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리네 민박>은 제주도라는 배경, 이효리의 집을 배경으로 한 예능이다. 이효리는 1998년 아이돌 핑클로 데뷔 이후, 가장 성공한 아이돌 출신 솔로 여가수가 되었고 독보적인 이름값을 가진 존재였다. '대체 불가능한' 이효리만의 매력은 무대 위에서, 또 예능에서 유감없이 펼쳐졌다. 이효리는 톱스타로서 성장했고 여전히 그 영향력은 유효하다. 3년이나 활동을 쉬고 모습을 감췄다가 컴백한 이효리 역시 여전히 대중의 관심 중심에 있다.

이효리가 변했다

 이효리와 이상순의 '힐링라이프' <효리네 민박>.

이효리와 이상순의 '힐링라이프' <효리네 민박>. ⓒ JTBC


이효리는 언제나 '섹시함'과 '소박함'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줄 아는 스타였다. 특유의 솔직하고 재치있는 화술로 예능계의 블루칩이 되었고, 무대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특유의 섹시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이 두 가지 이미지를 따로 또 같이 이용하며 독보적인 위치에선 이효리. 음악부터 패션 그리고 예능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서 주목을 받는 몇 안 되는 스타였다.

엄청난 가창력이나 춤 실력을 겸비한 가수는 아니었지만, 이효리라는 존재는 딱 잘라 그런 기준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이효리만큼 자신의 색깔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가수는 드물었고, 여성 솔로 댄스가수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이효리 비켜' 같은 타이틀로 노이즈 마케팅이 이루어졌다. 이효리는 그만큼 '범접할 수 없는' 스타였다.

그러나 과거의 이효리와 현재의 이효리는 다르다. 화려한 무대와 스타일 그리고 재치있는 언변으로 대변되던 톱스타 이효리는 어느새 유기견을 이야기하고, 채식에 관한 생각을 풀어놓는다. 가끔은 정치적 발언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놓는 이효리의 이미지는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다. <효리네 민박>은 그 달라진 '효리'가 있기에 기획될 수 있었던 예능이다.

이효리의 첫 번째 리얼리티 프로그램 <오프 더 레코드, 효리>에서 이효리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에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며 혼자 살았다. 외출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행사장에 가기 위해 옷을 피팅하고, 광고를 찍기 위해 태국으로 떠난다. 집에서 편안한 차림으로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우리 모습과 다를 바 없지만, 결국은 이효리이기 때문에 가능한 생활들이 군데군데 포진되어 잔재미를 줬다. 가끔 잘못된 기사에 상처받아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을 터뜨리거나 굳이 악플을 찾아보며 기분 나빠하는 모습은 인간적이기는 하지만, 스타가 아니라면 경험하기 힘든 성질의 것들이다.

이효리는 <오프 더 레코드> 속에서 평범한 인간임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여전히 스타의 위치에 놓여 있다. 마치 소박함과 섹시함을 영민하게 이용하는 이효리의 행보처럼, <오프 더 레코드> 속 효리 역시 소박함 때로는 예민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 화려한 스타의 삶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

달라진 효리가 있기에 가능한 <효리네 민박>

 이효리가 아니었다면 성립할 수 없는 <효리네 민박>.

이효리가 아니었다면 성립할 수 없는 <효리네 민박>. ⓒ JTBC


<효리네 민박>의 효리는 다르다. 결혼했고, 곧 마흔이 된다. 서울의 주상복합 아파트가 아닌 제주도에 직접 지은 집에 살고 있다. TV에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를 걱정하면서 "레이저라도 받아야 하나"라는 말을 하는 모습은 여느 나이 들어가는 사람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효리는 이제 더 이상 예민하지 않다. 그리고 '스타'에 대한 강박관념도 없다. 제주도의 자연환경을 사랑하고, 많이 가지지 않고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는 이효리의 모습. 예전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만큼 여유롭다.

고민이 있으면 남편 이상순에게 말하고, 본인의 의견을 말할 때도 훨씬 더 깊어진 생각들을 털어놓는다. 민박집에 온 젊은 친구들을 보며 "그들이 부러웠다. 나는 25살에 외로웠다. 털어놓고 웃고 떠들 사람이 없었다. 친구를 만들려면 만들 수 있었지만, 마음을 닫았다. 왜 그랬을까"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역설적으로 이제는 이효리가 마음을 열어놓고 있음을 의미한다. 자신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자신과 남의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한 것 같은 이효리의 모습은 재미를 넘어선 힐링 포인트다. 게다가 이제 이효리의 옆에는 언제나 이효리의 편이 되어줄 이상순이 있다. 이상순은 이효리를 넉넉하게 품어주며 나무처럼 우직하게 옆에 서 있다.

프로그램 제목처럼 '민박'을 열기에 안성맞춤인 조건이다. 많이 내려놓고 마음이 편해진 이효리는 새로운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그를 도와줄 남편까지 있다. 제주도에 지어진 예쁜 단독주택은, 마치 펜션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예능은 이효리의, 이효리를 위한, 이효리의 프로그램이다.

게스트가 아닌 '이효리', 시청 포인트 제대로 짚어낼까

 <효리네 민박>의 시청 포인트, 게스트가 아닌 이효리.

<효리네 민박>의 시청 포인트, 게스트가 아닌 이효리. ⓒ JTBC


한 가지 아쉬운 건, 이 예능이 시청 포인트를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갈팡질팡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효리에게 방문객의 숫자나 방문 시기를 알려주지 않은 점이 그렇다. 갑작스러운 방문객들에게 당황하는 이효리의 모습이 예능 소재가 될 수 있을 거라 여긴 탓이겠지만, 오히려 그 상황은 예능 분위기에 방해가 된다. 민박집을 운영하려면 당연히 손님의 수나 방문 시기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미리 준비할 수도 있고, 예약이 꽉 차면 더 이상 예약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손님들을 위해 이불을 사러 간 그들에게조차 제작진은 그 정보를 철저히 비밀로 남겨둔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잠식한다. 그만큼 그 정보를 비공개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것은 사실 딱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치 이효리와 이상순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즐기기 위한 가학적인 장난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예능의 분위기 속에 톡 튀어나와 몰입을 방해하는 설정이다.

2회 때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일정이 겹쳐 방문객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방문객이 들어오는 상황은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이효리와 이상순이 '민박집 주인'임에도, 그 주인에게 최소한의 민박객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마구 들이닥치게 만드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잘못하면 그들의 잠자리마저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을 상황. 투숙객에게도, 이효리-이상순에게도 모두 민폐다.

어떤 예능적인 재미를 뽑아내기 위한 설정이겠지만 이런 불필요한 설정으로 <효리네 민박>은 오히려 기획력을 의심하게 만든다. 효리네 집, 효리의 캐릭터, 이상순과 결혼한 효리. 이 예능은 이효리가 다 했다. 그 이효리를 이용해 좋은 성과를 얻었다면, 최소한 몰입을 방해할만한 요소 정도는 제거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애초에 이효리가 없었다면 이 예능은 성립 자체가 되지 않는 예능이었다. 이효리가 있기에 시청률은 6%를 넘겼다. 이런 '보물 같은 소재'를 배려하지 않은 설정이 아쉽다면 지나친 트집일까. <효리네 민박>을 시청하는 이유에 대한 고찰이 조금 더 필요해 보이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동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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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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