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 전달 된 야구 물품과 함께 선수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만수
- 공부하는 선수들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가장 중요한 것 무엇보다도 장비가 아닐까 싶어요. 헌 것도 괜찮습니다. 저기 가면 새것과 같은 물품이다 보니 장비를 걷어서 보내주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주머니에 있던 제 휴대폰이 울려 확인을 해보니 모르는 전화번호였습니다.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 누구 셨습니까?"그분은 서울대학교 사범대 학장이셨습니다. 태국에도 야구를 시키면 어떻겠냐고 제 의사를 묻고 제의를 하고자 전화를 하신 거였습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도와주고 싶었지만 가르칠 지도자도 없고 제가 이제 체력이 벅차더군요. 우선 라오스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음.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그럼요. 다 도와주고 싶죠. 하지만 제 좁은 소견으로는 하나 하나 순차적으로 풀어 가자고 했습니다. 누가 있다면 후방에서 지원을 해주면 좋으련만 아직은 그만한 인재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 베트남 4군데에 유니폼 정도만 쓸만한 것을 모아서 보내줬습니다."
- 체형이 동남아시아와 한국인이 다른 편인데 옷이 맞을까요?"우리도 옛날에 그랬습니다. 다들 손재주가 있을 거야.(웃음) 고등학생들이 우리나라에 비해 상당히 작습니다. 아무래도 못 먹고 못 입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그 친구들도 우리가 다 옷을 자르고 줄여서 입으니깐 걱정 말고 많이 보내 달라고 합니다."
- 지도자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동남아시아에서도 오지다 보니 지도자들이 선뜻 지원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송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맞아요. 젊은 사람들은 좀 안 들어가려고 합니다. 이해합니다. 가정과 떨어져서 지내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사실은 정동진 감독님(전 삼성 감독)이 가셨어야 했습니다. 정 감독님처럼 야구를 헌신적으로 지도하고 아이들을 돌보실 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습니다. 연세가 70세인데 찾아갔습니다. 집에 계시지 말고 라오스의 야구를 키워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렸습니다."
- 정동진 감독님은 라오스로 가셨습니까?"처음에는 상당히 고민하시다가 흔쾌히 '오케이' 하셨습니다. 결국 어떻게 하면 가실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나온 의견이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였습니다. 대외 무상원조 전담 기관을 통해 라오스에 야구 코치로 가는 거였습니다."
- 코이카의 자격 심사는 까다로운 것으로 저도 들었습니다만."지난해 5월 건강 검진에서 불합격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담낭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담낭에 작은 용종이 앞길을 가로 막았죠. 그래서 당장 수술을 하고 7월에 재검을 받았습니다."
- 재검 결과는 어떻게 나왔습니까?"(길게 한숨을 내쉬며) 정 감독님이 크나큰 열정이 있으셨죠. 사모님도 조용히 주변 정리를 하셨습니다. 이거(담낭 용종) 제거 수술했으니 들어갈 수 있다고 의사도 말했다. 7월에 서류 합격하고 완벽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늘의 뜻인지 최종적으로도 몸 상태가 또다시 나빠지셔서 결국 못 들어가셨습니다. 정 감독님이 제일 미안해 하셨습니다. '제자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못 도와준다'고. 또 '내 열정을 다시 깨워줬는데 들어가지 못 해서 답답하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사모님이 너무 좋아하시고 기대도 많이 하셨는데 들어가지 못해 상당히 아쉬워 하셨습니다. 자주 찾아가 뵙는데 참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긴 한숨)"
- 일을 만드는 건 사람이지만 하늘의 뜻이 조금 필요한 것 같습니다."정 감독님이 라오스 들어가시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꽃보다 청춘인가요? 라오스 여행기도 다 보시고 여행 관련 책도 찾아 보시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나중에라도 몸이 건강해 지시면 갈 수 있는 거니깐, 그래서 현재 공모를 다시 하려고 합니다. 참 쉽지가 않습니다. 봉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많이 어렵네요."
- 어떤 식으로 그럼 다시 라오스로 파견되는 건가요?"대한민국을 총 수색하려고 합니다.(웃음) 대한체육회에서 코치를 파견하는 식으로 합니다. 저도 다음 달에 다시 라오스에 갑니다. 한국은 매우 춥지만 라오스의 경우 제일 날씨가 좋은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11월부터 2월까지 딱 좋습니다. 다른 때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힘듭니다. 또 매우 덥기도 하고요."
- 40도가 넘는 온도에서 강의하시다가 쓰러지실 뻔 했다고 들었습니다."어휴 말도 마세요. 아찔했습니다. 그런데도 정글로 들어가면 시원합니다. 우리나라 60년대 같습니다. 자연 그대로에요. 아스팔트도 없고 비 한번 오면 걸어 다니지도 못할 정도로 길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립니다."
- 현장에 계실 때보다 더 바쁘십니다."현장에 있을 때는 감투 안 씁니다.(웃으면서) 현장에서 물러나니 더 바빠. 학교도 참 많이 나가고 여자학교 가면 재미있습니다. 요즈음은 티볼이 교과서에 있다 보니 바삐 움직여서 아마 야구도 탄탄하게 만들어 봐야죠."
- 현장으로 다시 복귀하시고 싶으신 마음은 없으신지요."SK와이번스에서 감독직 물러나기 전 2014년 10월 말이었습니다. 최창원 SK 구단주와 만나서 독대를 했습니다. 감독님 이제 감독 생활 끝나시면 무엇을 하실 거냐고 묻자 저는 야구 끝나고 나서 항상 준비해 왔다고 답했습니다."
