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운 문양목 선생의 유일한 직계 혈육인 윌리엄 문과 취재진이 기념촬영했다.
김동이
- 고국(한국)의 소식은 전해듣고 계신지요."이미영(전 MBC아나운서, 고종사촌)씨하고는 자주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소통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패밀리 라이프(안부)를 묻는데, 1년 전쯤에는 사진을 한 장 보내줬는데 아버지와 관련된 사진이라더군요." (확인결과 문양목 선생 추모각 사진이었음-기자 주)
- 현재 살고 계신 레딩(Redding)에는 언제 오셨나요."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었는데 1956년에 레딩으로 왔습니다. 캘리포니아 UC버클리대에서 의과대를 다녔습니다. 베티(부인)는 간호학과를 다녔는데 대학교 때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1남 1녀를 두고 있습니다. 마취 전문인데 1956년에 인턴을 마치고 레딩에 자리가 나서 외과의사와 함께 온 지 60년이 됐습니다. 아들도 현재 마취 전문의이고 5분 거리 레딩에 살고 있습니다"
- 아버지 문양목의 살아생전의 기억을 듣고 싶습니다."2차 대전 당시 아버님과 스톡턴(Stockton, 미국 California주 중부의 도시)에서 살 때 일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인삼을 파셨습니다. 인삼으로 약재를 만들어 파셨는데 여기서 베티(부인)와의 인연이 있습니다. 당시 베티 아버님께서 몸이 안좋았는데 아버지가 운영하던 한약방에서 산 한약을 드시고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베티를 알지는 못했었구요.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고, 세탁소도 했고, 청소하는 일(클리닝샵)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습니다. 해서 어렸을 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사실 때는 백일규(대동보국회 중앙회장 역임)라는 분과 같이 술을 자주 드셨는데, 백일규는 버클리에서 첫 번째로 졸업한 한인으로 아버지와는 가장 친한 친구였고 돌아가셨을 때는 추도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청소하는 일을 하셨는데,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1941년) 수족이 생겨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됐고 그 때 멘티카로 이사를 갔습니다. 원래 멘티카에서 살다가 집만 놓고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클리닝샵을 하다가 뇌출혈이 생겨 다시 멘티카로 가서 살다가 1년이 되기 전에 또 뇌출혈이 생겨 병원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멘티카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버지는 엄격하신 분이셨고, 한학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별로 대화를 많이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영어를 잘 몰랐고, 저는 한국말을 잘 몰라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버님하고의 기억도 별로 없습니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늘 바쁘셨고, (한인이민역사기념각 공원이 있는) 리들리시의 김브라더스 농장에서 일을 하셨으며, 남은시간은 오로지 독립운동을 하셨기 때문에 아버님과 보낸 시간은 좋은 기억이 없습니다. 아버님에 대한 기억은 부모님과 샌프란시스코의 한인연합감리교회를 다녀 그곳으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여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셨고, 동학운동을 했다는 것만은 뚜렷하게 알고 있습니다."
▲우운 선생의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현재 윌리엄 문이 간직하고 있는 아버지 문양목(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사진. 어머니 문찬성(문양목 왼쪽 옆)과 윌리엄 문의 누이, 형의 모습도 보인다.
김동이
- 문양목 선생의 자녀가 네분인 걸로 알고 있는데, 다른 분들의 근황을 여쭤봐도 될는지요? "제일 큰형님은 유명한 병리학자였고, 형님의 아들이 의사고, 딸의 자식 둘이 의사, 딸이 간호사, 저도 의사, 아들도 의사, 부인 베티도 간호사로 전부 의료방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형님들과 누이 다 돌아가시고 혼자 남았습니다."
- 선생께서 남기신 유품은 없으신지요. 그리고 선생의 고향에서 기념관이 조성되면 기증할 의사가 있으신지요."유품은 많지 않습니다. 사진이 많았는데, 헨리 안(LA한인회 소속으로 현재 거주지 및 연락처 수소문 중)이라는 사람이 아버지의 자서전을 저술한다고 해서 대부분의 사진을 갖고 갔는데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벌써 30년이 넘었는데, 중간에 한번 연락이 돼서 사진을 가져오라고 했더니 다시 연락이 끊겼습니다. 매우 안타깝습니다."
- 영사관으로부터 선생의 훈장을 직접 수여받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건국훈장 독립장은 대한민국의 3등급 훈장으로 공적이 뚜렷한 애국지사에게만 수여되는 영예스런 상징입니다. 1995년에 되어서야 뒤늦게 훈장을 받게 됐는데, 후손으로서 소감을 밝혀주신다면요. 훈장을 볼 수 있을까요?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누이가 있어서 누이가 받았습니다. 아버지 고향에 뜻깊은 기념관이 생긴다니 훈장과 훈장증을 기증할 의사가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가져간다면 줄 수도 있습니다."
