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주말드라마 <내 딸 서영이> 포스터
KBS
과거 드라마에서 신분 상승을 이루는 캔디들은 대부분 남성 중심 사회에서 최적화된 순종적인 여성상을 가진 캐릭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고, 형식적으로나마 남녀평등이 되어가지는 지금, 남성 의존적인 캔디들은 더 이상 여성들에게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다.
2000년대 들어 새로 등장한 캔디들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성향으로 탈바꿈을 시도한다. 세상 물정 모르고 착하고 예쁘기만 했던 과거 캔디들에 비해, 밀레니엄 시대의 캔디들은 비교적 자신들의 세속적 욕망에 충실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먼저 왕자님에게 다가가는 적극성을 띠기도 한다.
하지만 2013년 드라마를 장식하는 캔디들 또한 처음부터 왕자님의 구애를 받는 신데렐라를 원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들에게는 자신의 힘으로 오롯이 성공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했다. 본인들 또한 누구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 세상에 우뚝 서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가진 창창한 재능에도 불구, 노력과 성실만으로는 그녀들의 주위를 감싸는 불우한 환경을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한 캔디들은 신데렐라를 꿈꾸며 청담동 며느리 입성 과정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실제 평범한 집안 여성이 재력가 남성과 결혼할 확률은 극도로 드문 편이지만, 드라마에서 캔디와 재벌 3세의 결혼 성공률은 100%에 가깝다. 그러나 '신데렐라와 왕자님이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로 끝나는 옛날이야기와 다르게, 2013년도의 신데렐라 성공 스토리는 비단 결혼 성공에만 그치지 않는다. 또한, 캔디들이 신데렐라로 변장하여 왕자님을 만나는 과정도 그리 썩 아름답고 순수하게만 보이지 않는다.
▲지난 27일 종영한 SBS <청담동 앨리스> 포스터SBS
그나마 청담동 며느리가 되기 위해 캔디인 척 위장해야 했던 SBS <청담동 앨리스> 한세경(문근영 분)이 보여준 거짓말은 SBS <야왕>, KBS <내 딸 서영이>의 캔디들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그래도 <내 딸 서영이>의 서영이(이보영 분)는 애초 재벌과의 결혼 자체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아버지의 정체를 속일 수밖에 없었던 남다른 속사정이라도 있었다. 그런데 <야왕>의 주다해(수애 분)는 재벌3세와 결혼을 위해 자신에게 그토록 헌신적인 하류(권상우 분)을 의도적으로 차갑게 외면할 정도로 지독한 악녀 본성을 보여준다.
90년대 말까지 예쁘고 착하기만 했던 캔디들이 자신들의 신분 상승 욕구를 위해 자신의 정체까지 숨기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 치밀함까지 갖춘 배경에는, 스스로 자신의 앞날을 개척할 수 있는 여성들의 능동성을 반영하고자 하는 의도도 보인다.
이전과 다르게 입궐에 성공한 신데렐라들의 좌절과 탈출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이상한 나라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앨리스와 다르게, <청담동 앨리스>의 세경이 보여준 결말은 청담동 원주민 차승조(박시후 분)과 함께 지긋지긋한 청담동 꿈나라 여행을 계속한다는 암시였다. 반면 <내 딸 서영이>의 서영이는 3년간 재벌가 며느리로, 부잣집 도련님 우재(이상윤 분)의 아내로 충실했던 '노라의 집'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인생을 살겠노라고 선언한다.
보수적인 홈 드라마 특성상 서영이와 우재가 다시 재결합한다는 결말도 배제할 수 없으나, 지난 3년간 우재와 함께 했던 시간이 마냥 행복하지 않았다고 토로하는 서영의 고백은, 부잣집으로 시집가 행복하게 살 줄 알았던 캔디의 쓸쓸한 자조가 묻어나기까지 한다. 스스로 청담동 며느리를 박차고 나오는 <청담동 앨리스>의 서윤주(소이현 분)의 선택도, 힘들게 얻은 왕자 비 자리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했을 과거의 신데렐라에서 한층 친화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캐릭터만 달라졌을 뿐, 예나 지금이나 운 좋게 재벌가에 입성할 기회를 부여받은 캔디가 끝내 왕자님의 간택을 받는다는 성공 신화는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판타지다. 특히나 2013년도처럼 계층 간 이동이 더 어려워진 시대에는 드라마의 주인공을 통해 잠시나마 신분 상승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도 사치로 보여질 정도다.
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여권이 신장하고,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늘고 있다 하더라도, 재력가 남자의 도움을 받아 신분상승에 성공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드라마에서 자주 활용되는 단골 레퍼토리다. 단지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과 부모가 물러준 부에 따라 자식들의 미래가 어느 정도 결정되는 현실에 맞춰 신데렐라를 꿈꾸는 캔디들도 더 독해졌을 뿐이다.
계층 고착화가 날로 심해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조차 날로 꿈꾸기 어려운 시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청담동 '취집'을 꿈꾸다가 산전수전 다 겪는 독한 캔디들의 고군분투는 한동안 지속할 전망이다. 그래 봤자, 여전히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신데렐라 성공 판타지의 또 다른 변주곡일 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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