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2017)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2017) 한 장면 ⓒ 뉴스타파(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2017년 다큐멘터리 영화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저널리즘'과 '노무현', '사드', '종교', '여성'이다.

올해 다큐멘터리 영화 중 유독 언론인 출신 감독들이 제작, 연출한 작품들이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 첫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2016)을 연출한 최승호 감독(현 MBC 사장)은 올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언론 장악과 공영방송 몰락 과정을 담은 <공범자들>(2017)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공범자들>은 관객 26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지만, 차분하면서도 냉철한 톤으로 공영방송 붕괴의 문제점을 짚어내 영화적 완성도도 뛰어나다는 평이다.

MBC, KBS 파업과 맞물려 공영방송 정상화에 대한 문제의식과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공범자들>은 성공적인 저널리즘 다큐멘터리의 표본으로 꼽을 만하다. <공범자들> 외에도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제작, 참여한 <더 플랜>(2017), <저수지 게임>(2017), MBC 기자 출신인 이상호가 만든 <김광석>(2017) 또한 흥행에 성공해 올해는 저널리즘 다큐의 강세가 두드러진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가장 많은 관객수 기록한 <노무현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2017)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2017) 한 장면 ⓒ 영화사 풀


2017년 극장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수를 기록한 작품은 이창재 감독의 <노무현입니다>(2017)이다.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제작 지원 프로그램인 '전주 시네마 프로젝트'로 공개된 <노무현입니다>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 직전까지 베일에 싸여 있던 영화다. <노무현입니다>라는 현재의 제목도 영화제 직전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 5월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함께 주목받게 된 <노무현입니다>는 누적관객수 185만 명을 돌파하며, 올해 다큐멘터리 영화 중 최다 관객수를 기록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과 더불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분위기가 영화 흥행에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길 위에서>(2012), <목숨>(2014)을 연출한 이창재 감독 특유의 담백하면서도 감각적인 인물 조명이 돋보이는 영화다.

<노무현입니다>의 흥행 열풍에 가려 상대적으로 관객들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박문칠 감독의 <파란나비효과>(2017) 또한 올 한해 꼭 기억해야 할 다큐로 꼽힌다.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문제점을 다룬 이 영화는 사드 배치 예정지 발표 이후 달라진 일상을 살고 있는 성주 주민들의 모습과 투쟁을 보여준다.

단순히 사드 배치의 잘잘못만 지적하는 차원을 넘어서, 사드라는 무기가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던 주민들의 삶을 얼마만큼 위협하는지를 잘 보여줬다. 또 이에 강한 문제의식을 느낀 주민들의 적극적인 인식 변화를 포착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비프메세나상을 수상한 데 이어,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불장군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박배일 감독의 <소성리>(2017) 또한 사드 배치 이후 고통받는 성주 소성리 주민들의 변화된 일상과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평단의 호응을 얻었다. <파란나비효과>, <소성리> 모두 공동체 상영 형태로 관객들과 활발히 만나고 있다.

종교인 삶 다룬 3편, '종교영화 불패' 신화 이어가

 다큐멘터리 영화 <내 친구 정일우>(2017)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내 친구 정일우>(2017) 한 장면 ⓒ 푸른영상


해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테마는 '종교'다. 종교인의 삶을 다룬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이하 <서서평>, 2017, 홍주연, 홍현정 연출), 문창용·전진 감독의 <다시 태어나도 우리>(2016), 김동원 감독의 <내 친구 정일우>(2017) 모두 독립영화 흥행 기준 1만 관객 돌파에 성공하며 '종교영화 불패' 신화를 이어갔다.

서서평 선교사의 일대기를 다룬 <서서평>, 티벳의 어린 린포체와 그를 돌보는 스승의 이야기를 그린 <다시 태어나도 우리>, 평생 빈민 운동에 종사했던 정일우 신부를 회상하는 <내 친구 정일우> 등 세 영화 모두 종교를 전면으로 다루었다기보다는 영화 속 주요 인물의 삶의 궤적에 집중했다는 평가지만, 일생을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헌신한 진정한 종교인의 삶은 세속적인 성공을 쫓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에게 깊은 감동과 위안을 선사한다. 

