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엄마는 어린 일영을 거둬 먹이기 시작한 후로도 시종일관 냉혹함을 유지한다. 병들어 낑낑대는 개를 주시하는 일영을 보고, 엄마는 삽으로 개를 내리쳐 숨을 끊는다. 놀란 일영에게 엄마는 "쓸모 없어지면 너도 죽일거야"라며 경고한다. 그러나 일영을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는 "我的孩子(발음 : 워더하이즈)"라고 대답한다. 영화 속에서 외국어가 나오는 경우, 자막으로 뜻을 설명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차이나타운>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대사 역시 후반부 어떤 장면의 복선이 될 것임이 어렵지 않게 예측된다. 대놓고 '나 복선이에요'라고 말하는 복선은 확실히 어설프다.
몸만 자란 일영의 정신적 성장을 돕는 인물, 박석현(박보검 분)은 이미 많은 관객이 가장 불만스러운 부분으로 지적했던 지점이다. 남성 중심 느와르물 속 타자화됐던 여성 캐릭터를 남성에게 이식했다는 점은 그리 이상하지 않다. 일영이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을 궁금해 하기 시작하는 계기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석현은 집요하게 보일 정도의 친절을 베풀고, 일영은 거기에 너무나도 쉽게 흔들린다. 심지어 어깨에 기대 잠을 청할 정도로 경계를 푼다. 일영은 느닷없이 밀려들어오는 감정의 물결에 식구들을 배신한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석현은 대체 왜 그랬을까?
여기에 '이성적 호감' 혹은 '연민'이라는 매우 간단한 정답이 존재한다.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거기에 끌려 가야만 하는 것처럼 학습된 감정의 사용법 말고는 석현의 행동을 설명하기 어렵다.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을 불사하고, 부모이기 때문에 자식을 용서해야하는 것과 같은 당위의 논리가 적용된다. 관객이 일영과 석현의 가운데 있는 감정을 상상할 여지는 배제되는 것이다. 박보검과 김고은의 불안정한 연기력은 차치하고라도, 석현이라는 인물이 <차이나타운>에서 다뤄지는 방식 때문에 일영까지도 입체성을 잃는다.
유사한 내러티브와 장르적 특성을 지닌 <달콤한 인생> 속 희수(신민아 분)와 선우(이병헌 분)의 관계를 보자. 감정 없이 살아온 선우의 삶에 희수는 어떤 각성의 촉매가 된다. 개봉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선우와 희수가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단언할 수 없다. 극 중 인물 사이에 기민하게 뚫려 있는 공백을 메워보기 위해, 관객은 상상한다. 선우를 움직이는 것은 당위의 논리가 아닌, 중심 잡힌 캐릭터의 의지였다. 이렇게 부리는 '겉멋'이라면 관객을 납득시킬 정도가 되지 않을까.
▲<차이나타운>의 한 장면CGV아트하우스
비인간성이나 강인함에 대한 강박 역시 <차이나타운>의 캐릭터를 평면적으로 만드는 주범이다. 유혈 장면은 과도하고, 인물들은 그 장면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는 듯 부산스럽다. 기미가 어지럽게 내려 앉은 퍼석한 얼굴에, 움직이지 않는 인위적인 뱃살은 오히려 엄마라는 캐릭터의 카리스마를 퇴색시킨다. 배우 김혜수의 형형한 안광이 아니었다면 극복되지 않았을 어색함이다. 엄마는 선대 '엄마'의 기일에, 그를 죽인 것은 자신이라고 고백한다. '부친 살해' 모티프가 '모친 살해'로 바뀐 꼴이지만, 왜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꽤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다.
영화는 그렇게 결말까지 다다랐다. 엄마는 "결정은 한 번 뿐이고, 그게 우리 방식이야"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결정'과 '방식'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영화 속에서 합의된 적이 없다. 두 사람이 혈투를 벌이는 것도 아닌데, 그 방식에 어떤 속뜻이 있는지는 그들밖에 모르는 듯하다. 허영이 파 놓은 영화 속 빈 곳들은 철학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불완전했다.
<차이나타운>이 그럴듯한 느와르라는 것까지 부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정치적 올바름에 가까워지려는 영화적 시도가 있었더라도, 이는 완성도의 평가와 별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들은 죄가 없다'는 시쳇말이 떠오를 정도였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치도가 엄마에게 건넸던 한 마디,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데요?"는 감독 본인에게 돌아가야 할 말인 듯하다.
하지만 <차이나타운>이 작금의 한국 영화계에 너무도 부족한 '여성 영화'의 자리를 확장해 나가기 위한 주효한 시도로 남을 것임은 분명하다. 더 이상 주인공 성별의 전환이 '변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여성을 다룬 콘텐츠들이 풍부하게 생산되는 시작점에, <차이나타운>이 기억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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