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씨 댁. 끝까지 지키려 했던 이 집도 결국 붕괴 위험 때문에 2016년 초에 철거했다.
이두희
살 수 없는 땅이지만 떠날 수 없었다. 쓰나미가 삼켜버린 아이들이, 부모가 아직도 거기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아서. 다 무너져 버린 집 안에 들어서면 아직도 아이들이 자신을 향해 걸어 나올 것만 같아 집을 부술 수도 없었다.
그 집을 끝까지 남겨서 이곳을 찾아온 사람에게 '여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는 무너진 집 옆에 새집을 지었다. 방사능이 번진 땅에는 오염을 제거해준다는 유채꽃밭을 만들었다. 부친이 남긴 땅에서 이제껏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농사도 시작했다. 그렇게 가족을 기억하고, 사람들에게 이곳에 살던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게 우에노씨의 소박한 꿈인지도 모른다.
죄책감, 망설임... 5년 9개월 만에 마주한 딸기무라 노리오씨가 살고 있던 곳은 후쿠시마 제1 원전이 있는 오구마마치다. 그 역시 3.11 쓰나미로 아버지와 아내, 작은딸을 잃었다. 지금은 나가노에서 큰딸과 방사능 오염을 피해 살고 있다. 아버지와 아내의 시신은 발견했지만 당시 만 7살이었던 작은 딸 유나는 찾지 못했다.
오구마마치는 지금도 사람이 살 수 없고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선 매번 특별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게다가 지금 사는 나가노에서 먼 곳이라 수색 작업을 벌이기가 쉽지 않다. 방사능 오염이 심해 자원봉사자를 찾기도 어렵다. 지원자가 있어도 망설이게 된다.
"다른 사람을 피폭시키면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기무라 노리오씨가 끝없는 질문과 망설임에 괴로워할 때 함께 해 준 이가 바로 우에노씨다. 하지만 사람이 좀 늘었다고 해봐야 기껏 할 수 있는 건 삽자루 하나 들고 흙더미를 뒤지는 것뿐이다. 5년여의 세월 동안 가족들의 유품은 찾았지만, 딸의 시신은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영화의 말미, 방사능 '오염물질 중간저장 구역' 설치에 앞서 환경성이 진행한 수색 작업에서 사람의 치아 일부분이 발견된다. DNA 검사 결과 그 치아는 기무라 노리오씨의 딸 유나의 것으로 확인된다.
멈출 수 없는 기억의 작업
▲영화가 시작되기 전 극장의 모습. 약 60여 석의 좌석이 꽉 찼다.
이두희
이날 특별상영회에는 영화를 제작한 가사이 치아키 감독과 영화에 등장하는 기무라 노리오씨가 참석해 관객과 대화 시간을 가졌다. 가사이 감독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기억을 남기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어떤 순간에도 살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무라씨는 딸 유나의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의 기분을 묻자 "기쁘다기보다 오히려 억울하고 화가 났다. 환경성의 수색이 시작되고 채 3주가 지나지 않아서 뼈를 발견했다. 이렇게 쉽게 발견될 것을 5년 9개월 동안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영화 시작에 앞서 가사이 감독(오른쪽)과 영화에 출연한 기무라씨가 인사하고 있다.
이두희
이 이야기를 들으며 한 장면이 떠올랐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의 모습이다. 박근혜가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고 구속되던 날 세월호가 올라왔다. 모두가 '이렇게 쉽게 될 일이었나, 도대체 이제까지 무엇을 한 것이냐'고 분노했다. 권력의 속성은 원래 그런 것일까. 역사 문제에 있어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한국과 일본이, 왜 이런 문제에서는 이렇게도 꼭 빼닮은 것일까.
사람들이 세월호에 관해 한목소리로 '기억하겠다'고 말하듯, 우에노와 기무라 두 사람도 결국 기억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 아닐까. 그 기억은 개인적 기억에 그치지 않고 집단적·사회적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 그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자체가 곧 저항이다. 기억을 남기기 위해 싸워나갈 이들에게 멀리서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영화 <라이프> 홍보물. 기억하기 위한 이들의 노력을 응원한다.Rain Field P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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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의 장애인 인형극단 '종이풍선(紙風船)'에서 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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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이후 5년 9개월, 뼛조각으로 돌아온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