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문의 선택
KBS1
3.1절 하루를 가장 풍성하게 보낸 건 그래도 역시 KBS 1TV였다. 그 시작을 연 건 3.1절 특집 <다큐 공감- 태극기의 섬 소안도의 노래>이다(물론 새벽 2시였지만). 다큐는 3.1운동의 3대 성지인 남쪽 섬 소안도를 조명한다. 우리에겐 이름도 생소한 곳이지만, 이곳은 함경도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3.1운동 3대 성지이다. 이곳에는 1년 365일 태극기가 걸려있는데, 주민들은 설날이 되면 함께 모여 마을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상을 차린다.
그 뒤를 이은 건 오전 11시부터 2부작으로 방영된 <이방인의 3.1운동>이다. 다큐는 미국 국립 문서 보관소, 캐나다 선교 재단이 발굴한 3.1운동 자료, 일기, 서신 등의 미공개 희귀 자료 등을 총망라하여 3.1운동에 동참했던 이방인의 행적을 쫓는다. 19세기 말 문호 개방과 함께 조선을 찾은 이방인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종교를 전도하는 한편, 신문물과 지식을 전달하는데 앞장섰다.
무엇보다 다큐는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데 밑거름이 되었던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 주목한다.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던 이방인들의 처지로 인해 오랜 시간 수면 아래 잠자고 있었던 역사 속 사실에 주목한다. 다큐는 전국 각지에서 이방인들이 세운 학교가 3.1운동 확산의 거점이 되었음을 밝힌다. 또 해외 각지에서 조선 독립의 정당함과 식민 지배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다른 피부의 '동지'들의 이야기를 더한다.
3.1절의 대미를 장식한 건 <특선 다큐-어느 가문의 선택>이다. 흔히들 쉽게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하지만 그 문구에 숨겨진 핏빛 역사처럼, 자신을 던져 대의를 실현하는 길은 쉽지 않다. '조국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조국의 독립과 교육에 헌신했던 김마리아 선생은 두 번의 투옥 끝에 얻은 고문 후유증으로 광복을 1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임시정부의 거름이 된 김마리아 선생 가문의 이야기를 특선 다큐는 진지하고 자세하게 다뤘다.
가문의 일원이 6명이 모두 '건국 훈장'을 받은 '김순애 가문' 또한 특선 다큐의 조명 대상이다. 1차 대전이 끝나고 그 후속 조치를 위해 열린 '파리 강화 회의'에는 김규식과 그의 아내 김순애가 있었다. 중국 상해에서 신한청년당을 결성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한 두 사람은 당시 결혼한 지 불과 2주일 된 신혼부부였다. 남자와 여자이기보다는 '동지'였던 두 사람.
남편 김규식은 파리 강화 회의를 시작으로 프랑스, 미국, 유럽 등에 식민 지배의 부당함을 알렸다. 그렇게 김규식의 활약이 전해지며 일본의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2.8 독립 선언이 준비되고 김순애의 조카인 김마리아는 '조선 여자 유학생 친목 회장'으로 이에 깊이 관여한다. 남편 김규식을 해외로 보낸 김순애는 형부 서병호와 함께 국내로 들어와 대구에서 김마리아, 광주에서 동생 김필례 부부를 만나 만세 운동 확산에 힘썼다.
김순애의 오빠는 세브란스를 1회 졸업한 우리나라 최초 서양의
▲어느 가문의 선택KBS1
이후 김순애는 다시 상해로 탈출하여 '대한 애국 부인회'를 결성, 독립 자금 모금 및 독립 운동가와 그 가족들을 돌보며 한국 지도와 태극기를 해외에 보내는 운동을 한다. 김순애의 상해 '대한 애국 부인회'는 서울에서 김마리아에 의해 조직된 '대한 애국 부인회'와 연계돼 여성 독립 운동에 앞장선다. 한편 남편 김규식은 미국에서도 구미위원회를 조직하는 한편, 임시정부가 만들어진 이후 독립 전쟁을 준비하며 '대한 적십자회'를 조직하였다. 또 아내 김순애는 형부 서병호와 함께 적십자회 활동의 일환으로 간호원 양성소를 설립하였다.
또한 김순애의 오빠는 세브란스를 1회 졸업한 우리나라 최초 서양의 중 한 명이었다. 세브란스 의전을 이끌어나갈 재목으로 촉망받던 그는 조국에서 의사로 성공할 수 있는 삶을 버리고 중국으로 망명, 중국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에서 북제 진료소를 연다. 이후 독립군 군자금을 모집하고 이상촌 건설 등 독립 운동에 헌신하던 중 독살당하고 만다.
하지만 김필순가의 독립 정신은 후손에게까지 이어진다. 그의 아들 김염은 중국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항일 영화의 주역으로 활동한다. 가장 잘생기고 인기 있는 배우지만, 독립 운동 가문의 후손으로서 상업 영화 출연을 거부하고 일본 제국주의 투쟁에도 힘을 보탠다. 그런가 하면 광주에 남았던 김순애의 동생 김필례는 애국 계몽 운동과 여성 운동에 앞장서 한국 YWCA창립을 주도했고 광주 수피아 학교와 정신 여학교를 복교하는 등 민족 교육과 여성 교육에 앞장섰다.
비록 시청률에 담보되는 공중파의 대부분은 면피를 하거나, 3.1절을 그저 또 하나의 휴일로 때웠다. 하지만 KBS1을 비롯하여 EBS, YTN, KTV 등에서 방송한 다큐는 여전히 우리의 3.1절이 마무리 되지 않았음을 강변한다.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가진 방송이라면, 여전히 채 다 쓰지 못한 독립 운동사를 조명하는 것이나 건국 100년에만 주목해서는 안 된다. 그 역사적 전통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그리고 대중적 인식의 확산을 위해 방송이, 문화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고민이 필요하다. 2018년의 3.1절은 모든 방송사들에게 숙제를 던져준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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