식 행사장 안으로 들어섰다. 어머니의 위패를 보고 난 후 70년 전 이야기를 묻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부연자(88) 할머니가 4.3 70주년 추념식이 열리는 제주4.3평화공원에서 문대인 대통령 참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부연자(88) 할머니가 4.3 70주년 추념식이 열리는 제주4.3평화공원에서 문대인 대통령 참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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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0월 부 할머니는 19살이었다. 당시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제주읍 용강리 주민들은 해안 지역으로 몸을 피했다.

어머니(당시 41세), 남동생(17세), 오빠(25세)와 봉개동으로 내달렸다. 내천을 지나던 중 바위 사이 구멍이 보이자 홀로 몸을 숨겼다.

감기에 걸려 기침이 터져나왔다. 멈출수가 없었다. 곧이어 총소리가 들렸다. 주목을 쥐고 입 속으로 쑤셔넣었다. 그제서야 기침이 멈췄다.

벌벌 떠는 사이 어머니와 오빠, 동생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머니는 표선리로 끌려가 총살을 당했다. 오빠는 군경에 끌려가 소식이 끊겼다. 동생은 후유증을 앓다 목숨을 잃었다.

"왜 나만 그 구멍에 들어갔는지 몰라. 3명은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총소리에 모든 걸 잃었어. 어머니와 오빠 시신을 찾으러 시체 다 누비고 다녔지"

잠시 말문이 막힌 할머니가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에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대통령 참석은 감격이야. 대통령의 사과가 얼마나 큰 일이야. 배보상 문제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지. 우리가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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