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 운전사>의 송강호.

영화 <택시 운전사>의 송강호. ⓒ 쇼박스


누구는 천국과 지옥을 오갔고, 또 누구와는 슬픈 이별을 해야 했고, 또 누군가는 재앙을 맞거나 흥행 신화를 일궈냈다. 촛불혁명과 장미대선, 적폐청산이란 사회적 격변에 큰 타격을 받진 않았지만, 2017년 한국 영화들은 전반적인 침체와 하향평준화의 그늘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또한 천만 영화는 <택시운전사>로 단 한 편이었지만, <신과 함께>가 오늘(31일) 800만을 돌파하며 새해 첫 천만 돌파를 예고 중이다.

그렇게 '다사다난'이란 표현이 더없이 어울리는 2017년을 굵직한 숫자들로 결산해 봤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강한 것"이란 류승완 감독의 영화 <짝패>의 대사처럼, 2018년 무술년 한 해도 무탈히 살아 남는 한 해가 되시기를. 관객들도, 영화인들도 모두, '해피 뉴이어'!

# 1(편) : 2017년 '천만 영화'을 돌파한 영화 편 수

송강호 주연의 <택시 운전사>는 2017년 단 한 편의 '천만 영화'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의 감동적인 '5.18 기념사'와 맞물리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평단의 호불호는 갈렸다. 소시민의 시선으로 1980년 '그때'의 광주와 지금, 여기 대중의 눈높이를 맞췄다는 평과 함께 영화적으론 타협점이 분명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 <택시 운전사>가 덕에 올 한 해 극장은 찾은 전체 관객 수는 5년 연속 2억 명을 돌파했다.

한편 흥행 돌풍을 일으킨 <신과 함께>와 <강철비>, <1987>의 성적이 더해지면, 지난해(약 2억1703만 명)와 엇비슷한 수치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대기업 배급사가 '텐트폴' 영화에 집중하는 등 양극화 현상은 더욱 뚜렷해졌고, 관객 수 증가세가 '정체기'를 맞았다는 평가가 도드라졌다. 전반적으로 상업영화의 하향 평준화나 안일한 기획에 대한 지적도 꾸준했다. 역대급 재앙을 맞은 <리얼>이 대표적이다. '위기'보다는 '정체', 2017년 한국영화 산업의 한줄 평이라 할 만하다.

# 5(편) : 김민희가 홍상수 감독과 작업한 영화 편 수

배우 김민희는 지난 2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여우주연상인 '은곰상'을 수상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배우가 수상한 것은 최초였다. 그럼에도, 올 한 해도 여전히 매체와 대중의 관심은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의 '사랑'에 쏠렸다. 여성 톱배우와 세계적인 감독의 '불륜'은 그렇게 '옐로우'하게 '소비'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 사람은 작품 활동에 매진 중이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이어 <그 후>와 <클레어의 카메라>, 신작 <풀잎들>까지 5편을 함께 했다. <아가씨>를 제외하고 김민희는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홍상수 감독과의 작업에만 몰두 중이고, 홍 감독 역시 예의 그 영화 세계를 진화시켜 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영화주간지 <씨네21>이 꼽은 올해의 한국영화 베스트 1위는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였다.

# 39(명) : <노무현입니다>에 출연한 인터뷰이의 숫자

185만. 올해 다큐멘터리 영화 최고 흥행작 <노무현입니다>가 거둔 수확이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안희정 충남 지사, 유시민 작가 등이 출연한 <노무현입니다>는 아마도 정치(인) 소재 다큐멘터리 영화가 거둘 수 있는 흥행의 최대치일지 모른다. 이밖에 <공범자들>은 26만, <저수지 게임>은 12만 5천, <김광석>은 9만 8천, <더 플랜>은 3만 4천을 동원했다. 작년 11월 개봉해 2016년 다큐멘터리 흥행 1위를 기록한 <무현, 두 도시 이야기>(와 올해 공개한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파이널컷>)을 포함하면 그야말로 '다큐 흥행' 붐이었고, 정치사회 이슈의 '승리'였다.

(논란이나 공방, 소재 자체의 성격이 달랐던 <김광석>을 제외하고) 촛불혁명과 장미대선, 적폐청산이라는 일련의 사회적 흐름과 연결되는 이슈가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비록 '소재주의'나 '센세이셔널리즘'이란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다큐'의 저변 확대라는 긍정적 요소는 확실했다. 그리고, 2018년 1월 독립영화계의 기대작이자 '용산참사'를 소재로 한 <두 개의 문>의 후속작 <공동정범>이 개봉한다.

