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히로츠키뮤지컬 <러브레터>에서 히로츠키(히로코+이츠키)를 연기한 배우 곽선영이 지난 24일 커튼콜에서 관객들 앞에서 노래하고 있다.
곽우신
사랑하기 참 어려운 시대다.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넘어 오포세대(삼포에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을 추가)로 불리는 이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청년들이다. 어느 순간부터 현실의 생존 문제가 낭만을 집어삼켰다. 내일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에게 사랑 노래는 사치처럼 들릴지 모른다.
인스턴트식품처럼 사랑도 즉석에서 소비된다. 빠르게 달아오르고 그보다 더 빠르게 식는다. 손해 보기 싫어서 '썸'이라는 이름으로 각자의 감정을 측량하고 계산한다. 이제는 썸마저도 일방통행이 있는 '짝썸'의 시대다. 어장관리가 일반화되더니, 청춘들은 '사'귀기가 두려워서 '삼'귄다. 히로코는 이츠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망울을 가져서" 사랑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눈빛이 스펙을, 사랑이 조건을 이기기 어려운 요즘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내가 할 수 없으니 문화콘텐츠 속에서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낄 뿐이다. 뮤지컬 <러브레터>도 이런 정서에서 소비되기 쉬운 작품이다.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그때의 풋사랑을 상기하는 데 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뮤지컬 <러브레터>는 단순한 멜로물이 아니다. 추억에 얽힌 상처를 꺼내어 극복하는 성장 드라마다. 상처는 묵혀두면 곪을 뿐이다. 첫사랑을 떠올리는 이유는 첫사랑을 그 당시의 것으로만 국한해 봉인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린 이미 알고 있어. 그저 피하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상처만 깊어질 뿐."첫사랑을 회고하는 이유는 실패로 끝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때와 같은 설렘, 그 때처럼 순수했던 사랑을 다시 한 번 하기 위해서다. 혼자 꿋꿋하게 살던 이츠키는 잃어버린 시간과 함께, 잃어버린 감정을 되찾았다. 이츠키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히로코가 아키바를 받아들일 수 있었듯이….
그리고 이러한 상처를 보듬는 말이 바로 "잘 지내고 있나요"이다. 당신의 안부를 여쭈면서,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히로코가 죽은 이츠키에게 던지는 문답이 아니다. 모두가 '나'만 생각한다. 사랑조차 나를 위한 사랑인 경우가 다반사이다. 너를 위한 사랑, 너를 생각하는 사랑이 드물다.
아무도 '너'의 안부를 묻지 않는다면, 반대로 '나'의 안부를 묻는 이 역시 아무도 없다. 그래서 상대의 안부를 묻는 질문 하나가 사람을 울컥하게 만든다. 말 한 마디의 힘은 그토록 크다.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물음이 큰 파문을 던졌듯, 사람을 품는 말은 그 길이와 관계없이 우리를 보듬는다. 우리 모두는 상처를 가지고 있고, 이 상처를 치유할 사랑에 목말라 있다.
<러브레터>는 이 상처 극복의 드라마를 아날로그 감성을 지닌 서정적 판타지로 채운다. 이미 단종된 폴라로이드 SX-70 카메라가 등장하고,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타자기가 나온다. 히로코와 여자 이츠키는 이메일도, 전화도 아닌 편지로 소통한다.
편지를 통한 감정과 추억의 교류는 자칫 촌스럽고 거추장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예스러운 도구들은 과거의 순수함을 효과적으로 끄집어내는 장치이다. 당시는 기다리는 데 모두가 익숙해져 있었다. 오고가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 표현하고픈 감정도 숙성된다. 긴 시간을 통과해 나에게 다다른 편지 곳곳에는 상대의 흔적이 담겨 있다. 도서카드의 감동이 그토록 먹먹한 이유는, 그것 역시 또 하나의 '러브레터'였기 때문이다.
"긴 겨울 견디고 피어난 벚꽃, 밤낮으로 환한 미소와 향기. 내 맘을 두드려 내 안에 쌓이고 바람에 날리면 가슴이 떨려와."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방법을 잊고 긴 겨울 같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에 마주했던 벚꽃나무를 기억할 수 있다. 그 추억을 토대로 다시 찾아올 봄을 그리며, 그 봄에 피어날 벚꽃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할 것이다.
▲뮤지컬 <러브레터> 포스터지난해 12월 2일 개막한 뮤지컬 <러브레터>의 포스터, 동숭아트센터에서 호연 중이다. 공연은 2월 15일까지이다.(주)피에이씨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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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