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는 재벌 3세 남주인공, 가난하지만 싹싹한 여주인공, 드러나는 출생의 비밀, 거듭되는 오해와 꼬여만 가는 '고구마 스토리'. 한국 드라마는 왜 늘 이런 식일까?

다국적 합작 드라마 <드라마월드>는 K-Drama를 좋아하는 외국 팬들을 위해 제작되어 Viki와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드라마로, 15분 내외의 짧은 에피소드 10부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 드라마를 사랑하는 미국의 한 여대생 클레어 던컨(Claire Duncan)이 특별한 계기로 자신이 가장 즐겨보는 드라마 '사랑의 맛'속으로 들어간다는 설정이다.

어떤 내용이기에

 <드라마월드> 공식 인스타그램

<드라마월드> 공식 인스타그램 ⓒ <드라마월드> 공식 인스타그램


드라마 '사랑의 맛'의 남주인공 박준은 냉동식품 사업으로 유명한 서리꽃 기업 회장의 아들이다. 하지만 냉동식품은 진정한 음식이 아니라고 여겼던 그는, 사람들에게 갓 만든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집을 뛰쳐나와 레스토랑 '리베르틴'을 개업한다. 박준의 행보가 영 못마땅한 그의 어머니는 그가 하루빨리 레스토랑을 접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회사를 승계받기를 바란다. 어렸을 때부터 박준을 알고 자라 온 가인은 '리베르틴'에서 매니저로 일하며 준을 설득해 레스토랑을 정리하도록 하겠다고 어머니를 안심시킨다.

가인은 준과 약혼 한 상태지만 정작 준의 관심사는 다른 곳으로 기울고 있다. 유학파인 박준과 달리 요리를 제대로 배워 본 적 없는 수 셰프 서연. 가난한 천애고아에, 정확한 설정은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온갖 불우함을 한 몸에 안고 자랐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씩씩하게 일하는 서연을 보는 박준의 마음이 조금씩 설레기 시작한다. 서연 역시 준을 존경하고 남몰래 사랑하지만, 신분의 차이로 인해 섣불리 이를 드러내지 못 하고 있는 상황.

물론 이 두 주인공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다. <드라마월드>의 규칙 때문이다.

<드라마월드>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법칙은 남녀 주인공들이 하는 첫 키스에 비중을 크게 싣는 다는 것이다. 개나 소나 키스하는 미국 드라마와 다르게 한국 드라마에서는 주인공들의 키스가 아주 드물고 또 중요하다. <드라마월드>의 모든 장치들은 두 주인공의 사랑을 실현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예를 들면 모든 남자들은 주연, 조연을 가리지 않고 근처에 기절하는 여자가 있으면 뛰어들어 그녀를 구해낸다. 해당 여성은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이 모든 게 우연 같다고? 천만에. <드라마월드> 내엔 치밀한 장치들이 있으며 주인공을 도울 조력자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그런데 상황이 영 이상하게 흐른다. 어느 날 레스토랑에 덜컥 뛰어든 이상한 여자, 바로 그 미국 여대생이자 <드라마월드>의 진짜 주인공 클레어 때문이다. 하루 종일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미국의 평범한 소녀가 아빠의 잔소리에도 아랑곳 않다가 급기야 '사랑의 맛' 세계로 들어오게 됐다.

<드라마월드> 곳곳에서 마당쇠로 때로는 같은 반 학생으로, 또 <사랑의 맛>에서는 레스토랑 웨이터로 일하며 주인공들의 곁에서 그들의 사랑을 응원해 온 선배 조력자 세스의 도움을 받아 클레어는 본격적으로 박준과 서연을 연결하는 사랑의 큐피드가 되려고 애쓴다. 그런데 드라마라는 게 보기엔 쉬워도 직접 연출하긴 꽤 어렵나 보다. 머리를 풀라고 서연에게 조언했다가 질책을 받게 만들고, 엉뚱한 데 정신을 팔다가 와인을 쏟고, 불붙은 프라이팬에 소화기를 쏴 부엌을 엉망으로 만드는 등 클레어는 실수를 연발한다. 화가 치민 박준은 엉뚱하게 서연에게 화를 내며 그녀를 해고해 버리고 만다.

