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욱이 보관한 원고의 겉표지시집 제목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고 적고, 다른 쪽은 정병욱 형앞에 윤동주 보낸다고(증) 적혀있다.
정학성
책 머리에 실을 '서시' 외에 보관된 시 18편. 다시 적어 봐도 대단한 시편들이다. '자화상', '소년', '눈 오는 지도', '돌아와 보는 밤', '병원', '새로운 길', '간판 없는 거리', '태초의 아침', '또 태초의 아침', '새벽이 올 때까지', '무서운 시간', '십자가', '바람이 불어', '슬픈 족속', '눈 감고 간다', '또 다른 고향', '길', '별 헤는 밤'.
이 시들이 사라졌다면 우린 윤동주를 알고 있을까?
얼마나 중요한 시편들인지를 여러 통계들이 말해준다. 한국 현대시 100주년을 맞았던 2007년도에 문인 단체들은 시인들을 대상으로 좋아하는 우리 시 10편을 조사했다. 유일하게 윤동주만이 10위 안에 두 편의 시를 올렸는데, 바로 보관된 '서시'와 '별 헤는 밤'이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시 설문조사에서도 늘 앞뒤를 다투는 두 편의 시다. 1920년대 점포 주택이라는 건축적 특성도 감안했지만, 그런 시들을 안전하게 보관해준 가옥이기에 등록문화재 대접도 당연하지 않은가.
지워진 원래 제목
▲빨간 원 안에 '병원(病院)'의 흔적정병욱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제목을 처음에는 윤동주가 '병원'으로 적었다가 지웠다고 증언했다.
오병종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시집 제목이다. 영화 마지막에 동주의 일본 유학시절 영문과 교수님 친구의 딸로 등장하는 쿠미와의 대화가 아직도 귓전에 남는다. 시 제목이 뭐냐는 질문에 동주가 대답한다.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침묵이 흐르다 한참 후에 발음되는) ...시!" 그 대화로 영화는 끝나고 바로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그 여운 탓인지 관객은 아무도 일어서지 않고 크레디트를 쳐다본다. 드문 일이다. 모든 자막들이 다 올라갈 때까지 나도 관객들 속에 앉아 있었다.
'서시'에 등장하는 시어들. '하늘', '바람', '별'이다. 우주를 형성하는 상징들이다. 자연현상의 절대성을 갖는 경외의 대상으로 형성된 시어들이다. 우주의 상징들은 시집의 머릿말이 되었고, 자신의 시 18편이 그와 동격이라는 의미로 나란히 나열돼 마지막에 '시'라고 마침을 했다. 우주현상과 같이 취급하고자 한 그 만의 시집 명명법이었으리라. 윤동주가 첫 시집 이름에 최상의 자부심을 담은 셈이다. 그 의미를 안 이준익 감독은 그 대목에서 '시' 앞에 그렇게 큰 '쉼'을 연출했을 것이다.
고 정병욱의 증언에 의하면, 원래 시집 제목이 <병원>이었다. 원고 표지에도 지웠다 쓴 흔적이 있다. 시 제목이기도 한 <병원>은 병든 우리사회를 상징하여 처음에는 그렇게 정한 듯 하다. 그러나 <병원>은 지워졌고, 당당하게 자신의 시를 우주현상들과 나란하다고 적었다. 부끄러워하며 '참회'하는 이미지로 가득한 동주가 그처럼 자부심 가득 담아 시집 제목을 다시 고쳐준 '반전'은 우리에겐 큰 행운인지 모른다. 독자로서 고급진 그의 명명이 고맙다.
또 다른 사람들
▲'서시' 원고시집의 제목이 된 시어들을 빨갛게 표시했다.
정학성
정병욱과 윤동주의 관계는 여동생 덕희(1931~2015)와 아우 병완(88세)에게도 연결이 된다. 연희전문을 거쳐 서울대를 졸업한 정병욱은 서울대 교수가 되기 전 잠시 부산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마침 여동생 덕희는 그 곳 학생이었다. 정병욱은 여고생들에게 교과서에서도 접해보지 못한 영롱한 언어로 된 동주의 시를 들려주었다.
후에 그는 여동생에게 사람을 만나러 가자고 하여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1927~1985, 성균관대 건축과 교수)를 소개해서 결혼을 하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윤인석 교수(현 성균관대)가 있다. 학생 신분으로 유명을 달리한 동주에게는 후손이 없어 윤인석은 유족을 대표하는 일에 나설 뿐 아니라, 동주를 기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렇게 정병욱은 윤인석의 외삼촌이 됐다.
이제 아우 병완의 사정을 보자. 정병완은 국립도서관 사서였다. 1970년 10월 국립도서관에서 '시인 윤동주 유고전'을 열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지금은 은퇴하여 경기도 안성에 거주하는 정병완(88)씨의 얘기다.
"당시 열람과장을 맡고 있을 때인데, 남산으로 옮기기 전 소공동에서 마지막 행사로 '윤동주 유고전'을 열었죠. 윤동주 서거 25주년, 국립도서관 25주년이 맞아떨어졌어요. 형님이 보관한 원고, 강처중씨가 보관하다 유족에게 맡긴 원고, 윤동주 시인의 여동생 윤혜원씨가 용정서 가져온 원고들을 모아서 함께 전시회를 했습니다. 형님 영향으로 모든 걸 내가 알고 있으니까 기획이 가능했죠. 근데 당시 어떤 일이 있었냐면, 마침 일본 국회도서관 사서인 우지고쯔요시(宇治鄕毅)씨가 무슨 일로 우리 도서관을 방문했었는데, 내가 안내하여 전시내용을 상세히 보고 갔습니다. 윤동주 시에 깊은 관심을 갖더라구요. 윤동주가 독립운동 하다 잡혀 후쿠오카에서 옥사했다고 말했고, 일본 기록이 없다는 얘기도 했죠."일본으로 간 우지고 쯔요시는 윤동주의 기록을 찾아나섰다. 문서 공개시점에 달하자 기밀 문서들이 나왔다. 영화의 주인공들인 윤동주와 송몽규의 법원 판결문을 찾아서 한국에 전해준 이가 바로 우지고 쯔요시다. 이를 윤일주가 번역하여 <문학사상> 1977년 12월호에 "새로 발견된 자료, 순절의 시인 윤동주에 대한 일본 '특고경찰'의 비밀기록"으로 실어, 윤동주의 억울한 죽음의 실상을 처음으로 상세히 알렸다. 우지고와 정병완의 인연의 결과다.
둘은 공교롭게도 사서에서 후에 교수가 되었고, 지금은 각자 은퇴하여 경기도 안성에서, 일본 오끼나와에서 조용히 지내며 가끔 통화를 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렇듯 정병완과 병욱, 덕희, 세 남매는 윤동주와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유족을 제외하면 영화에 등장하는 강처중이나 여기 소개한 정병욱 가족들이야말로 윤동주 시를 다시 살려낸 특별한 분들이 아닐 수 없다. 평생에 한 일 중 가장 자랑스런 일을 꼽으라면 "동주를 알린 일"이라고 말했다.
동주의 시 제목 '흰 그림자'를 의미하는 '백영(白影)'을 호로 사용한 국어국문학자. 영화 <동주> 크레디트를 대신해 여기 한 줄 이름을 써둔다. 정.병.욱.
▲연희전문 시절의 윤동주와 정병욱정병욱이 2년 후배였지만 둘은 절친하게 지냈다. 특히 소설가 김송씨의 집에서 함께 하숙하기도 했다. 윤동주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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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영화 <동주>가 빼먹은 특별한 '엔딩 크레디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