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부산에서 첫 촬영을 했을 당시 모습. 주인공 상석이 해운대 바다에서 영화제 행사장을 바라보고 있다. 몸이 좋지 않아 파스를 잔뜩 붙이고 카메라를 들었다.
백재호 제공
2012년 가을이었습니다. 제 첫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던 당시 "주인공이 부산국제영화제에 간다"라고 한 줄 쓰고 무작정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할부로 구입한 카메라와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배우 친구 둘과 함께요.
사실 부산이라는 도시는 광주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란 제게는 물리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조금은 먼 곳이었습니다. 예전에 단역으로 출연한 <부산>이라는 영화 덕에 그곳을 다녀간 게 전부였죠. 센텀시티의 커다란 백화점과 그 안의 찜질방 규모에 놀라고, 광안대교 위에서 추위에 벌벌 떨다 하루만에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부산과 별 인연이 없던 제가 첫 촬영지를 부산으로 결정한 이유는 바로 단 하나, 부산국제영화제 때문이었습니다. 영화를 스스로 만들려 하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그리려 했는데, 주인공의 열망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부산이자 부산영화제 행사장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당시는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한창이었습니다. 먼저 영화의 전당으로 향했습니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스크린에서 보던 배우들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알아볼 리 없는 저희들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원하는 장면들을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운대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역시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낯익은 배우들도 바닷가에서 사람들과 섞여 영화제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이리 저리 두리번거리며 촬영했던 그때의 이틀이 저와 부산국제영화제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2013년 가을, 저는 친구와 함께 다시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전 해에 촬영했던 영화는 당시 겨울에 촬영을 중단한 상태였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기운을 받으며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다시 쓰겠다고 마음먹고 내려간 거였죠. 일부를 다시 찍기도 했고요. 촬영을 끝내고 친구는 부산을 떠났지만, 저는 시나리오를 완성할 때까지 서울로 안 가겠다며 홀로 부산에 남았습니다.
일정이 정해져 있지 않았기에 매일 게스트하우스, 여관, 찜질방을 전전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짐을 챙겨 나와서 해운대의 극장에서 표가 남아있는 영화를 아무거나 보았습니다. 영국, 몽골, 불가리아 등 국적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모든 영화가 다 좋았다고 할 순 없지만, 그 작품들이 제게 또다른 시야를 열어준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게 가슴을 채우면 다음은 배를 채울 차례였습니다. 맛집을 검색하거나 숙소 주인이 추천해준 식당을 가느라 해운대, 광안리, 남포동, 대연동 등등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는 카페에 앉아 시나리오를 썼죠. 다음 해에도 꼭 부산에 놀러 와야겠다고 생각하면서요.
내 영화가 뽑혔다!
▲2012년 촬영 당시의 모습. 해운대 바닷가에서 촬영을 기념하며 슬레이트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백재호 제공
2014년 여름, 드디어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함께 만든 친구들과 성북동의 옥탑방에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좋다"는 친구들의 말에 힘을 얻어, 다른 친구들에게도 보여줄 방법을 찾았습니다. 극장에 부탁해서 단관 개봉을 하고, 유튜브에 올려서 공개할까 했지요. 일단 영화제에도 내보자 했습니다. 떨어질 게 분명했지만, 내보지도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까 싶어서였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간에 영화제 사무실에 DVD를 직접 내러 갔습니다. 마감 날 점심시간이었는데, 사무실이 텅 비어있더군요. 더 기다리다간 아르바이트에 늦을 것 같아서 책상 위에 DVD를 올려두고 나왔습니다.
일주일 쯤 지났을까요?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와서 메일함을 열어봤는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메일이 와있었습니다. 다행히 접수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제 영화가 초청이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발표 날까지 한참 남아있었기 때문에 잘못 왔을 수도 있겠다 싶어 함께 만든 친구 몇 명에게만 알렸습니다. 누군가 장난을 쳤거나, 잘못 보낸 메일일 수도 있으니까요. 다음날 영화제 업무시간이 되자마자 전화를 했습니다. 축하한다고 하더군요.
제 영화가 초청된 '뉴커런츠' 부문은 아시아 신인감독들끼리 경쟁하는 부산국제영화제 유일한 경쟁부문입니다. 우리나라 감독은 두 명이 나가는데 영화제 전에 미리 프로그래머님과 식사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저는 약속시간보다 먼저 사무실에 가서 프로그래머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 영화를 왜 뽑으셨어요?"