# 45(세) : 지난 10월 30일 유명을 달리한 배우 김주혁의 나이

 30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김주혁 배우의 빈소가 31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30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김주혁 배우의 빈소가 31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 사진공동취재단


불의의 사고였다. <공조>로 데뷔 20년 만에 '더 서울어워즈'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직후여서 충격은 더 했다. 특히 올 한 해 <공조>의 흥행과 tvN <아르곤>에서의 호연으로 사랑을 받았기에 아쉬움과 슬픔은 더했다.

김주혁에 앞서 2월 19일 폐암으로 별세한 고 김지영, 6월 16일 패혈증으로 별세한 고 윤소정, 4월 9일 췌장암으로 사망한 김영애가 팬들 곁을 영원히 떠났다.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역시 지난 5월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출장 중 심장마비로 별세, 많은 영화인들이 애도에 동참했다. 다시 한 번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 52(명) : 'MB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영화인의 숫자

올 한해까지, 영화인들은 '박근혜 블랙리스트'에 공분했다. 모태펀드 장악,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어 극우 영화를 지원하고, 그들이 말하는 '종북', '좌파' 영화, 영화인들을 배제하고, 퇴출시키려 했던 정권 차원의 시도는 결국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를 향한 분노와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번져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제도개선위원회까지 만들어지는 사이, 'MB 국정원'의 블랙리스트가 세상에 공개됐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영화와 영화인들을 '주목'했다. 대중적으로 영향력이 지대한 영화라는 대중예술 장르에 '겁'을 집어 먹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권과 관계없이 제 목소리를 내온 독립영화 '말살' 정책은 그래서 더 경악할 만하다. 그럼에도 올 한 해 독립영화계는 <꿈의 제인>, <분장>, <재꽃>, <초행>, <파란나비효과>, <내 친구 정일우>, <델타 보이즈>,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불온한 당신> 등 극영화와 다큐 장르에서 고른 성과를 냈다. 

그래서 더더욱, 2018년 문체부와 영진위의 행보에 이목이 쏠린다. 블랙리스트를 집행했던 실무자들에 대한 응당한 처분과 함께 박근혜 정부까지 퇴행을 거듭했던 영화 관련 지원 사업 등이 이후 어떻게 진행될까. 독립영화 지원 제도 개선을 약속한 도종환 문체부 장관의 행보와 오는 1월로 예정된 영진위 위원장의 선임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76(세) : <아이 캔 스피크>로 여우주연상을 휩쓴 배우 나문희의 나이

 배우 나문희가 27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에서 열린 <제1회 더서울어워즈>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나문희가 27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에서 열린 <제1회 더서울어워즈>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2017년은 영화계에서 '여성주의', '페미니즘' 담론이 그 어느 해보다 거셌고, 또 의미있는 족적을 남겼다. <브이아이피> 등과 같은 '알탕영화'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거셌던 반면 여성 배우들의 활약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목소리와 여성영화에 대한 요구가 어느 해보다 도드라졌다. 그 와중에 거둔 문소리 감독의 <여배우는 오늘도>나 다큐 <땐뽀걸즈>가 거둔 비평적 성과와 반향은 기록할 만하다. 가장 주목 받은 여성 배우가 76세의 나문희라는 점도 시사 하는 바가 크다.

같은 맥락에서, 해외에서는 '와인스타인 사태'로 촉발된 '미투' 캠페인이 할리우드를 넘어 세계로 퍼져나갔고, 한국에서도 2016년 시작된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이후 영화계 성폭력과 성불평등에 대한 변화의 목소리는 강하게 지속됐다. 그렇기에 더더욱, 남배우 A 사건과 김기덕 감독 사건, 배우 곽현화의 법정공방 등의 과정과 결과에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여성영화와 여성배우, 더 나아가 여성주의에 대한 관심은 무술년 한 해 더욱 더 큰 힘을 발휘할 전망이다.

# 93(만) :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의 최종 관객 수

'불한당원'은 힘이 셌고, 배우 설경구는 '지천명 아이돌'로 거듭났고, 그리하여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은 재평가를 거듭 중이다. 그렇게, 소셜미디에서 촉발된 <불한당>의 팬덤은 영화를 다시 평가하는 기회를 만들었고, 설경구는 대종상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맛봤다. 해당 작품은 칸 영화에 진출하며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지만 의도치 않게 불거진 변성현 감독의 'SNS 논란'으로 짐짓 위기를 겪기도 했다. <불한당>은 그렇게 관객의, 팬덤의 힘으로 부활했다.

