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봉구, 권세은)은 들어본 적 없는 노래였는데 마치 모래 백사장에서 사금이라도 발견한 듯 처음 듣는 노래가 주는 감동이 이렇게 클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오르막길'(봉구, 권세은)은 누군가 힘들 때, 혹은 내가 힘들 때 위안받을 수 있겠구나 싶게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듯한 가사가 너무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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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감동 받고 위로 얻고 공감하기사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노래들은 주로 발라드 계열이긴 하지만 아닌 것들도 있다. '박하사탕'(허각, 서창훈)은 30대 동갑의 두 남자가 불렀는데, 이후 나는 얼마동안 아침마다 이 노래를 들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후 어질러진 거실로 돌아와 한숨 한번 쉬고 내 몸을 활력모드로 바꿔주는 사이다 같은 노래. 지금도 아침에 청소기 돌릴 때 자주 생각나는 노래다. 'Day Day'(휘인, 박희주) 역시 20대 또래 여성 커플이 불렀는데 나에겐 익숙하지 않은 노래였는데도 그들의 젊음, 풋풋함, 열정, 에너지에 너무 신나서 나 또한 몸을 들썩들썩 했었다.
'단발머리', '해변의 여인'(라디, 장선영) 두곡은 라디의 편곡 매력에 흠뻑 빠지겐 한 노래였다. 너무나 잘 알려진 노래인지라 자칫 잘못하면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도 라디의 편곡이 힘을 발휘하며 너무 예쁘고 매력적인 노래로 탈바꿈했다. 정말 풋풋하면서도 손끝이 간질간질한 무대였다. 'Come Back Home'(린, 김인혜)은 애절한 발라드만 불렀던 린 커플의 변신작이었다. 반가웠고, 기대되었고, 실제로 기대보다 훨씬 더 멋진 무대를 보여주었다. 흔히 케미라 불리는 것이 이들 커플에 꽉 들어차 있음이 확인된 무대였고, 어떤 스타일의 노래를 부르더라도 잘 할 거라는 믿음감으로 나 역시 청중평가단이 되어 버튼 하나 꾹 눌러 더하고 싶은 무대였다.
사실, 노래로 감동을 받고, 위로를 얻고, 공감을 한다는 것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노래를 좋아하지 않으면 모를까 맘에 들면 들으면 되고 거기서 밀려오는 감동이나 기쁨이나 슬픔은 느끼면 되니까. 그리 비용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다. 굳이 우리가 평론가 처럼 글로 남겨야 되는 것도 아니고 꼭 누구에게 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듀엣가요제>를 보면서 난 한번은 꼭 남기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곳의 듀엣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삶의 여러 단면들을 관찰하게 되는 소소하지만 짜릿한 기쁨을 얻게 된 거였다. 사실은 그것에 대해 좀더 이야기 하고 싶었다.
<듀엣가요제>이니 당연히 듀엣이 등장한다. 듀엣은 둘이라는 뜻을 기본으로 담고 있다. 우리가 둘이라고 할 때 흔히 생각되는 것들은 짝의 개념, 결혼이라든가 연애와 같이 둘이어야만 가능한 것들이다. <듀엣가요제>를 보며 여러 커플들을 보았다. 둘 중 하나는 프로 가수이고, 하나는 아마추어여도 어느 정도 경쟁을 통해 선택되었기에 프로에 못지 않은 스킬을 갖고 있는 반프로들이다. 그러다보니 <듀엣가요제>는 대중이 보기에 어느 정도의 품질을 보장해 준다. 그런데 노래 실력에서 만큼은 어디 내 놓아도 모자라지 않을 이들 중에서도 유난히 더'인연'이다 싶은 듀엣들이 있다. 한동근, 린, 봉구, 박기영, 산들 커플 등(순전히 내 생각이다). 새로웠던 건 남녀 커플이라고 해서 연인의 느낌을 주지는 않았으며 동성 커플이라고 해서 매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편견에서 벗어나는, 잘 명명이 되지 않는 관계의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그들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삶속에서도 편견없는 다양한 관계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했다.
듀엣의 구성으로 보면 한쪽은 프로가수이고 한쪽은 아마추어이다 보니 연습과정에서 아마추어가 프로가수나 방송사의 물질적인 지원을 받는다. 가수가 소속되어 있는 기획사를 경험할 기회를 얻기도 하고 가수와 연습하면서 실력적인 지원을 받는다. 혼자서 노래방에서 연습할 때보다 일취월장할 수 있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한편으론 가수에게도 아주 소중한 기회가 아닐까 싶다.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오랜만에 듀엣을 해봤다는 가수들이 꽤나 있었다. 그들은 듀엣을 하며 본인들도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했다. 가수이기에 리드의 부담도 있을 것이고 잘 알지도 못했던 이와 듀엣 호흡을 맞춘다는 건 혼자 노래부를 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역할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인간적인, 음악적인 공감을 동시에 해 내고 그에 따라 멋진 무대 까지 만들어 내는 건 쉬운 과정은 아닐 것이다. 눈에 보이는 건 아마추어가 프로가수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는 스토리로 보여지지만 사실 그 안엔 가수의 성장도 같이 있다. 오랫동안 <듀엣가요제>에 머물렀던 가수들을 보면 그게 보였다. 둘의 관계에서 한쪽의 성장만으론 어렵다. 균형이 필요하다. 결국 관계의 이야기가 된다.
