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 성희롱 논란 발언 사과배우 김윤석이 지난 12월 5일 오후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시사회에서 한 포털사이트 무비토크에서 공약을 묻는 질문에 "여자배우들이 무릎에 덮은 담요를 내려주겠다"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 사과를 하고 있다.
이정민
이런 맥락에서, 얼마 전 벌어진 배우 김윤석의 사례를 살펴보자. 영화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의 개봉으로 마련된 토크쇼 자리에서, 김윤석은 성희롱이나 다름없는 농담을 던져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그는 '공약으로 무엇이 좋겠냐'는 질문에 여성 출연진들이 치마 위에 덮은 무릎 담요를 내려주겠다고 말한 것이다.
의도와 상황이 어찌 되었건 간에, 이 같은 발언이 여성의 신체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내포하고 있으며 폭력이라는 것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 동료 배우들의 몸을 마치 사람들의 눈요기를 위해서 노출할 수 있는 물건처럼 취급한 것이다. 때마침 영화계 내 성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진 시점에서, 그의 발언은 사람들의 큰 비판에 직면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사건 이후 김윤석 배우의 행보다. 익히 알려져 있듯, 한국 연예계에서 여성 혐오나 성추행으로 경력에 영향을 받은 남성 스타들은 전무하다. 비판이 팬덤 내부에서 나올 때조차, 연예인들이 이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 일도 유야무야 넘어가고 금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히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김윤석은 이 일에 대해 사과했다. 문제를 제기한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시사회장에서도 직접 사건을 언급해 공론화시키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그의 행동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면 당연히 취해야 한다. 하지만 언급했던 연예계의 풍토를 생각한다면, 김윤석과 같은 중견 배우가 이 정도 수준의 반성을 보인 것은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몰랐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최근 선물 받은 페미니즘 도서를 인증한 김윤석.김윤석
이 과정에서 눈길을 끈 또 다른 일이 있었다. 바로 그의 팬들이 직접 손편지와 함께 여성주의 도서를 전달하고, 김윤석이 사진을 찍어 이 사실을 인증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그의 행동이 단지 제스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이 한국 사회에서 횡행하는 혐오와 폭력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것이 '앎'의 문제라는 것이다. 인격적으로 엄청난 결함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자신의 발언이 상대방에게 무례한 것이며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안다면 그런 말을 부러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과는 '몰랐다'는 말로 시작했다.
말하자면 모든 폭력과 혐오는 '알고자 하지 않는 게으름'에서 출발한다. 인간관계는 서로서로 알고자 노력하는 부단한 노동의 연속이다. 이를 충실히 행하지 않는다면 타인에 대한 나의 지식에는 빈 곳이 생길 수밖에 없고 실수의 여지는 그만큼 넓어지게 마련이다.
지금껏 이번 사건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거나 사과한 이들은, 이 같은 앎의 노동이 불필요한 특권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몰랐다'는 부족하다. 그것은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것에 불과하다. 이들이 사과를 넘어서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아무런 의지를 보이지 않을 때, 사실은 자신이 저지른 폭력을 가능케 한 권력을 계속 쥐고 있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김윤석이 지금껏 사람들이 걷지 않았던 길로,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고 생각한다. 그는 팬들이 보내준 책을 받았고 그것을 읽겠다고 말했다. '몰랐으니까'가 아니라 '그러니 이제는 배우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변화를 약속했다.
나는 김윤석의 이 같은 행동이 우리 사회의 남성들에게 필요한, 특권을 내려놓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흔히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틀렸다. 모르면 용감해지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이게 된다. 때로 앎은 단순한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나는 이 같은 사실을 정확히 직시한 김윤석의 사례가 좋은 선례로 남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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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민저널리즘부 박정훈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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