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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티브 잡스>의 한 장면

영화 <스티브 잡스>의 한 장면 ⓒ UPI 코리아


영화 <스티브 잡스>는 지난 2011년 발간된 동명의 전기를 원작으로 제작되었다. 당시 이 책은 제법 만만찮은 두께와 가격에도 불구하고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며 베스트셀러가 된 바 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대니 보일 감독, <웨스트 윙>과 <소셜 네트워크>를 집필한 아론 소킨의 시나리오, 여기에 연기파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의 만남으로 영화 <스티브 잡스>는 큰 기대를 모았지만, 평단 vs. 대중의 선택은 다소 엇갈렸다. 상업적으로는 다소 미흡한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스티브 잡스>는 전기 영화, 그리고 몇 안 되는 IT 소재 영화로써 나름의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영화는 1984년, 1988년, 1998년에 진행된 애플(혹은 넥스트)의 신제품 발표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마치 록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소위 '애플 마니아', '스티브 잡스 팬'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공개된 이들 제품의 운명은 이후 제각기 달랐지만, 어떤 면에선 '인간' 스티브 잡스의 아바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역사적인 발표회를 통해 공개된 '매킨토시', '넥스트 컴퓨터', 그리고 '아이맥'을 통해 영화 속 스티브 잡스의 가치관과 사고에 대해 이해해 보도록 하자. 공교롭게도 이들 3개 제품의 특징은 영화 속 3가지 이야기 줄기와 고스란히 맥을 함께 이어가고 있다.

[1984년 매킨토시] 앞뒤 꽉꽉 막힌 잡스의 분신

 영화 <스티브 잡스>의 한 장면. '애플 II'를 갖고 노는 스티브 잡스의 딸 리사

영화 <스티브 잡스>의 한 장면. '애플 II'를 갖고 노는 스티브 잡스의 딸 리사 ⓒ UPI 코리아


애플은 1984년 1월 천문학적인 액수가 투입되는 슈퍼볼 광고를 내보낸다. 소설 < 1984 >를 영상으로 그려낸 CF를 통해 신제품 '매킨토시'의 출시를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제품을 소개하기 위한 프레젠테이션은 영화 속 1막에 해당하는 중요 대목이 된다.

흔히 '맥'으로 잘 알려진 매킨토시는 후일 애플의 대명사처럼 불리게 되지만, 첫 출시 당시엔 참담한 실패를 겪은 제품이다. 애초 1984년 한 해 동안 25만 대 이상의 판매를 예상했지만 실제론 고작 4만 대 수준에 그쳤고, 이는 결국 스티브 잡스의 축출로 연결되고 말았다. 지금에야 애플 제품들의 특징 중 하나인 폐쇄적인 기기 특성(OS, 하드웨어, 제품 확장성 등)을 그대로 담은 제품을 받아들이기엔 당시 시장의 반응이 냉담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애플의 가장 큰 효자 상품은 잡스의 창업 동반자이자 엔지니어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든 '애플 II'였다. 사용하기 쉬운 제품이면서 확장성도 뛰어났기 때문에 직접 이용자가 추가 부속을 연결해 사용한다든지, 심지어 기판 카피를 통한 '복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의 개방성도 보유했던 컴퓨터였다(실제로 1980년대 국내 세운상가 등지에선 애플 II를 복제한 제품들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인기리에 판매되기도 했다).

매킨토시와 애플 II의 차이는 결국 잡스 vs. 워즈니악의 차이를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비교적 유연한 사고를 지닌 워즈니악과 달리 잡스는 자기중심적이고 남과 타협할 줄 모르는 인물이었다. 오죽하면 양육비 문제로 그를 찾아온 전 여자 친구이자 딸의 생모에게 모멸감을 안겨주며 매몰차게 내쳤을까. 자신만의 상자 속에 자신을 가뒀던 매킨토시는 그런 점에서 스티브 잡스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제품이 되고 말았다.

당시엔 부인했지만, 나중에야 자신의 딸 이름을 제품명에 사용했던 걸 인정한 1983년 출시품 '리사(Lisa)' 역시 잡스다운(?) 제품이었다. 흑백 모니터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화려한 그래픽 능력을 보유했지만, 엄청난 고가로 참담한 실패를 겪은 것 역시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결과물이 되고 말았다.

[1988년 넥스트] 시대를 너무 앞서가다

 영화 <스티브 잡스>의 한 장면. 1988년 제품 발표회를 앞두고 만난 행사장 스티브 잡스과 애플 CEO 존 스컬리 (왼쪽)

영화 <스티브 잡스>의 한 장면. 1988년 제품 발표회를 앞두고 만난 행사장 스티브 잡스과 애플 CEO 존 스컬리 (왼쪽) ⓒ UPI 코리아


1985년 이사회를 통해 애플에서 축출된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NeXT)를 설립,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된다. 영화의 2막을 장식하는 1988년 제품 설명회는 당시로선 실패로 결론지어졌다.

후일 'NeXTSTEP'이란 이름으로 상용화된 OS는 그를 축출했던 애플에서도 탐냈을 만큼 1980년대 후반으로선 혁명적인 제품이었던 반면, 그때나 지금이나 고가격 정책으로 유명한 애플 제품들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인해 대중들이 선뜻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실패들이 결국 잡스에게는 후일 재기의 발판이 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현재의 윈도우 환경으로 대표되는 GUI 기반 OS의 효시 격인 제품 NeXTSTEP 덕분에 다른 업체들 (IBM,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OS2 Warp, 윈도우 시리즈로 치열한 경쟁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는 곧 미국 IT 산업을 한 단계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5년 역사적인 애플사 컴백으로 회사/제품 이름처럼 결국 다음 단계(Next Step)를 내다봤던 그의 선견지명은 결국 뒤늦게 빛을 보게 되었다.

[1998년 아이맥] 애플의 전성기 시작... 고집의 승리

 애플 아이맥 G3

애플 아이맥 G3 ⓒ 위키피디아


한때 패잔병이 되어 떠났던 회사로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온 잡스의 첫 성공작이 바로 아이맥(iMac G3)이다. 매끈한 둥근 모서리와 내부 구조가 훤히 보이는 케이스의 일체형 컴퓨터는 빼어난 디자인 외에도 혁신적인 성능으로 애플을 구해 낸 장본인이 되었다. 여기서도 잡스 특유의 고집인 '확장성 제로', '폐쇄 지향' 구성은 여전했지만, 이때는 오히려 그것이 애플만의 장점이 되었다.

결국 극의 대미를 장식하는 1998년 아이맥 발표회는 궁극적으론 잡스의 고집이 통했음을 증명해주는 자리가 되었다. 어떤 면에선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나야!"라는 잡스의 안하무인 인생관이 결집한 첫 성공작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에 약간의 떡밥처럼 등장한, 두툼한 크기의 워크맨에 대한 그의 견해 역시 결국 2000년대 이후 아이팟, 아이폰이라는 기기들로 세상에 등장했다.

인간적으론 결점투성인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다. 하지만 그 약점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잡스 본인 및 애플의 대성공을 이끌었다는 것은 보는 이들에게 묘한 통쾌감을 부여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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