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과 함께 스케치에 출연한 케이트 맥키넌
NBC
소수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연대감조차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무수하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공공연하게 혐오를 드러내는 사람들은 늘어났다. 트럼프의 당선이 확실시된 후, SNS로 절망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한 게이 남성은 유리병으로 머리를 맞았고, 그를 때린 사람은 그에게 '우리에게는 새 대통령이 있다'고 소리쳤다고 한다. 이를 시작으로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범죄 뉴스와 제보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다 건너에서 이 끔찍한 상황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나는 좌절과 절망에 휩싸였다. 내 지인들은 이것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라며, 앞으로 닥칠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이를 바라봐야 하는 고통을 호소했다.
그리고 이 같은 지옥도가 펼쳐진 이후, 내가 즉각 그만두게 된 일이 있다. 바로 매주 방송되는 <SNL>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사실 미국 대선 기간 나를 가장 즐겁게 해주던 것이 이 코미디쇼였다. 선거를 둘러싼 흥미진진한 소식들과, 특히 너무나도 황당한 나머지(주로 트럼프의 기행들) 이것을 코미디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겠다 싶은 뉴스들의 풍자를 보는 것은 소소한 행복이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보고 웃던 모든 것들이 현실이 되었고, 그것은 무수한 사람들을 고통 받게 하는 악몽으로 전환되었다. SNL이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 된 힐러리의 패배를 다루지 않을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나는 궁금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웃을 수 있을까? 웃음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 절망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케이트 맥키넌이 부른 노래
어쨌거나 녹화된 쇼는 결국 공개되었고, 예상대로 오프닝에는 힐러리 클린턴으로 분한 케이트 맥키넌이 등장했다. 그녀는 여러 SNL 스케치에서 힐러리를 제대로 연기해 인기를 모았던 코미디언이었다. 하지만 이 영상에는 떠들썩한 유머도 날카로운 풍자도 없었다. 차분하게 피아노 앞에 앉은 그녀는 얼마 전 작고한 레너드 코헨의 <할렐루야(Hallelujah)>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사의 인상적인 부분을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충분하지 않았어요. 나는 느낄 수 없었고, 그래서 다가서려고 했어요. 전 진실을 말해왔어요, 당신을 속이려고 온 게 아니에요. 그리고 그것이 모든 잘못되었음에도, 저는 찬양의 주 앞에 서겠어요. 단지 할렐루야만을 노래하며."마치 지금의 힐러리의 심정을 담은 듯한 노래, 그녀의 목소리는 강인하지만 동시에 겸허하다. 그녀의 눈빛은 종종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애환을 드러내는 듯하지만, 그것이 슬픔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진 않는다. 대신에 그녀는 이 또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다. 클라이막스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때로는 침잠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담대함과 경건함을 내비친다.
웃음을 만드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방송을 보고 힐러리 클린턴의 연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녀의 대선 패배가 기정사실이 된 이후, 그녀는 이를 승복하는 연설을 했다. 하지만 단지 패배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선거에서는 졌지만 여전히 지켜야 할 것이 남아 있음을 이야기했다.
자신은 가장 높은 유리 천장을 깨지 못했지만, 여성들의 챔피언으로서 그 기회를 얻게 된 것에 감사했다. 누군가는 그 천장을 곧 깨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어쩌면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크고 뼈아픈 패배 앞에서, 그녀는 고통스러운 승복만을 전하는 대신 그다음을 이야기했다. 자신과 지지자들 모두에게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패배의 당사자가 단지 괴로움과 절망이 아니라 담대함과 강인함을 드러낼 때, 그리고 그 순간에서도 나아가야 할 길을 이야기 할 때, 이런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해주기도 한다. 익히 알려져 있듯 케이트 맥키넌은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캐스트이다.
혐오를 내세운 후보가 여기에 반대했던 후보를 무너뜨리고, 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끔찍한 범죄들이 속속 증가하는 상황은 그녀에게도 고통스러웠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힐러리로 무대에 올랐고, 지금껏 힐러리의 말투와 제스처를 똑같이 흉내내었던 것처럼 그녀가 보여준 용기와 담대함, 강인함을 재현해냈다. 나는 그것이 절망에 마주한 한 코미디언이 건넨 가장 완벽한 방식의 위로라고 생각한다.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래야 합니다
▲트럼프 당선 직후 "사랑은 증오를 이긴다.(Love trumps hate)"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선 레이디 가가. 그는 이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ladygaga
나는 이번 선거를 보며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누군가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미국에서 고통받는 것에 괴로워했다. 비록 국가는 다를지라도, 그곳에서 창궐하는 혐오가 평소에 자신이 두려워했던 것이라는 점에 소름 끼쳐 하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사람들이 소수자들의 삶이 위태로워지는 것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스스로가 세상에서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다. 어쩔 도리가 없다는 망연자실함을 이야기했다.
나는 SNL의 이 영상을 내가 마주쳤던 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이 영상이 전하는 감정과 메시지를 함께하고 싶다. 세상에는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도 많지만, 동시에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것도 많다. 무너지고 좌절하기를 반복하지만, 나는 후자의 목소리들과 함께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지켜왔다. 그리고 나는 케이트 맥키넌의 노래가 그런 목소리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절망 속에 스스로를 홀로 남겨두지 말자. 우리를 절망하게 만드는 풍경과 마주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그래서 발을 내딛기는커녕 일어서는 것조차 사치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외롭지 않기라도 바란다. 끝으로 케이트 맥키넌이 마지막으로 던진 멘트를 전하고 싶다.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그래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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