여성이 주축으로 등장하는 다큐멘터리도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었다. 지난 9월에 개봉한 이승문 감독의 <땐뽀걸즈>(2017)는 올해 4월 KBS스페셜에서 방영한 동명의 프로그램을 극장판으로 확장하여 개봉한 작품이다.

지역 경제를 책임지던 조선소의 불황으로 극심한 타격을 맞은 경남 거제를 배경으로 우울한 현실 속에서도 발랄함을 잃지 않는 거제여상 댄스스포츠 소속 학생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감성이 돋보인다. 과거 레즈비언을 지칭하던 '바지씨'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시작하는, 이영 감독의 <불온한 당신>(2015/개봉 2017년 7월)은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의 광풍을 날카롭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바 있다.

아쉽게 개봉을 통해 보다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는 없었지만, 올해 각종 국제 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들 중에서도 '여성'을 담아낸 다큐멘터리가 돋보였다. <개의 역사>(2017), < B급 며느리>(2017), <버블 패밀리>(2017) 등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다큐멘터리는 모두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다루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2017)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2017) 한 장면 ⓒ 선호빈


특히, <개의 역사>의 김보람 감독과 <버블 패밀리>의 마민지 감독은 여성 감독의 시선에서 한국의 무분별한 부동산 개발과 이로 인해 밀려나는 사람들의 현실을 짚어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얻기도 했다.

감독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의 고부갈등을 담은 선호빈 감독의 < B급 며느리>는 한국 가족 문화에 강하게 뿌리박힌 가부장제 관습을 스스로 꼬집는 통렬한 영화다. 제17회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첫 공개 이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주현숙 감독의 <빨간 벽돌>(2017)은 30년 전 구로동맹 파업을 주도했던 여성 노동자들과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제9회 DMZ 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이원우 감독의 <옵티그래프>(2017)는 일제강점기 시절 OSS 특수요원으로 활약하고, 한국전쟁 시절에는 치안국장을 지낸 감독 자신의 외할아버지의 일대기를 2010년대 후반을 살고 있는 여성의 시선에서 해체하고 새롭게 구성하고자 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서울독립영화제에 상영한 허철녕 감독의 <말해의 사계절>(2017)은 밀양에 거주하는 90세 김말해 할머니의 구술사를 통해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와 밀양 송전탑 투쟁을 바라본다. 앞서 언급한 <파란나비효과>, <소성리>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대상 또한 사드 반대 투쟁에 전면으로 나선 여성(주민)이다.

여성, 사드, 역사 다큐멘터리로 빛났던 한 해

이 외에도 <트루맛쇼>(2011), (2013)을 연출한 김재환 감독이 박정희,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관점에 서서 박정희 신화를 해부하고자 하는 <미스 프레지던트>(2017)를 공개했다. 지난 2014년 역대 다큐멘터리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의 진모영 감독은 가족을 위해 매일 사선의 경계를 넘나드는 '머구리' 박명호씨의 사연을 담은 <올드 마린보이>(2017)를 발표하며 평단과 관객의 고른 호응을 이끈 바 있다.

그라인드 코어밴드 밤섬해적단에게 일어난 위기를 통해 한국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하며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등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찬사를 받은 바 있는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2017, 정윤석 감독)도 올해 주목해야 하는 다큐 중 하나로 꼽힌다. 1991년 일어난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을 다룬 권경원 감독의 <국가에 대한 예의>(2017)는 부산국제영화제, 사람사는 세상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상영 당시 받은 호평에 힘입어 내년 극장 개봉을 준비 중이다.

소위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강세가 두드러진 2017년 다큐멘터리 극장가였지만, '사드', '여성', '역사' 등 동시대에 대두되고 있는 사회 문제를 담은 다큐멘터리 또한 빛났던 한 해였다. 아쉽게도 이들 작품 중 일부만 극장 개봉 형태로 만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보다 많은 관객들이 영화적 재미와 사회 변화 열망을 고루 담은 다큐멘터리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