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에서는 매년 연말 재미있는 영화제가 열립니다. 이름하야 '비키와 함께라면 영화제'인데요. 영화제가 재미있습니다. 주 관객은 아이들과 청소년, 그리고 부모님들이며 입장료는 라면입니다. 물론 현금도 가능하지만 라면을 선호하는 영화제입니다. 이 영화제를 몇 년간 주관하고 있는 설미정 선생님을 만나봤습니다.

-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저소득가정을 지원하는 '꽃들에게 희망을' 희망지기이면서 라온제나, 길 위의 학교 길잡이입니다. 쌀을 탐닉하며 주(술)를 경배하는, 언제나 보따리를 꾸리는 여자입니다. 전업은 돈 안 버는 사회복지사, 부업은 돈 버는 수학강사, 잔업은 영화제작자입니다."

- '함께라면' 영화제가 뭔가요?
"우선 '비키 영화제'라고 있습니다. 비키(BIKY)는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집행위원장 김상화 선생님)의 줄임말로 올해로 12번째 영화제를 개최했습니다. 상당히 오래 되었지요. 어른들을 위한 영화제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영화제입니다.

 '비키와 함께라면' 영화제에서 올해 개봉될 영화 중 한 작품 <아이레벨>

'비키와 함께라면' 영화제에서 올해 개봉될 영화 중 한 작품 <아이레벨> ⓒ TOBIS Film


'함께라면' 영화제 추진위원회(프로그래머 김재한 감독)는 2013년 7월에 지역에 있는 여러 단체들이 모여 "이렇게 하면 재미겠다"라며 만든 영화제를 만들었습니다. 정당하게 영화배급사에 상영료를 지급하고, 관객들에겐 관람료로 대신 라면을 받아 지역의 독거노인들과 저소득 가정에게 나눔 하자고 만든 영화제입니다. 당시에는 '함께라면' 영화제 자체적으로 지역에서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2015년, 비키를 알게 됐는데 비키의 지향점과 '함께라면' 영화제의 지향점이 비슷하더라고요. 자연스레 2년 전부터 비키와 함께라면 영화제를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비키와 함께하면서 이전 함께라면 영화제 때보다 작품성이 인정된 신작영화들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어요.

어린이 청소년 영화제를 하는 이유는 평소 영화관에 걸리는 영화들은 12세, 15세 이상 관람가를 달고 있기는 하지만 "어린이·청소년들을 위한 영화"는 아니거든요. 명절 연휴 때나 반짝 특수를 노린 애니메이션 영화가 주로 상영되기는 하지만, 영화에 대해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청소년들에게 청소년영화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행사 명칭도 '비키와 함께라면'이 되었고요."

- '비키와 함께라면' 영화제의 목적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함께라면 영화제는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달라요. 함께에 방점을 찍으면 너와 나, 우리 다같이가 되지요. 라면에 방점을 찍으면 관람료나 참가료로 라면을 기부 받아서 지역의 저소득가정이나 독거노인들에게 나눔을 하는 거지요. 저소득가정을 지원하는 '꽃들에게 희망을'과 지역 영화사 '상남영화제작소', '경남정보사회연구소', '교차로신문' 등이 모여서 지역 문화예술운동 영역과 사회복지 영역의 결합으로 시작을 했어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영화제이지만 나눔의 끝은 무궁무진합니다. 아이들을 위한 행사지만 어른들도 충분히 혜택(?)을 보는 셈입니다."

- 입장료를 라면으로 받는다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는데요. 기획 의도가 무엇인가요?
"시작은 저소득가정과 독거노인들에게 쌀과 함께 라면 지원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화를 보러온 분들이 라면을 후원하며 본인과 자녀분들이 나눔의 즐거움을 경험하기를 바랐습니다. 관람객들이 수동적인 대상으로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제의 주최자로 함께 할 수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지원하고 있는 저소득가정(170세대)뿐 만 아니라 지역별 단체별로 연대하여 라면 나눔이 필요한 가정에게 지원하는 걸 목표로 합니다. 그래서 비키와 함께라면 영화제를 통해 저소득 가정과 독거노인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나눔의 영화제로 진화시키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 많은 물품들이 있는 데 왜 하필 라면인가요?
"'꽃들에게 희망을'은 독거노인들을 위한 사랑의 쌀독을 운영하고 있는데 어르신들이 라면을 많이 좋아 하십니다. 때론 밥 대신, 국 대신, 별식으로 말이죠. 특히 지금과 같이 추워질 때는 따뜻한 라면 국물이 어르신들에게 필요합니다. 때때로 종류별 라면을 모으는 이벤트를 실시하기도 해요. 김치라면만!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보통 집집마다 라면봉지 몇 개씩 있지 않나요? 뭔가 새롭게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싱크대 문을 열고 쉽게 꺼낼 수 있는, 만만한 기부물품이라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럼 "나눔의 길"이 좀 쉬워지지 않을까 해서.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보통 사람들은 "뭔가 나누고 기부한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요. '내가 뭘 기부해'라는 식으로 말이죠.

