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프로농구(KBL)에 '괴물 신인' 이종현(울산 모비스) 열풍이 거세다. 발등 부상으로 시즌 개막 후에도 개점 휴업 상태였던 이종현은 지난 1월25일 서울 삼성전에서 데뷔전을 치렀지만 2득점 5리바운드로 실망스런 성적을 남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상 복귀 후 실전 경험이 부족했던 이종현이 코트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종현은 자신이 왜 '괴물'이라 불리는지 증명하는데 이틀의 시간 밖에 필요하지 않았다. 이종현은 데뷔 2번째 경기였던 27일 창원 LG전에서 34분을 소화하며 24득점 18리바운드 5블록슛을 기록하는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다. 아직 단 3경기에 출전했을 뿐이라 평가를 내리긴 다소 이르지만 이종현은 평균 12.7득점9.3리바운드2.7블록슛을 기록하며 입단 당시 기대에 걸맞은 활약을 하고 있다.
KBL에 이종현이 있다면 여자프로농구(WKBL)에는 '거물 루키' 박지수(KB스타즈)가 있다. 193cm의 축복받은 신장에 농구 선수출신 아버지(박상관 전 명지대 감독)를 둔 박지수는 고교 시절부터 한국여자농구를 10년 이상 책임질 재목으로 극찬을 받았다. 이종현과 마찬가지로 부상 때문에 데뷔가 늦었던 박지수는 힘들었던 적응 과정을 거치고 조금씩 골밑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거물 루키' 이름값에 미치지 못했던 박지수의 활약
▲박지수는 데뷔 초기 적응에 다소 애를 먹었다.
KB 스타즈
박지수는 이미 분당 경영고 시절부터 성인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며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작년 리우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유일한 아마추어 선수로 출전해 유럽의 강호들을 상대로 결코 뒤지지 않는 기량을 과시했다. 비록 한국은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박지수는 이 대회에서 평균 7득점 10.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리바운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10월에 있었던 WKBL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박지수는 단연 화제의 주인공이었다. 14.3%의 확률을 뚫고 1순위 지명권을 손에 넣은 안덕수 감독은 만세를 부르고 학부모와 기자단을 향해 큰 절을 올렸을 정도. 성급한 사람들은 박지수를 품은 KB 스타즈가 이승아의 임의탈퇴로 전력이 약해진 우리은행 위비의 오랜 독주를 막아낼 수 있을 거라 예측하기도 했다(물론 현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은행의 최단기간 우승이었지만).
아시아청소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느라 팀 합류가 늦은 박지수는 설상가상으로 이 대회에서 발등 인대를 다쳤다. 12월17일 우리은행전에서 뒤늦은 데뷔전은 가졌지만 국가대표 선배 양지희의 밀착수비에 막혀 단 4득점에 그치고 말았다. 박지수는 26일 삼성생명 블루밍스전에서 12득점13리바운드로 데뷔 첫 더블더블을 기록했지만 WKBL의 판도를 뒤흔들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박지수는 새해 들어 2일 KEB하나은행전에서 2득점3리바운드, 5일 우리은행전에서 4득점6리바운드로 부진했다. 분명 높이는 대단히 위력적이지만 혼자서 공을 잡아 득점을 올리는 기술은 아직 미숙했고 슛거리도 짧은 편이었다. 신장의 우위를 바탕으로 따내는 리바운드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박지수를 막을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프로의 높은 벽을 느끼던 박지수가 자신감을 되찾게 된 계기는 올스타전이었다. 상대의 밀착수비도, 승리에 대한 부담도 없던 올스타전에서 박지수는 블루스타의 막내로 출전해 15분 동안 3점슛 2개를 포함해 12득점 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특히 경기 종료 4초 전 엘리샤 토마스(삼성생명)의 패스를 받아 결승 득점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박지수는 올스타전에서 좋은 기운을 받고 후반기를 맞았다.
최근 4경기 평균 리바운드 12개, 박지수는 아직 성장 중
▲현재 리그에서 박지수보다 위력적인 센터는 우리은행의 존쿠엘 존스뿐이다.
KB스타즈
입단할 때부터 '거물 루키'로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했지만 사실 박지수는 아직 고등학교 졸업장도 받지 않은 만18세의 신인 선수에 불과하다. 부진한 팀 성적에 너무 큰 자책감을 가질 필요도, 자신의 활약으로 팀 성적을 끌어 올려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그저 코트에 들어온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내면 되는 것이다.
후반기 첫 경기였던 18일 KDB생명전에서 13득점1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시즌 두 번째 더블더블을 기록한 박지수는 22일 우리은행전에서 데뷔 후 최다인 16득점(10리바운드)을 기록했다. 26일 하나은행전에서 8득점9리바운드2블록슛을 기록한 박지수는 30일 신한은행 에스버드전에서 15득점15리바운드2스틸2블록슛으로 공수에서 맹활약했다. 같은 기간 KB스타즈는 2승2패를 기록했지만 박지수의 활약은 올스타전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프로 데뷔 후 12경기를 치른 박지수는 평균 9.2득점 9.9리바운드2.3어시스트2.0블록슛을 기록하고 있다. 아직 경기 수가 부족해 순위권에 진입하진 못했지만 존쿠엘 존스(우리은행)에 이어 리바운드와 블록슛 부문 2위에 오를 수 있는 호성적이다. 올스타전 이후 4경기 성적만 놓고 보면 평균 13득점 12리바운드로 더욱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리그를 뒤흔드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거물루키'로 손색이 없는 활약이라 할 수 있다.
KB스타즈는 지난 시즌 어시스트 1위였던 변연하의 은퇴와 주전가드 홍아란의 임의탈퇴로 가드진이 많이 약해졌다. 실제로 팀 어시스트 부문에서도 경기당 12개로 최하위에 그치고 있고 주전 포인트 가드 심성영의 평균 어시스트도 1.84개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골밑에 있는 박지수에게 정확한 패스를 찔러줄 선수가 부족하다는 뜻인데 이런 상황들을 고려하면 박지수의 활약은 충분히 기대치를 충족하고 있다.
잔여 10경기를 남겨두고 있는 가운데 KB스타즈는 여전히 8승17패로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아직 시즌을 포기하기엔 이른 시점이지만 위에 있는 세 팀을 차례로 추월하기도 결코 녹록지 않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이 박지수의 성장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여고생티를 벗지 못하던 데뷔 직후와 비교하면 한층 프로 선수다워진 '거물 루키' 박지수가 시즌이 끝날 때 즈음엔 또 어떤 선수로 성장해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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