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의 한장면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박열과 후미코 간의 남다른 신뢰와 애정은 영화의 굵직한 줄기다. 같은 형무소에 수감된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고 간간히 만나며 사랑을 이어가는 전개는 어이없을 만큼 당당하고 천진난만한 태도 덕에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내내 유쾌한 웃음을 자아낸다. 기꺼이 대역 죄인이 되어 함께 사형을 받겠노라 외치는 이들에게 형무소는 새로운 '동거' 공간이고, 심지어 죽음조차도 함께해 두려울 것 없는 '동행'이다. 자신들을 심문하는 검사에게 부탁해 함께 사진을 찍고, 각각 조선 관복과 치마 저고리를 입고 출두해 재판정을 혼례식으로 만드는 에피소드들은 특히 인상적이다. 중간중간 서로 코를 찡긋하는 둘만의 인사는 여느 청춘 커플의 싱그러움과도 다를 바 없다.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가 권력에 저항하고 자유를 부르짖는 아나키즘(무정부주의)과 맞물리는 지점은 의미심장하다. 특히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진 뒤 조선에서 친할머니 집 식모살이를 한 후미코의 과거는 박열을 향한 그의 애정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한다. "3.1운동이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그의 회상은 권력에 대한 약자의 분노, 나아가 제국주의에 맞선 시민의식의 성장으로까지 비친다. 가족이 없는 후미코와 혼인신고를 한 박열이 "사형 후 시신을 조선의 고향에 함께 묻어달라"고 말하고, "함께 찍은 사진을 조선의 어머니에게 보내겠다"고 약속하는 에피소드들은 든든한 박열을 그의 든든한 연인이자 일종의 '구원자'로까지 위치시킨다.
다만 박열과 후미코의 로맨스를 중심에 두면서도 곳곳에 곁다리를 걸친 영화의 서사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감이 없지 않다. 특히 영화 초반부 관동 대지진 이후 벌어지는 조선인 학살 시퀀스는 단편적으로만 다뤄져 못내 찝찝하게 남는다. 지진 이후 일본 민중 사이에 퍼진 광기, 일본 내각이 처한 당시의 딜레마,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제의 폐해 등을 도마에 올려놓고도 이에 대해 깊은 성찰을 제시하지 못한 점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박열>이 역사적 사건과 괄호로 남은 로맨스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한 것으로 비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