"이런 것도 되나요?"라는 질문을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듣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두려움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눔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집에 있는 라면 봉지도 나눔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중요한 것은 마음과 실천이지 물품이 아니니까요."

- 비키와 함께라면은 앞으로도 지속될 행사입니까?
"당연히 지속할 것입니다. 매년 늦가을에 열었습니다. 그 후 경남도민미술관을 만나 매달 열기도 했고요. 올해는 비키를 만나고 경남도 교육청의 공감홀을 만나 초겨울에 찾아갑니다, 올해는 붕어빵도 함께 구워서 나눔할 예정입니다. 나누면 즐겁고 행복해지고 또 재밌으니 앞으로도 계속 할 것입니다. 

첫회는 디지털 리마스터링이 된 <로보트 태권브이>를 창원대학교에서 상영했어요. 놀랍게도 이날 모인 라면은 총 1000봉지가 넘었습니다. 첫 회의 대성공으로 여기저기에서 본격적으로 함께라면 영화제 예술영화 상영회를 시작했습니다.

 '함께라면 영화제' 첫회 사진들

'함께라면 영화제' 첫회 사진들 ⓒ 설미정


초콜릿카페 미카에서는 영화 <피부색깔 꿀색>과 히말라야와 함께라면 토크콘서트를 하였고요. 지역아동센터 유소년축구팀의 이야기인 <누구에게나 찬란한>과 함께라면 영화제 진행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015년 3월부터는 경남도립미술관과 함께라면 영화제 예술영화상영회를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함께라면 영화제는 2013년 10월부터 현재까지 총 11편의 영화를 상영하고 관람료로 라면(총 1만700봉지)를 받아 7년 동안 633세대의 경남지역 저소득가정과 독거노인들에게 나눔을 했습니다. 올해는 12월 9일과 16일 이틀간 경남도교육청 별관 공감홀에서 개최되니 많은 참여 바랍니다. 참! 아이들은 라면 3봉지, 어른들은 5개들이 한봉지가 관람료입니다."

 <누구에게나 찬란한> 상영 당시 라면 물품들

<누구에게나 찬란한> 상영 당시 라면 물품들 ⓒ 설미정


- '비키와 함께라면'의 실무자이기도 하지만 영화 제작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곧 작품이 개봉한다면서요?
"<오장군의 발톱>이라고, 우여곡절 끝에 찍었고 완성된 작품입니다. 소위 말하는 독립영화예요. 깊은 산골의 순수한 청년 장군이가 수십 년간 전쟁을 벌이고 있는 군대에 징병되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뤘어요. 처연할 만큼 아름다운 영상미에 맑고 순수한 눈빛의 장군이가 핏빛으로 물들어가는 영화입니다.(감독 - 김재한, 출연 - 명세창·조혜정·명계남·서갑숙 등)

2018년 2월 7일 성산아트홀 소극장에서 복합문화콘서트 양식으로 시사회를 개최할 예정이에요. 현실적으로 예산이 없어 '십시일반 나도 제작자 시민펀딩'으로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600여 명의 시민 제작자들과 수백 명의 시민 엑스트라들이 참가했어요."


 <오장군의 발톱> 시민 펀딩지를 들고 있는 설미정씨.

<오장군의 발톱> 시민 펀딩지를 들고 있는 설미정씨. ⓒ 설미정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여럿이 함께라면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함께 놀면 좋겠어요. 혼자 놀지 말고, 함께 만나서 말이죠. 그리고 이웃과 행복과 배려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것처럼 그리 어둡고 각박하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움직이면 됩니다. 나눔의 기쁨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긴 시간 인터뷰를 끝냈습니다. 듣다 보니 이분의 정체가 정말 궁금했습니다. 단지 나눔이 좋아서, 함께가 좋아서, 공동체의 행복을 믿고 사는 분이었습니다. 본인의 생활이 힘들 만도 한데 그는 힘든 내색을 별로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며, 어르신들을 위해 헌신하는 분입니다. 자신의 일을 홍보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자신의 노력을 치하받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좀 더 많은 라면이 모여 좀 더 많은 분들께 나눠드리고 싶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진 세상이 살 만한 곳입니다. 동참하시는 분이 이렇게나 많으니까요. '함께라면'영화제가 전국 각지로 퍼져, 나누는 삶을 사시는 분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웃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을 응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에도 올립니다.
비키와 함께라면 영화제 어린이청소년 영화 비키영화제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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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보다는 협력, 나보다는 우리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책과 사람을 좋아합니다.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일의 걱정이 아닌 행복한 지금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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