- 현재 선양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문양목 선생 기념사업회 등에서 향후 선생의 묘역을 모국의 국립묘지로의 이장을 추진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에 대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누이가 살아계실 때 국립묘지 이장을 추진한 적이 있는데 누이의 반대가 심해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여기 사셨는데 여기에 계시는게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쉽게 판단을 못 내리겠습니다.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 문양목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셨던 고 이대위 목사님은 고국의 국립묘지에 묻혀 후세들에게 그 정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생께서 국립묘지로 이장된다면 국가에서 관리도 해주고 선생의 평생의 업적이 후세에 길이 전해질 것입니다. "신중하게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이장을 하면 어머님도 함께 모셔가는 것입니까? 깊이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 스탁턴에 있는 파크뷰 공동묘지의 선생 묘역을 참배했습니다. 그런데 선생의 묘역 바로 옆에 후손분께서 잠들어계신다는 말을 관리인으로부터 들었는데, 묘비가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혹 사연이 있는 것인지요."누가 묻혀 있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문양목 선생의 부인인 문찬성 여사께서 잠들어 계셨고, 파크뷰 공동묘지 사무실에서 작은 묘비를 세워주기로 했다고 전하자) 잘 됐군요."
▲우운 문양목 선생 추모제향우운 선생의 고향인 충남 태안군 남면 몽산리의 선생 생가지 인근에 조성된 사당에서는 매년 선생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려 선생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을 기리고 있다.
김동이
- 선생의 업적을 드높이기 위해 선양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후손들에게 당부의 말씀이나 전해드리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고향의 신문사에서 관심을 가져주셔서 더욱 감사드립니다. 지난 20년간 매년 문제빈씨에게 기부를 해왔습니다. 다시 기부를 할 의사가 있습니다. 연락처와 주소를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잖아도 그동안 기부(도네이션)할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전을 쓰신 분께 너무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너무 값진 선물입니다."
윌리엄 문도 모르는 납골이 문양목 묘비 옆에 있다?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스탁턴 공동묘지에 잠든 문양목 선생기자는 지난 6월 25일 우운 문양목 선생이 잠들어있는 스탁턴 공동묘지를 찾아 참배한 뒤 문양목 평전을 선생의 묘소 앞에 바쳤다.
김동이
한편, 기자는 윌리암 문 옹과의 만남에 앞선 지난 6월 25일 샌프란시스코에서도 2시간 남짓 떨어진 스탁턴의 파크뷰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문양목 선생의 묘소도 찾았다.
엄청나게 광활한 공동묘지 규모에 놀라면서 기자는 문양목 선생의 묘소를 찾기 위해 공원 사무실로 향했다. 선생의 묘지 위치를 확인한 취재진은 혹시나 하여 공원사무실측에 문양목 선생의 후손이나 또는 한국인의 묘소가 있는지 찾아달라고 부탁한 뒤 선생의 묘소로 차를 몰았다.
공원사무실의 도움을 받아서인지 어렵지 않게 선생의 묘소를 찾은 취재진. 하지만 인근의 화려한 일본인들 묘소와 비견돼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선생의 묘소에 애통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의문점 하나. 공동묘지 특성상 묘비와 묘비 사이의 공간이 거의 없이 빼곡하게 들어선 다른 묘소들과는 달리 문양목 선생의 묘비 옆은 비석도 없이 잘 정돈된 푸른 잔디만이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문양목 선생이 잠들어있는 파크뷰 공동묘지 관리인과 취재진이 묘비 없는 묘지에 대해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확인결과 원안에는 문양목 선생의 부인인 문찬성 여사가 묻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동이
잠시 후 이런 의문점은 쉽게 해소됐다. "누구인지는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묘비 없는 무덤이다" 공원관리인 파블로씨의 말이다. 작은 묘비 하나 없는 무덤이라니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파블로씨는 "파크뷰 공동묘지에는 묘비 없이 묻히는 경우는 없다. 이유를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묘비를 땅에 묻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 파블로씨는 곧바로 확인에 들어갔고, 확인 결과 묘비는 묻혀있지 않았다. 결국 납골만 묻힌 셈이다.
윌리엄 문 옹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묘비 없는 무덤은 확인결과 문양목 선생의 부인인 문찬성(본명 이찬성)이 묻혀 있었고, 묘비만 문양목 선생과 함께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윌리엄 문의 허락을 얻어 파크뷰 공동묘지 사무실에 연락해 작은 묘비라도 세워 달라고 요청했고, 사무실 측에서는 긍정적으로 작은 묘비라도 세워주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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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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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와 미주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우운 문양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