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코를 자신의 아내로 삼기 위해 남편 타케히로(오른쪽)와 대결하는 타조마루(왼쪽)
구로사와 아키라
이후 타조마루는 마사코를 타케히로로부터 '빼앗고자' 목숨을 건 진검 승부를 펼치려 한다. 하지만 도망치고 헐떡이는 꼴불견 승부가 이어지더니 타케히로가 어이없게 숨진다. 관아에 붙들린 타조마루는 과장된 몸짓을 보이고 '자신은 당당하게 싸웠다'며 거짓을 말한다. 관아에서 재판을 받는 타조마루의 태도는 극동군사재판정에서 끝내 죄를 뉘우치지 않은 A급 전범들을 떠올리게 한다.
타조마루는 여성(마사코)을 차지하려는 목적의 명예롭지 않은 싸움 끝에 살인을 저질렀다. 그래서 사건의 내막이 밝혀질까 전전긍긍 했고 용감히 싸웠다고 떠벌렸다. 하지만 현장을 고스란히 숨어 지켜본 나무꾼에 의해 거짓이 들통 난다. 거칠 것 없는 자유롭고도 터프한 남성(도적)으로 세를 떨치던 타조마루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한 침략자 일제의 끝 모를 추락이라 하겠다.
뒷맛이 찝찝한 여운, '그래도 뭐 어쩌겠어?'종합하자면 구로사와는 '살인의 진상규명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주제로 내세우며 전범국 일본을 직접 비판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둘 중 살아남은 남자를 따르겠다'는 마사코를 통해서 '전쟁을 지지하던 일본인과 전쟁을 지지하지 않던 일본인'의 양 입장을 저울질하는 모습을 강조하며 살인(전쟁)의 본질을 희석하려 했다는 의혹도 해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얄궂게도 "난 이 세상이 지옥이라고 믿고 싶지 않아"라고 외치며 아기를 버린 부모가 남겨둔 재물을 휙 챙겨 라쇼몽을 떠나는 평민의 솔직한 시선만큼은 유독 강력하게 느껴진다. 살인의 진상을 알게 된 평민은 '믿고 싶지 않다'며 현실부정을 선택했다. 군국주의 시기 전쟁에 동참했다는 원죄에서 벗어나 주위에 아랑곳없이 살아가겠노라는 무책임한 선언에 가깝다.
구로사와가 제시한 '새로운 일본상'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뚜렷하게 역설된다. 나무꾼은 살인사건의 현장을 보고도 제대로 밝히지 못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속죄의 차원에서 아기를 키울 것을 다짐한다. 해가 비치는 라쇼몽이 부각되고 평민과 나무꾼의 시선이 얽힌 모호한 일본상이 관객 앞에 펼쳐지며 이야기는 끝난다. 억수 같던 소나기는 그쳤지만 앞날이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채로.
▲라쇼몽에 버려진 아기를 자신이 키우겠다며 안고 떠나는 나무꾼.구로사와 아키라
살인을 저지른 타조마루의 꼴사나움이 명백하게 드러나자 급하게 마무리되는 결말이라니 참 찝찝하기 그지없다. 일제의 전쟁범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철저한 반성을 주저한 구로사와 본인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아마 그의 시선은 평민에 쏠려있지 않았을까.
일제의 과오는 한국에서 곧잘 비판받는다. 하지만 그동안 개별 일본인들이 침략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해왔는지는 관심을 잘 두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관심 있는 여러분은 <라쇼몽>을 본 뒤(한국에서는 2001년 저작권 제한이 풀려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무료로 볼 수 있다) 영화의 탄생비화가 담긴 책 <복안의 영상>을 한번 손에 들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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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 일본의 동향에 큰 관심을 두며 주시하고 있습니다. 적폐를 깨부수는 민중중심의 가치가 이땅의 통일, 살맛나는 세상을 가능케 하리라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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