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여가수의 누드 사진이 유출되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여자 연예인의 은밀한 사생활이 담긴 사진(혹은 영상)이 화제가 될 때면 늘 그렇듯이, 유출한 당사자가 아닌 사진 속의 주인공에게 비난의 화살이 악플로 쏟아진다.
이런 사건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에는 한 여자 연예인이 상의를 탈의한 남자 연예인과 찍은 사진이 트위터로 유출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과거에는 해당 인물의 이니셜을 딴 제목으로 여자 연예인의 성생활이 담긴 영상이 인터넷을 타고 퍼져나간 사례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타인에 대한 관음욕에 지나치게 물들어 있는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외로워서 그렇거나, 아니면 심심함이 그 이유이거나. 게다가 현재는 인터넷의 보급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발달로 관음을 위한 최적의 도구까지 갖춰진 상태이다. 행운일까, 불행일까? 미처 뒤돌아볼 틈도 없이 우리는 이미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서있다. 어쩌면 이 영화가 거울을 들여다볼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SNS와 인터넷 중독... 처참하게 망가진 네 인물
▲영화 <디스커넥트>의 한 장면. SNS에서 누드사진이 유출되자 자살을 시도한 아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버지 '리치'의 모습.
주)메인타이틀픽쳐스
영화 <디스커넥트>(11월 7일 개봉)는 네 인물의 이야기를 엮었다. 어린 학생 벤 보이드는 학교에서 친구 하나 없는 은둔형 외톨이다. 혼자 틀어박혀 음악을 즐기는 그를 비웃던 학교의 짓궂은 친구들은 가짜 SNS 계정을 만들어서 그에게 접근한다. 여성의 사진과 이름을 내걸고, 인터넷을 떠돌던 여자의 나체 사진으로 벤을 유혹하기에 이른다. 외로웠던 벤은 망설이다가 자신의 나체 사진을 찍어 가짜 계정에 전송한다. 친구들은 낄낄거리며 벤의 누드사진을 전교에 뿌리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한 벤은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벤의 아버지인 리치는 사업 핑계로 SNS에 빠져서 늘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산다. 그러다 아들이 자살 시도를 하자,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분명 범인이 따로 있을 것"이라며 아들의 SNS 계정을 중심으로 조사를 시작한다.
죽은 아들 때문에 사이가 소원해진 부부 데릭과 신디는 각각 인터넷 도박과 온라인 채팅을 하다가 카드 잔고가 바닥난 사실을 발견한다. 스미싱으로 계좌를 해킹당한 사실을 알게된 두 사람은 경찰에 신고하지만 온라인 수사전담반은 밀린 사건들 때문에 감감무소식이다.
지방 TV방송국 리포터인 니나는 웹서핑을 하다가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화상채팅 사이트에 접속하게 된다. 호기심에 10대 청소년과 대화를 시작한 그녀는 이를 뉴스로 만들어 제작하기로 마음먹고 열여덟살 포르노 방송 호스트인 제이슨에게 인터뷰를 신청하게 된다.
영화는 중반까지 SNS와 인터넷에 중독된 세태를 그리고 있다. 음란 채팅, 인터넷 도박, SNS의 피상적인 관계가 주는 즐거움에 푹 빠진 등장인물들은 그로 인해 현실의 삶이 처참하게 망가진 모습을 보여준다.
벤을 SNS로 괴롭힌 장본인이자 문제아인 카일은 벤이 자살 시도로 혼수 상태가 된 이후에도 SNS의 가짜 계정을 지우지 못한다. 그러다 결국 사이버 범죄 형사인 아버지에게 발각되고, 부자 관계마저 돌이킬 수 없는 갈등으로 이어진다. 서로에게 실망한 아버지와 아들은 더 이상 가족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사이가 벌어진다.
때로는 '로그아웃'도 필요하다
▲영화 <디스커넥트>의 한 장면. 사이버범죄 전담 형사인 아버지와 SNS로 친구를 괴롭히는 아들의 역설적인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주)메인타이틀픽쳐스
영화가 여기까지의 내용을 담은 채 끝났다면, 'SNS·인터넷 중독은 위험하다'는 교훈을 주는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교훈이 영화적인 재미나 흥행에 도움이 되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SNS와 인터넷을 이용하다가 문제에 빠진 인물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영화의 후반부는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한다.
아들을 잃은 리치는 분노에 빠져 카일의 집을 찾아간다. 해킹으로 전 재산을 잃은 데릭은 총을 챙겨서 해킹 용의자의 집을 찾아가 위협할 계획까지 세운다. 리포터 니나는 '아동 감금으로 만들어진 온라인 음란채팅 왕국'을 취재하여 보도한 끝에 기자상을 받지만, FBI가 '아동음란물' 수사를 시작하고 그녀가 취재원과 어떤 관계인지를 의심하며 추궁하자 위기에 빠진다.
등장 인물들의 관계가 서로 얽히고 꼬이면서 갈등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극적인 갈등 해소와 드라마틱한 화해는 감동적인 요소이지만, 이를 위한 주인공들의 선택은 영화의 줄거리를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간다. 이러한 설정이 뒷심 부족으로 이어져 메시지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잘 만들어진 영화의 아쉬운 '옥의 티'로 남는다.
우리는 늘 온라인 상태이길 원하는 세대가 되었다. 페이스북·트위터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언제나 접속되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는 메시지와 사진 등을 공유하며 서로의 사생활을 나누고 또 훔쳐보면서 잠시나마 자신이 홀로 서있다는 것을 잊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결핍은 욕망을 낳는다. 2013년의 대한민국에서 겪는 극심한 외로움과 불안감은, 우리로 하여금 '가상공간 속의 친구들과 항상 함께하기를' 원하도록 만들어버린 셈이다.
물론 심각하게 SNS에 중독되거나, 인터넷 생활에 중독되어서는 곤란한 일이다. 가상현실에 빠져서 실제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거나, 인터넷 도박에 거액을 탕진하는 행위는 주객이 전도된 꼴이기 때문이다. '접속'은 새로운 관계라는 두근거림을 주지만, 우리는 때로 '로그아웃'을 적절하게 할 필요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또 한 가지 사실도 기억해야만 한다. 인터넷이 주는 폐해는 단지 그것을 틀어막는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SNS와 인터넷은 도구일 뿐, 중요한 것은 그 도구를 이용하는 사용자의 태도다. 결핍이 욕구를 낳는다. 사람들이 인터넷과 SNS·게임에 중독되도록 만든 상황을 고쳐나가지 못한다면 결국 임시방편일 뿐이다. 신상털기와 누드사진 유출, 악플과 음란물 등 문제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인터넷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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