자기가 드라마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에 클레어는 조급해진다. 박준에게 가서 서연에게 사과할 것을 충고하지만, <드라마월드>의 법칙에 따라 박준은 오만하고 뻣뻣한 남주인공이다. " 남자 주인공이란 죄다 저 모양이야!" 화가 난 클레어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마음먹는다. 레스토랑에 살짝 불을 낸 뒤 서연과 박준을 레스토랑에서 마주치게 하면, 그가 서연을 구할 거 아닌가!

그런데 이게 웬걸, 클레어가 박준을 데리고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 리베르틴은 이미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불에 휩싸여 있었다. '남주인공은 항상 여주인공을 구한다'는 법칙에 따라 박준은 연기 속에 서연을 발견한다. 그 순간 암살자가 클레어를 향해 화살을 쏘고, 망설이던 박준은 클레어를 대신해 화살을 맞고 쓰러진다. 분명히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을 구해야 하는데, 그게 드라마 월드의 법칙인데.

복잡해 보이는 구성

 <드라마월드> 공식 인스타그램

<드라마월드> 공식 인스타그램 ⓒ <드라마월드> 공식 인스타그램


클레어가 낸 화재 덕분에 박준은 리베르틴을 정리하고 서리꽃 그룹을 물려받기로 마음먹고, 서연 역시 일자리를 잃고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 조연의 곁에 머무른다. 사극 드라마에서 튀어나온 암살자가 서울 시내에서 사람들에게 활을 겨누고, 가인은 빌딩에서 떨어져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사랑의 맛'은 어수선한 채로 마지막 화를 향해 달려간다.

여기서 또 다른 법칙이 등장한다. 바로 '온갖 뒤틀린 플롯과 훼방꾼 속에서 싹트는 진정한 사랑'. 가인과 파혼하고, 화재 사고에서 레스토랑을 무사히 구해내고,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밝혀내고, 이렇게 드라마의 해피엔딩이 보일 무렵 이후 전개는 어떻게 될까.

<드라마월드>에는 무서운 마지막 규칙이 있다. '마지막 회까지 남녀 주인공이 키스에 성공하지 못해 진정한 사랑에 실패한다면 드라마 월드는 사라지게 된다'는 것. 과연 클레어는 무사히 박준과 서연의 사랑을 이루어주고 '사랑의 맛'을 구할 수 있을까?

<드라마월드>엔 불필요한 샤워신, 뜬금없는 간접광고, 김치 싸대기 등 한국 드라마의 유명한 특징이 곳곳에 녹아있다. 한국 드라마를 비판적으로 봐왔던 시청자라면 분명히 이 드라마를 유쾌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작은 판타지

한편 <드라마월드>는 드라마를 너무나 사랑하는 시청자들에게 작은 판타지를 건넨다. 한국 드라마 속에서는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극중에서 클레어는 아빠에게 항변한다.

"아빠, 드라마 속에선 인생이 즐겁단 말이야. 누구나 예뻐질 수 있고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 있어. 아무리 평범한 여자라도 남자 주인공이랑 눈이 맞을 수 있고. 키스하는 순간 평생의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그러나 동시에, 클레어는 그것이 오직 드라마에서만 가능할 뿐이라는 것을 잘 안다. 드라마에서 '평범한 여자'인 서연은 사실 예쁘고 특별하며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받지만, 현실에서 '평범한 여자'인 자기 자신은 별 볼일 없는 애라는 것을. "나는 내 인생에서조차도 조연에 불과한 걸요" 그녀의 푸념은 평범한 여자가 특별한 로맨스를 만나는 드라마에 열광하는 평범한 우리들의 속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그래서일까? 클레어가 겪은 작은 로맨스가 유독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것 말이다. 자기는 눈에 띄지 않는 별 볼일 없는 애라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클레어에게 짧은 해피엔딩이 깃드는 것을 보면 '거 봐, 역시 드라마야. 너도 그 특별한 드라마 주인공들 중 하나잖아' 싶으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어쩌면 나에게도'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드라마월드>는 말한다. '드라마에서는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이제 드라마 같은 사랑이나 막연한 해피엔딩을 바랄 나이는 지났지만, 그래도 이번 연휴에는 드라마가 보여주는 행복한 판타지에 잠깐 속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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