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토시와 에미는 붐비는 전철 안에서 우연히 만난다.

타카토시와 에미는 붐비는 전철 안에서 우연히 만난다. ⓒ (주)디스테이션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맥키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로 대부분의 로맨스 장르에서 지난 400년간 부모의 반대가 연인의 사랑을 막는 장애물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만큼 로맨스물은 장르의 관습(Convention)을 극복하기 어려운 장르이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놓는 것이 쉽지 않다.

연인들이 부모의 반대에 부딪치거나 어느 한 쪽이 불치병으로 죽거나, 서로 오해가 쌓여 원치 않게 헤어지는 등의 설정이 끊임없이 반복돼 왔는데, 서로 사랑하지만 함께할 수 없는 스토리를 얼마만큼 설득력 있게 혹은 새로운 방식으로 그려내는가에 작가의 역량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도 운명처럼 만난 어린 연인들이 서로를 몹시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하는 이야기를 애잔하고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에 집중한다. 영화에서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시간'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산다. 둘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

 교토의 명소를 배경으로 둘의 사랑이 펼쳐진다.

교토의 명소를 배경으로 둘의 사랑이 펼쳐진다. ⓒ (주)디스테이션


이들은 할리우드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스윗 스팟(Sweet Spot)', 즉 서로의 나이가 엇비슷해지는 시기에 만나 예쁜 사랑을 해나간다. <벤자민 버튼>에선 남자가 날마다 젊어지고 여자가 점점 늙어가는 설정이라면, 이 영화에선 남자가 나이를 먹어가면 여자는 반대로 어려진다. 이들은 5년에 한 번 30일 동안만 만날 수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사랑에 빠지는 남자 타카토시(후쿠시 소우타 분)를 등장시킨다. 그는 달리는 전철 안에서 에미(고마츠 나나 분)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영화 시작 후 겨우 세번째 컷만에 일어나는 일이다. 타카토시는 모범생에 얌전한 대학생이지만 용기를 내 에미를 따라가 감정을 고백한다. 그 후에 잔잔히 펼쳐지는 둘의 데이트는 스무 살 청춘들의 소소한 일상에서 유별날 것이 없지만 순수하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젊은 관객에겐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는 맘이 들게 하고, 나이든 관객에겐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매 컷마다 다른 영화에서도 봤음직한 교토의 유명 장소가 등장하고, 첫사랑의 이미지에 잘 어울리는 매력 넘치는 배우들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채워진다. 두 사람 다 완벽한 마스크라 프레임에 꽉차게 잡아도 결점을 찾을 수 없고 몰입도를 높여준다.

둘은 고풍스러운 카페에도 가고 벚꽃이 핀 밤거리를 걷기도 한다. 한국 영화에선 보통 배우들의 대사에 집중하면서 공간 특유의 주변음은 두드러지지 않는데, 일본 영화는 카페 내의 자연스러운 소음, 밤거리를 가득 메운 연인들의 속삭임 같은 사운드 디자인에도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느껴졌다. 그에 따라 영화 속 공간이 더 입체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다.

 타카토시는 에미의 비밀을 듣고 혼란에 빠진다.

타카토시는 에미의 비밀을 듣고 혼란에 빠진다. ⓒ (주)디스테이션


영화는 5년에 한 번, 30일이라는 시간 제한(Time Frame)이 있어서 관객을 더욱 풍부하고 고양된 감정으로 이끈다. 시간이 흐르면서 둘은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상대의 애틋한 마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특히 여주인공 에미 역의 고마츠 나나는 초반부 영화의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잘 이끌어 나가면서 귀여움, 발랄함, 애틋함, 간절함 등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소화해낸다. 아직 젊고, 필모그래피도 적은 편이지만 뛰어난 외모에만 의지하지 않고 집중해서 연기하는 모습이 대단하다. 또 타카토시와는 달리 그녀의 시간이 현실세계와 거꾸로 흐르기 때문에 만남에서 이별까지 '감정의 온도'가 타카토시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런 미묘한 변화도 비교적 잘 표현해낸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엔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끝과 끝을 이은 고리가 되어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라는 대사가 두 번 등장한다. 둘의 사랑이 30일 이후에도 지속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철도의 레일을 보여주는데, 무심히 펼쳐지는 이 이미지는 둘의 인연이 끝이 이어진 고리처럼 서로 맞닿아 있다는 시각적 메타포에 다름 아니다. 또 둘은 전철역에서 만나 전철역에서 이별한다. 이 영화가 구축한 세계는 어찌 보면 허술하고 조잡하고 황당한 판타지의 세계이지만, 나름의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잘 이끌어가고 있으며, 차곡차곡 쌓은 비밀을 하나하나 드러내는 방식이 설득력 있게 연출됐다. 12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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