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과정들을 통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해리엇
메인타이틀픽쳐스
03.어쩌면 해리엇은 자신의 부고 기사를 처음 떠올렸을 때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그런 성격이 주변 모든 사람을 자신의 삶에서 몰아내고 자신을 스스로 홀로 남기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 두 눈을 제대로 뜨지 않았을 뿐. 이제 앤과 해리엇은 단순히 부고 기사를 쓰기 위함이 아니라 그녀의 삶을 함께 돌아보고 그동안 채우지 못했던 소중한 가치들을 되돌아보기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낸다. 완벽한 부고 기사를 쓰기 위해 그녀가 찾아낸 네 가지 조건, 동료들의 인정. 가족들의 사랑. 누군가에게 미치는 영향력. 자신만의 개성(영화 속에서는 와일드카드라고 표현된다.)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다시 만들어 내기 위한 시간을 말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끼고, 브렌다(앤쥴 리 딕슨 역)를 만나 타인으로부터의 사랑과 공감을 배우고, 또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의 힘을 느낀다. 물론 처음에는 좋은 사망 기사를 작성하겠다는 목적 하나로 시작한 일이지만, 시간이 더해질수록 원래의 목적보다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진짜 삶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앤 역시 고집불통인 브렌다의 모습이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뿐이었지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04.그동안 우리는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멘토와 멘티의 역할을 통한 따뜻함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봐왔다. 과거 <죽은 시인의 사회>(1989)이나 <굿 윌 헌팅>(1997)가 그랬고, 최근에는 <인턴>(2015)이라는 작품이 유사한 내용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이런 소재가 자주 활용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다는 이점과 함께 삶의 보편적인 가치를 다루고 있기에 쉽게 동화되기 쉽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작품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동류의 전작들과 조금 다른 점은 단순히 신체학적 나이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작품들의 경우 대부분의 경우에 나이가 많은 쪽이 어린 친구들에게 조언하고 도움을 줌으로써 성장하도록 만드는 플롯을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오히려 반대의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을 통해서 앤과 브렌다도 각자의 성장을 하고 다른 곳에서 느끼지 못한 사랑을 해리엇으로부터 얻고 있지만 말이다.
▲세 사람은 점점 서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메인타이틀픽쳐스
05.
이 작품의 외적으로도 짚어볼 부분이 있다. 영화 산업과 관련된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할리우드를 떠올리면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지만, 실질적으로 할리우드 산업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것은 3000만~5000만 달러 정도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중소 영화들이다. 산업의 근간이 되는 중소 작품들이 끊임없이 제작되고 연출되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은 물론, 다양한 시나리오 개발이 가능했고, 배우들은 다양한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조셉 고든 래빗도 <인셉션>(2010) 이후에 < 50/50 >(2011)와 같은 작품들에서 주연을 맡았고, 마크 월버그는 <19곰 테드>(2012)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 <인턴>의 제작비도 3500만 달러에 불과하며, 작년 최고의 흥행작이었던 <라라랜드>(2016) 역시 3000만 달러 정도로 제작된 작품이었다. 이 작품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 역시 그렇다. 1억5000만 불에서 많게는 3억 불까지도 제작비가 투자되는 대형 프로젝트 작품들에 비하면 소소해 보이지만, 할리우드의 다양한 장르를 대변하고 끊임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쉬움이 있다면 2010년을 전후로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할리우드의 스튜디오들도 블록버스터와 3D 작품 제작에 더 몰두하고 있다는 것. 이로 인해 비약적으로 증가한 블록버스터 시리즈 작품과는 달리 이런 작품들의 제작이 무기한 연기되는 경우도 잦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개봉을 하지 못하는 작품들까지 포함해 여전히 할리우드 중소작품들은 매력적이고 힘이 있다.
06.
영화의 감독인 마크 펠링톤은 두 배우가 처음 함께 대본을 읽었을 때 그 장면에서 마법과도 같은 호흡을 느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영화는 단 한 군데도 흐트러지는 장면 없이 아주 매끄럽게 잘 표현되는 느낌이 든다. 다소 뻔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이지만 집중을 놓지 않게 되는 것은 아마도 그들의 연기와 그런 호흡 덕분일 것이다. 특히 오랜만에 극을 이끌어 가는 셜리 맥클레인의 연기는 그녀가 1934년생의 배우라는 것도 잊게 할 만큼 흡인력이 있으며, 매력적인 두 눈을 크게 뜨고 미소 짓는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연기도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다. 거친 대사들을 거침없이 내뱉는 어린 브렌다는 또 어떻고.
"네가 실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수가 너를 만드는 거야."
나이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의 인생은 언제나 실수 후에야 단단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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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