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엄마아직 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 아들을 혹사시켜가면서까지, 숨이 차거나 무릎이 아파 우는 어린이의 고사리손을 잡아끌다시피 하면서까지 완주를 감행한 무모함을 어린 자식의 인생사의 도약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에는 심한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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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배기 예나에게 강행군 시키는 모습에 안쓰러움완주했을 때의 기쁨을 어린이의 머릿속에 각인시키기 위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부여하는 과정 및 개 두 마리로 페이스메이커로 삼으며 연습에 매진하는 변정수의 딸 정원에게 대견함을 느끼게 만하기보다는, 완주는 고사하고 5km 완주도 불가능할 기초 체력도 안 되는 4살배기 예나에게 강행군을 시키는 모습에서 안쓰러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어린이도 할 수 있다는 명분 아래 어린이에게 5km 완주를 하게끔 하는 설정은 어쩌면 초등학생인 정원이에게는 가능한 일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마라톤의 시작을 알리는 폭죽 소리에도 무서워 울음을 터트리는 4살짜리 미취학 어린이 예나, 혹은 기초체력이 부실한 연약한 승우를 단축마라톤에 내보낸다는 건 어린이로 하여금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부여하기보다는 어린이의 건강에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걸 제작진은 알고 있었을까.
이들 어린이가 완주한 기록을 살펴보자. 참가한 어린이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8살 정원이는 5km 거리를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주파한다. 어른의 평균 도보로도 1km를 10분 안에 걷는 게 어지간한 빠른 발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인데 나누기 5로 계산하면 정원이는 어른의 도보보다 빠른 속력인 53분대에 완주를 이룬다.
네 살배기 예나의 경우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1시간 46분에 5km를 완주한다는 건 네 살배기 어린이가 1km를 21분에 주파해야 가능한 속력이다. 뛰는 것이 힘들어 우는 아이를 엄마의 손으로 이끌어 뛰게 하는 것도 모자라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 코스프레 마라톤 참여자의 힘을 빌려 완주를 감행한다. 이 역시 억지 설정이다. 네 살배기라도 가짜와 진짜는 구분할 줄 안다.
이들 미취학 어린이가 5km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건 마라톤에 참여한 어린이 당사자에게 무슨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화면에 나오는 엄마는 마라톤을 중도 포기할 뻔한 역경을 극복하고 완주를 감행한 어린이를 뿌듯하고 대견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게다.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엄마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불의 전차’ 영화음악은 이런 상황에서 사용하는 노래가 아님에도 흘러나왔다는 건 아이, 특히 미취학 아동의 건강을 진심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한 강행군을 일삼은 제작진과 엄마의 과잉이 빚은 변형된 어린이 가학의 사례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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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과 엄마의 과잉이 빚은 어린이 가학적 사례
하지만 아직 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 아들을 혹사해가면서까지, 숨이 차거나 무릎이 아파 우는 어린이의 고사리손을 잡아끌다시피 하면서까지 완주를 감행한 무모함을 어린 자식 인생사의 도약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에는 심한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자식을 부모의 연장선, 혹은 분신으로 바라보고 '이 엄마도 뛸 수 있는데 내 아들딸이라고 못 하겠느냐'는 엄마의 이기심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혹은 아이의 심폐 능력이나 체력을 고려하기에 앞서 엄마들의 과잉 의욕이 투영된 결과가 이번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엄마'가 아니었을까?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불의 전차' 영화음악은 이런 상황에서 사용하는 노래가 아님에도 흘러나왔다는 건 아이, 특히 미취학 아동의 건강을 진심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한 강행군을 일삼은 제작진과 엄마의 과잉이 빚은 변형된 어린이 가학적 사례라 할 수 있겠다.
tvN <SNL 코리아> '형아 어디가'에 이어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엄마> 역시 아이들이 어른에 의해 극단적으로 소모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정도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 제목이 아니라 '아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조롱이 맞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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