- 준비하신 부분이 재능 기부와 라오스 야구 봉사인가요?"맞아요. 그 밖에도 야구를 통해서 할 부분이 22가지 정도 되더군요. 그게 제 노트북 화면에 다 있습니다. 오늘만 해도 6가지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참 기쁘더군요.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물러났다면 정말 힘들었을 겁니다. 미리 준비해 둔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옮기다 보니 할만하더군요. 글 쓰는 것도 한 가지, 포수 훈련 영상 찍는 것도 그중 한 가지입니다. 참 이런 부분이 감사했습니다."
- 처음에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흔쾌히 도와주시던가요?"헐크 파운데이션(사단법인)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브로슈어(책자)는 다 만들어놨습니다. 야구를 그만두고 투자를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거 알아요? 강 기자 제가 여태껏 모든 것을 받기만 했지 나눠주질 못했더군요. 그동안은 제가 아쉬우면 오히려 안 찾아갔어요. 자존심 때문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라오스 선수들을 생각하니 사람이 말입니다.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지더군요. 라오스 청년들, 이 애들을 위해서라면 자존심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도와달라고 여기저기 참 많이 부탁했습니다."
- 그때 당시 마음이 궁금합니다."처음에는 도와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한숨이 푹푹 나왔습니다. 와 이렇게 세상이 냉정한가. 그러다 보니 3개월 정도가 흘렀습니다. 그때부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서서히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5달 정도가 지나자 조그만 공장하시는 분들, 작게 사업하시는 분들 등 십시일반 하나씩 도와주셨습니다. 정말 너무 고마웠습니다."
▲한국-라오스 친선 야구 대회 포스터.
이만수
- 이달 말에 라오스 친선야구 대회가 열리지 않습니까?"맞아요 1월 29일에 드디어 두 번째 한국과 라오스 친선 야구 대회가 열립니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에서 열립니다. 처음엔 걱정 많이 했습니다. 과연 6팀이 지원할까 의문부호였습니다. 그렇지만 몇 시간 만에 다 참여가 완료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 친선야구도 열리고 이제 지도자도 파견되면 보다 더 다양한 훈련이 시작될 텐데요. 선수들의 실력을 향상시키려면 어떻게 훈련이 되어야 할지 궁금합니다."파견되는 지도자가 훈련 시키겠지만 체계적이고 재미 있는 야구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선수시절 1984년도 시즌을 앞두고 삼성 라이온즈에서 엘에이 다저스로 캠프를 갔습니다. 저희는 늘 하던 대로 아침 저녁 밤새 연습했습니다. 그러자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여기가 군부대냐고 하면서 놀라더군요.(웃음) 훈련을 저렇게 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분위기였습니다. 아마 이렇게 까지 장시간 훈련을 하기 보단 집중력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응답하라 1988 시절 기사를 보면 오대산에서 얼음을 깨고 극기훈련하는 게 당연하지 않았습니까?"그때 사진을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보더니 으으으~ 하면서 미쳤다고 하더군요(웃음) 그게 그 당시는 참 진리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추억인데 힘들었습니다."
- 재미난 일화가 있으신지요?"훈련 중에 화장터에서 담력 키우는 것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화장했는지 거기 안이 따뜻하더군요.(감탄사를 연발하며) 진짜 심장마비 오는 줄 알았습니다. 낮은 포복 자세로 기어가다 보니 끝에 공간이 있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누가 밑에서 다리를 잡더군요. 얼마나 놀랬는지 눈앞이 캄캄하고 겨우겨우 빠져나온 일화도 있습니다."
- 별의별 훈련이 다 있군요. 물에는 안 들어가셨는지 궁금합니다."인간이 찬물에 있다 보면 절대 오래 못 삽니다. 제가 경험해보니 막 심장이 쪼그라지는 마비가 왔어요. 피티 체조 엄청 시키더군요. 인천 쪽에 있는 군부대에서 훈련했습니다. 군인들이 얼음을 이미 다 깨 놨더군요. 차라리 물속에 있으면 따뜻한데 물 밖에 나오면 얼굴이 마비가 왔습니다."
- 그때 같이 훈련하신 분들이 궁금합니다."내 뒤에 고 최동원 그리고 옆에 성준(삼성 코치) 뒤에 류중일(삼성 감독). 양일환(삼성 코치). 김상엽(NC 코치)이 이렇게 들어갔습니다.
- 얼음 물에 들어가면 콕콕 쑤시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군요."이게 정신력 훈련의 일종으로 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기분이 좋아지긴 뭘 좋아지나요.(웃음) 얼음물 속에 20분 넘게 넣어뒀다. 두 명인가 쇼크 받아서 앰뷸런스에 실려 가버렸죠. 절대 도움 안 되는 훈련 방법입니다.(웃음)"
- 라오스는 얼음물 깨기 훈련을 할 수 없겠군요. 마지막으로 '야구인 이만수'의 올 한해 계획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2015년은 나에게 있어 돌아볼 시간도 많았고 많은 좋은 분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나눠줄 수 있어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2016년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이미 4월까지 스케줄이 꽉 차있습니다. 1월에는 좀 휴식을 취하고 2월부터 바삐 움직여 보려고 합니다. 야구라는 꽃이 활짝 피도록 말이죠. 그게 '야구인 이만수'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니깐요."
(24일 이만수 감독은 라오스로 친선 야구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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