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기사에서 참 흔히 쓰이는 말이 '여신'이다. '여신급 몸매', '여신급 외모', '여신이 따로 없네'…. 그런 말을 접할 때마다 틀에 박힌 듯한 수사학적 표현에 우리들의 상상력 부족을 탓하곤 했다. 그런데, 진짜 '여신'을 만났다. 배우 송선미 얘기다. MBC <골든타임>서 수수한 차림의 외상 코디네이터 신은아로 브라운관에 나타났을 때엔 잠시 잊고 있었다.

송선미, 인연으로 다가온 <골든타임>, 그리고 신은아

사람에게는 제각기 '인연'이 있다고 했던가. 송선미에게 <골든타임> 역시 2012년 만난 소중한 인연이다. 제작 소식이 들려왔을 때부터 <골든타임>은 그의 주의를 끄는 작품이었다. 송선미는 "권석장 감독님의 드라마도 봤고, 이야기도 들었다"며 "솔직히 시놉시스에는 신은아에 대해 나온 게 얼마 없었지만 권석장 감독님 작품이라 출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석장 감독님과 만나기 하루인가 이틀 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나 권석장인데' 하시는 거예요. '네, 감독님' 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알고 봤더니 다른 번호로 하신 거였어요. 그래도 감독님께서 '한 번 통화하려고 했다'면서 '은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셔서 제 나름대로 이야길 했더니 '같이 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덕에 정작 만나서는 더 할 얘기가 없었어요. 이미 하기로 결정한 상태였으니까. (웃음)"

작품을 결정하고는 거칠 것이 없었다. 바로 '신은아'를 만드는 일에 들어갔다. 시놉시스에 신은아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었던 만큼,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은 충분했다. 송선미는 "최인혁의 롤모델인 이국종 교수와 함께 일하는 김지영 선생님(간호사)을 만나 참고가 됐다"고 전했다.


"작품 들어가기 전에 뵀죠. 수술도 참관했고요. 김지영 선생님을 만나 보니까 이런 인물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지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신은아를 '열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설정했어요. 열정도 많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속은 따뜻하지만 겉은 무뚝뚝하게 표현하는 그런 여자였던 것 같아요. 신은아는."

정작 힘들었던 건 촬영을 하면서였다. 일단 의학드라마라는 장르 자체가 체력을 요했고, 드라마 중간부터 시간에 쫓기며 촬영해야 하는 만큼 더욱 바빠졌다. 하지만 그 덕에 스태프들, 배우와는 일종의 '동지애'가 생겼다. 특히 함께 많은 신을 촬영했던 이성민(최인혁 역)이나 정석용(지한구 역)과는 연극 <거기>까지 함께했을 정도로 교분을 나눴다. 송선미가 <골든타임> 촬영을 회상하다가도 "이성민 선배가 시즌 2를 한다면 나도 할 생각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4~5개월 동안 부산에 딱 박혀서 작품 생각만 해서 그런지 드라마나 캐릭터에 더 깊게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힘들었지만 감독님이나 스태프들, 배우들이 다 좋은 사람들이어서 더 즐겁게 찍은 작품이기도 하고요. 수술신은 적어도 열 시간 이상씩은 찍으니까 끝나면 다리가 퉁퉁 붓고, 다들 피투성이인데도 인증샷을 찍고…(웃음). 성민 선배는 '이 사진은 간직해야겠다'면서 수술실에서 피로 젖어있는 대본 사진을 찍었더라고요.

또 신이 나올 때마다 성민 선배와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재밌을지 많이 의견을 나눴어요. 새로 온 코디네이터가 총명탕을 가져다주자 커피를 집어 든다거나, 최인혁이 리비아에 간다고 하자 신은아가 '거긴 라면도 없잖아요'라고 말하는 부분은 다 그렇게 만든 거예요. 다행히 감독님께서 괜찮은 건 받아들여 주셔서 더 행복하게 작업할 수 있었죠."


"영화 데뷔작, 내가 봐도 못해서 충격...다양한 역할 맡고 싶다"

모델 출신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송선미에게는 항상 목마름이 있었다. '비전공자'라는 자괴감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송선미는 영화 데뷔작인 <미술관 옆 동물원> 시사회가 끝나고 '너무 연기를 못해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잘 못했던 것 같다"는 솔직한 말과 함께다.

"한동안 비주얼 좋고 부잣집에 다 가진듯한 역할만 맡아서 연기를 하면서 답답함도 느꼈어요. 뭔가 보여주고 싶었는데, 속으로 누르고만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제가 그만큼 잘 표현하지 못했고, 부족함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다시 태어나면 제대로 준비를 해서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질 정도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길게 보자' 싶더라고요. 연기 전공자가 아니라 배우지 못한 것들을 현장에서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분들이 <골든타임>이 제 터닝 포인트라고 말씀해 주시는데, 여기에 정체되지 않고 앞으로도 배우로서 조금씩 발전하고 싶어요. 다행히 이번에 좋은 선배를 만나서 배우로서의 제 삶이나 앞으로의 길에 대해 한 번 더 짚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됐죠."

그래서 항상 송선미가 경계하고 있는 것은 '자만심'이라고 했다. 답이 없는 연기에서, 잘 하는 것에 만족해하기보다는 부족함을 한 번 돌아보는 것. 그는 "그래야 발전이 있는 것 같다"며 "누가 칭찬을 해 주면 한편으론 기쁘긴 한데, 또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지난 10월 받았던 상(제6회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여자우수연기상) 역시 "받으면서도 '이거 받아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렇게 좀 더 오래, 꾸준히 연기하기 위해 2009년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를 시작으로 2012년 <거기>까지, 송선미가 보약처럼 찾는 곳은 연극 무대다. 송선미는 "연극은 여러 생각 않고 오로지 연기만 할 수 있어서 나에게는 자양분과 같다"며 "작품에 빠져서 많은 시간 캐릭터를 연구하고 곱씹는 데서 오는 매력이 큰 것 같다"고 예찬론을 폈다.

"제 자신도 모르는 새로운 부분을 연극을 하면서 알아갈 수도 있고, 꼭 필요한 곳이에요. 처음 연극한다고 하니까 신랑이 '안 어울린다'고 하더니 보고 나서는 '너무 좋다, 1년에 한 편씩 했으면 좋겠다'고. (웃음) 정체되지 않으려면 그렇게 해야죠. 그런데 연극이나 영화, 드라마 다 매력이 있어요. 드라마는 한회 지나면 새로운 대본이 나오고, 거기서 캐릭터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죠. 영화는 또 감독님 나름대로의 연출이 있다 보니까 맛이 있고요."

책도 내고, 프로그램 진행도 맡고, 시간을 쪼개 나눔 활동도 펼치고 있는 그의 목표는 본업인 연기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보는 것. 그는 "악역부터 시골에서 밭 매는 아낙네 역할까지 해 보고 싶다"며 웃었다. 참, "기회가 되면 이성민 선배와 멜로도 찍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 외에 그가 꿈꾸고 있는 것도 있다. 공개해도 되냐는 질문에 "아직은 쑥스럽다"고 답했지만, 분명 송선미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대중에 자신이 갖고 있는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는 사람, 송선미의 앞날을 기대해 보자.

"제 나이가 50이 되었을 때 자유로워져 있었으면 좋겠어요. 막혀있지 않았으면 하고,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고요. 나이가 들면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얼굴에 딱 보이잖아요. 남들이 저를 봤을 때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고 싶어요.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자기 안에 가진 게 있어야 배우로서도 보여줄 게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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