<불한당>의 이러한 궤적이 주목받은 이유는 영화 흥행에 있어 팬덤, 소셜미디어의 영향력 증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N차 관람'이 영화 팬덤의 전통적인 패턴이었다면, 소셜미디어는 영화에 대한 논란을 극대화시키는 플랫폼으로 자리잡고 있다. 성격은 다르지만, 배우 유아인의 '애호박 게이트' 역시 연장선 상에 있다고 할 만 하다. 2018년엔 또 어떤 영화가, 영화인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천국과 지옥을 맛보게 될까.

# 190(개) : 넷플릭스가 <옥자>를 동시 공개한 국가들

 영화 <옥자>의 홍보 이미지.

영화 <옥자>의 홍보 이미지. ⓒ NEW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올해의 이슈메이커'였다. 물론, 이게 다 넷플릭스 때문이었다. 미국과 한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넷플릭스를 통해 190개 국가에 동시에 공개된 <옥자>는 칸 국제영화제에서 그리고 미국에서도 전통적인 영화(상영)의 개념에 대한 갑론을박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반발한 끝에 <옥자>는 비멀티플렉스 극장과 개인/단관/예술 극장 위주로 상영, 32만 명을 동원했다. 승자는 넷플릭스와 봉준호 감독이었다.

<옥자>는 오는 아카데미 영화상 후보 진출이 유력시되고 있고, 칸 영화제에서의 '이슈 파이팅'을 통해 전통적인 영화 팬들에게 넷플릭스라는 세계적인 'OTT'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를 알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비록 국내에서의 성과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넷플릭스는 <옥자>에 이어 드라마 <킹덤>과 자쳬 제작 예능 등을 선보이며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봉준호 감독 역시 <설국열차>에 이은 글로벌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친 후 '한국영화' <기생충>으로 복귀를 예고했다. 슈퍼돼지 '옥자'의 활약이 이렇게 눈부셨다.  

# 836(만 명) : 마동석이 <범죄도시>와 <부라더>로 만난 관객들

 배우 마동석.

배우 마동석. ⓒ 머리꽃


명실상부, '올해의 배우'는 마동석이었다. 지난 9월 개봉한 <범죄도시>(687만 명)가 <남한산성>과 <킹스맨: 골든 서클>을 꺾는 괴력을 발휘하며 장기 흥행에 성공했다. 연이어 개봉한 코미디 <부라더>(149만 명) 역시 마동석의 '티켓파워'에 힘입어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더욱이, 두 작품 모두 메가박스(주)플러스엠과 ㈜키위미디어그룹이라는 중소/신생 배급사가 배급했다. <범죄도시>와 마동석이 거대 배급사들와 특급 외화를 거꾸러뜨린 셈이 됐다.  

이미 '마블리', '마요미' 등으로 회자되며 젊은 층의 주목을 받아왔던 마동석. '천만영화' <부산행>을 통해 인지도와 호감도를 한껏 끌어 올린 그는 <범죄도시>의 기획부터 참여,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였다. <범죄도시>의 흥행은 잘 만든 캐릭터 드라마 혹은 범죄물에 대한 꾸준한 수요, 마동석과 같은 새로운 스타에 대한 대중의 갈망 등 많은 교훈을 남겼다. 차기작 촬영을 이미 마친 '마블리' 신드롬은 2018년 무술년 한 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 2027(개) : CJ가 배급한 <군함도>의 개봉일 스크린 수

'2000'이라는 마지노선에 대한 반발은 거셌다. 멀티플렉스들은 <군함도>에 지난 7월 26일 개봉일에만 2027개 스크린을 몰아줬다. 이는 결국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재점화하며 각종 매체와 관객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흥행에 악영향을 미쳤다. 더욱이 <군함도>는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친일 논란'과 '평점 테러'에 휘말렸고, 개봉일 150만 관객을 동원하며 '천만'을 예고했던 초반의 기세와 달리 658만 명을 동원하는데 그치며 어이없이 '좌초'했다.

<군함도>를 둘러싼 논란은 결국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담합과도 같은 '스크린 몰아주기'의 극점을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었다. 스크린 수는 부풀려졌고, 논란은 일파만파 커져갔다. 피해는 고스란히 류승완 감독을 비롯한 영화의 제작진에게 돌아갔다. 해묵은 수직계열화,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군함도>를 통해 폭발한 셈이다.

이를 해결코자 지난 11월 29일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 대책위원회'(반독과점영대위)가 발족했다. 2018년 이를 위해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는 '영비법'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 문재인 정부의 도종환 문화체육광관부 장관이 어떤 해결 방안을 도모할지, 또 당사자이자 해결 주체인 대기업 배급사와 영화인들을 이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마동석 택시운전사 송강호 나문희 설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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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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