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로맨스 조>를 보고 저를 찾아와 악수를 청하시며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을 선물 해줘서 감사하다" 라고 인사를 해주셨던 아르헨티나 할아버지입니다.
이광국 제공
20년 전,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려본다.
어느 황량한 비무장지대 안에서
제대를 하면 꼭 영화를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하며,
1년여 남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22살의 육군 상병이었다.
그 해(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태어났다.
2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영화를 만들고 있고,
스무 살을 넘긴 부산국제영화제는 많이 아프다.
2011년 <로맨스 조> 라는 첫 장편영화를 들고 부산을 찾았다.
온갖 고생 끝에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는 감상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쉽게 제작되는 영화는 한 편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처음 내 영화를 상영하던 날.
관객들 틈에서 열심히 반응을 살피던 기억과 무사히 상영이 끝나던 순간의 아쉬움.
긴 시간동안 당신 자식의 앞길에 행운이 깃들길 바라시던 부모님 앞에서
부끄러움과 어색함을 숨기며 나누었던 관객들과의 대화.
몇 년이 지났어도 그 순간의 감흥은 쉽게 사라지지, 아니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만드는 즐거움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경험하며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달았다.
내 영화는 독립영화라고 불린다.
좋은 영화와 그렇지 못한 영화의 구분 말고 왜 다른 구분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투박하고 모자라지만,
내 영화가 천 만 영화보다 못하다고 생각지 않으며
내 배우들이 천 만 배우들보다 못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내 영화가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기를 꿈꾼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2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국내외의 이런 감독들에게, 좋은 영화를 찾는 관객들에게
더 없이 행복한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자본의 논리로는 갈 곳 없는 영화들을 발굴하고 응원하며,
그 영화들이 국적도 언어도 다른 세상으로 날아다닐 수 있게 도와주었다.
지구 정반대편 아르헨티나의 할아버지에게
즐거운 시간을 경험하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게 해주었다.
나와는 다른 시간의 축 위에 있는 그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기억 안에 내 영화가, 내 기억 안에 그 인사는 영원할 수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한 번도 이런 역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왜?
몇몇 개인의 정치적인 이해타산으로 영화제를 흔들고 있는지 답답할 뿐이다.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그들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감히 그들에게 부탁의 메시지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