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냄새를 보는 소녀>의 권재희(남궁민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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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무섭다'겠다. 하지만 아무리 스릴러와 로맨틱 코미디의 복합장르를 추구했다 해도, 매회 이렇게 시청자의 가슴을 옭아매며 끝을 맺는 이런 엔딩은 최근 시청률 추이에서도 알 수 있듯(10회 8.0%, 11회 7.5%, 12회 6.9%, 모두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제작진의 기대와는 다르게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게다가 오초림은 첫 번째 장면에서 책에서 떨어진 편지를 무신경하게 꺼내 읽고, 두 번째 장면에서 권재희의 집인줄 알면서도 역시나 무신경하게 아버지를 찾아 헤맨다. 심지어 세 번째 장면에서는 그간 잘 가지고 다니던 핸드폰을 굳이 레스토랑에 놓고 경찰이 장착해준 이어폰도 착용하지 않은 채 용의자의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같이 '어설픈' 설정에 이르면 '무섭다'기 보다는, '위기를 위한 위기'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12회에 이르기까지 <냄보소>는 극적 갈등을 전적으로 권재희의 악행에 의존해 간다. 아침 드라마의 악녀들처럼 권재희는 갖가지 기기묘묘한 방식으로 주인공과 그 주변을 희롱하고,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은 결국 당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바코드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16부작으로 끌고 가야 하는 단선적 이야기 구조를 가진 <냄보소>의 '근원적' 한계일 것이다. 악의 축은 극명하다. 그 악을 극복하는 16부에 이르기까지 악은 끊임없이 악행을 저지르고, 반대 측은 연신 당하다 마지막에 카운터펀치를 날려야 하는 단선적 이야기 구조의 숙명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드라마가 권재희의 악행으로 점철되는 동안 정작 이 드라마가 애초에 추구하고자 했던 '힐링' 러브 스토리는 짓눌려 버리고 말았다. 정작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코드 연쇄 살인 사건의 피해자 최무각과(박유천 분) 오초림의 상처 치유였지만, '연쇄 살인'을 설명하느라 골몰하다 보니 '치유'는 어느덧 하위 범주로 밀려나는 듯 보인다.
최무각과 오초림의 '어른다운 사랑'그래도 <냄보소>가 그려내는 사랑은 그간 한국 드라마에서 그려왔던 사랑과는 다른 성취를 보인다. 우선 늘 재벌이거나 준 재벌쯤 되는 의사·변호사 등이 판을 치는 드라마 속 사랑 이야기에서, '순경' 최무각과 '개그맨 지망생' 오초림의 존재는 평범해서 특별하다. 그래서 그들은 늘 차도 없이 버스를 타고 다니거나,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거나 헤어진다. 가끔은 경찰 관용차나 택시를 타는 보통 사람인 것이다.
두 연인의 러브 스토리의 전개 역시 그간 다른 드라마와 다르다. 제 3자가 끼어 삼각관계를 일으키며 사랑의 전선을 구축해 가는 여느 사랑 이야기와 달리 이 두 사람은 수사를 하고 만담을 하고, 그 사이에 짬짬이 함께 '먹방'을 선보이며 '썸'을 탄다. 수사와 만담 연습을 빼면 평범한 여느 연인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썸'은 어느 순간 최무각이 자신으로 인해 무대에 설 수 없어 되어 슬퍼하는 동생 또래 여자에 대한 연민을 느끼면서, 그리고 오초림이 '동생'을 잃은 오빠의 상실감을 헤아리게 되면서 '사랑'으로 깊어간다. 그래서 오초림은 동생을 잃은 상처로 아파하는 최무각을 생각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만담을 포기하고, 최무각은 '아는 동생' 오초림을 생각하여 '지금이 그럴 때가 아닌'데도 만담도 하고 수사도 하겠다고 한다.
▲SBS <냄새를 보는 소녀>의 최무각(박유천 분)과 오초림(신세경 분)SBS
그렇게 상대방만을 생각하는 이들의 '이타적인 사랑'의 위기는 오초림인줄 알았던 최은설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에 찾아왔다. 이것이 바로 <냄보소>가 표방한 '힐링 러브 스토리'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11, 12회에 걸쳐 두 사람은 오초림이 사실은 바코드 연쇄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최은설이며 최무각의 동생인 또 다른 최은설이 권재희의 오인으로 살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죄책감에 빠진 오초림은 최무각에게 이별을 통보하지만, 최무각은 다르다. 최은설, 아니 오초림을 두고 그가 주저한 시간은 단 하루였다.
동생과 함께 갔던 아쿠아리움을 홀로 찾아간 최무각은 의연한 듯 슬픈 눈을 하면서도, 다정한 연인의 모습으로 초림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동생에게 하듯 '예쁘다'며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고, '나에게 시집오려면'이라는 말로 은근슬쩍 청혼의 운도 띄웠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하듯 오초림에게 '너 때문에 내 동생이 죽었다'고 원망을 쏟아 붓는 대신, '어른답게' 또 한 사람의 희생자인 오초림을 보듬는다.
그러니까 최무각은 '당신의 동생이 나 때문에 죽었다'며 이별을 선언하는 오초림의 손을 잡고, '너 때문이 아니고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어른 남자'인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배우들의 연기
하지만 정작 드라마는 이런 최무각의 어른스런 사랑에 인색하다. 그의 동요는 짧고, 고민은 스쳐간다. 오초림의 고뇌도 마찬가지다.
최무각과 오초림이 자신보다 상대방을 더 배려하며 사랑을 키우고 위기의 순간에조차 어른스럽게 처신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이지만, 언제나 그 사랑은 연쇄살인마의 스릴러에 희석되어 버린다. 결국 드라마가 허무한 해프닝으로 어설프게 당해 버리는 연쇄살인마의 악행에 치중하는 동안, 두 사람의 연민에서 비롯된 사랑은 몇몇 투닥거리는 장면으로 대체된다.
그렇게 성의 없이 끼워 넣듯 등장한 장면을 채워가는 건, 온전히 배우들이다. '권재희의 난'을 되풀이 하는, 그리고 어이없는 설정들이 난무하는 어설픈 스릴러에도 시청자를 인내하게 만드는 건 일렁이는 눈빛을 하고 만면에 미소를 띠며 슬픈 운명을 극복해 나가려는 최무각 역의 박유천과 오초림 역의 신세경의 연기다. 그것이 그래도 <냄보소>를 아직은 포기할 수 없는 미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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