둘에 대한 얘기가 나온 김에 좀더 덧붙이자면, 둘이 불러서 그 위력이 두 배 이상으로 커지는 노래들이 있다. 원곡 자체가 훌륭해 듀엣으로도 훌륭한 정도로 그치는 노래도 있지만 원곡이 추구하는 느낌을 배가 시키는 노래도 있고, 원곡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다른 느낌으로 전이시켜버린 노래도 있다. 나에겐 '널 사랑하지 않아'(한동근, 최효인), '사랑이란'(봉구, 권세은), '짝사랑'(봉구, 권세은), '단발머리'와 '해변의 여인'(라디, 장선영) 같은 노래들이다. 유에서 유를 창조한 노래들이다. 어쩌면 없던 것을 만들 때 만큼이나, 혹은 감히 그 보다 더 치열하게 원곡에서 탈출해 나온 노래들이 너무나 반갑다.
▲'Come Back Home'(린, 김인혜)은 애절한 발라드만 불렀던 린 커플의 변신작이었다. 반가웠고, 기대되었고, 실제로 기대보다 훨씬 더 멋진 무대를 보여주었다. MBC
듀엣의 위력, <듀엣가요제>의 건승을 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듀엣가요제>가 나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건지 전엔 멜로디의 흐름에 내 감정을 실어 노래를 듣곤 했는데 지금은 가사에 집중해 듣는 습관이 들어버렸다. <듀엣가요제>는 경쟁의 형식을 띠고 있고 듀엣인 만큼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간의 감정의 주고받음이 중요하다. 따라서 멜로디 만큼이나 노래가 담고 있는 내용, 가사가 매우 중요해진다. 그만큼 진정성이 중요해진다. 때론 전혀 대중적이지 않은 노래로 승부를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청중평가단의 표를 조금 덜 얻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나에겐 숨은 진주를 발견한 느낌으로 다가온 노래들이 몇곡 있다. '오르막길'(봉구, 권세은), '사랑이란'(봉구, 권세은), '난 별'(린, 김인혜), '안아줘'(김필, 신해원)와 같은 노래들이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같은 노래들.
또 <듀엣가요제>를 보다보면 흔히 '사연있는 이들'이 많이 나온다. 혹 그들이 선택된 이유가 어떤 기획/편집 의도에 따른 것이라 해도 이들이 그런 사연 속에서 노래 부르기를 꿈으로 갖고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점은 인간적으로 충분히 공감될 만한 것이다. 희귀병으로 고생한 사람,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 부모님이 아픈 사람, 왕따를 당해 본 사람, 자존감의 밑바닥에서 허우적대는 사람 등. 이들의 공통점은 삶의 끈을 놓지 않게 도와 준 것이 노래이자 음악이었다는 점이다. <듀엣가요제> 무대에서 화려한 변신을 보여주었든, 아니면 어색하지만 최선을 다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든, 어느 것이든 보는 이들에겐 감동이 된다. <듀엣가요제> 안에 이렇듯 인간극장 또한 들어있다.
<듀엣가요제>를 보며, 난 듀엣의 위력에 푹 빠졌다. 듀엣이 빚어내는 감동의 크기는 생각보다 컸다. 아는 노래들은 그 매력이 더해지거나 새로운 느낌으로 재발견되기도 하고 몰랐던 노래들은 내 감성목록의 빈곳을 채워나갔다. 그렇게 내 마음이 촉촉해지고 부드럽게 다져질 때 나의 일상은 훨씬 유연해 진다. 엄마로서든, 아내로서든, 친구로서든, 동네 아줌마로서든 훨씬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정도면 <듀엣가요제>에 고마워해도 될 것 같다.
게다가 난 내 일상 속에 '둘'의 모습을 띤 것들에 대해서도 떠올려본다. 평생 듀엣이 될 남편과, 환상의 짝꿍이라 여기는 아이와 듀엣으로 다니며 다투고 삐치고 화해하고 사랑하며 산다. 부부 사이엔 친구도 있고 연인도 있고 사제의 관계(서로 배운다는 뜻에서)도 있듯이, 아이와 엄마 사이엔 어른과 아이의 관계 뿐 아니라 친구의 관계도 있듯이, 하나의 관계 안에도 여러 모습을 만드는 건 하기 나름이다. 그러려면 상대방을 진심의 눈으로 자세히 오래 보아야 한다. 그러다보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 누구의 눈에도 훤히 보이는 그 인연의 끈끈함이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 <듀엣가요제>의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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