솔직히 전 영화제엔 유명한 학교를 나왔거나, 이런 저런 경력이 있거나, 영화제 내부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만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해에 수백, 수천 편의 영화가 출품되는데 그 영화들을 프로그래머들이 다 본다는 게 말도 안 된다 생각했거든요. 제 영화는 마지막 5분을 위해서 1시간 40분을 온전히 쓰는 영화였습니다. 유명한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좋은 장비를 사용하지도 않았죠. 그래서 영화제 측에서 영화를 아예 보지도 않거나, 봤더라도 한 오 분 보다가 꺼버리지 않았을까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참 신기했고, 궁금했습니다.
레드카펫을 걷는데 들린 억센 부산 사투리 "천천히 좀 걸으래이!"
▲영화 <그들이 죽었다>에 출연한 배우들과 함깨 레드카펫 위에서 찍은 기념사진이다.
백재호 제공
다시 가을이 되었습니다. 역시나 친구들과 함께, 하지만 이번에는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트레이닝복이 아닌 정장을 입었고,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가장 멋진 호텔에 묵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꿈에서조차 그리지도 못했던 레드카펫에 당당히 서게 되었습니다. 영화제 레드카펫은 지금 생각해도 손이 떨려옵니다. 멋지게(?) 치장을 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의전차량을 타고 영화의 전당으로 향했습니다. 헌데, 저희가 내린 곳은 레드카펫 앞이 아니라 영화의 전당 입구였습니다. 저는 친구들에게 사과했습니다. "우리는 레드카펫을 걷는 게 아니라, 개막식에 참가하기만 하는 건가봐..." 하구요. 다행히 개막식 티켓은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혹시 몰라 영화제 팀장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잘못 내렸답니다!
팀장님이 서둘러 뛰어오셨고, 무사히 대기실로 가게 되었습니다. 레드카펫 대기실엔 예전에 함께 영화에 출연했던 유명 배우도 있었고, 스크린에서만 보던 외국 배우들과 감독도 있었습니다. 대기실 문 너머로 보이는 레드카펫 주변엔 수많은 관객들이 있었습니다. 큰 환호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시 걱정이 시작됐습니다. '우리가 지나가는데 아무도 박수를 쳐주지 않으면 어쩌지?'
이런 저런 상상을 하는 중 차례가 되었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레드카펫에 나가 우스꽝스럽게 손을 흔들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어린 감독과 배우가 나와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정말 열렬하게 관객 분들이 응원해주셨습니다. 지금도 어떤 아저씨께서 부산사투리로 크게 소리친 말이 생생합니다. "천천히 좀 걸으래이!"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저는 그 이전과 조금은 달라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영화를 만들며 있었던 일들, 영화제에서 관객들에게 받았던 응원과 관심, 그리고 여러 영화인들과의 만남 속에서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조금 바뀌었다고 할까요.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 배우가 되려 했고,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제가 왜 영화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닌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가 더 중요해졌지요. 스스로 행동했을 때 돌아오는 결과를 직접 체험했기에 가능한, 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려 하고 있습니다.
영화인들은 누구나 BIFF에서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해 10월 열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레드카펫으로 입장하고 있는 서병수 부산시장. 당시에도 서 시장은 영화제 측과 갈등을 일으켰으나 영화제를 앞두고 봉합했고, 서 시장은 이처럼 레드카펫을 밟았다. 하지만 영화제가 끝나자마자 부산시는 영화제 측 고발과 이용관 집행위원장 연임 거부, 영화제 측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을 위한 정관 개정 거부 등 끈질기게 영화제를 흔들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 개인적 이야기로 이렇게나 길게 편지글을 쓴 건 최근 부산국제영화제 사태를 '부산시민'과 '영화인들의 대결'로 몰고가는 정치인들의 행태 때문입니다. 저는 부산국제영화제 덕분에 부산을 알게 되었고 부산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어제도 식당에서 돼지국밥을 먹으면서 부산을 추억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영화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지친 삶에 위로나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깨달음을 주기도 하고 행동을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단순히 돈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겐 고귀한 삶의 목표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 편의 영화는 그 영화를 대하는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이름으로 다가옵니다.
영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누구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기를 소망합니다. 감독과 배우뿐만 아니라, 그 작품에 참여한 모든 스탭들도 자신의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이 되었다고 하면 아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것은 부산국제영화제가 단순히 오래되고 규모가 큰 영화제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영화제이기 때문이고,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것은 그 나름의 원칙과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초 국제영화제가 부산에서 열린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시민들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
가을에 뵙겠습니다. '진짜' 돼지국밥 먹으러 가겠습니다.
추신 :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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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민 여러분, 부디 부산국제영화제 지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