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은 어디에선가 모든 거대한 세계사적 사건과 인물들은 두 번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영화 <레 미제라블>

영화 <레 미제라블> ⓒ UPI


칼 마르크스의 말이다. 그러나 그도 굵은 글씨로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그렇다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역사의 수레는 다만 더딜뿐이니까.

그야말로 쓴웃음을 짓게 한 이번 대통령 선거 탓이겠지만, 영화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비참한 사람들)>을 보고서 떠오른 생각이다. 그렇다. 역사의 수레는 참으로 더디게 나아간다.

격동의 혁명기를 살았던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

'비참한 사람들', 빅토르 위고의 눈에 비친 프랑스 민중의 모습이었다. 차별과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들불처럼 일어나 전제 군주의 목을 자른 지 벌써 50여 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비참했다. 스스로 세운 첫 공화정이 힘없이 무너진 뒤에도 다시 몇 번의 크고 작은 봉기가 있었고 그때마다 나라의 주인은 바뀌었지만 정작 민중의 삶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보다 못한 그는 이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몇 해 뒤인 1848년 2월, 이들은 다시 일어나 두 번째 공화정을 세우지만 이번에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 그리하여 프랑스는 다시 두 번째 황제 앞에 엎드리게 되는데, 그가 바로 첫 공화정을 무너뜨렸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의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나폴레옹 3세)였다. 마르크스가 조롱했던 바로 그 희극의 주인공이다.

새 황제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를 떠나 망명길에 올라야 했고 한참 뒤인 1861년에야 글을 끝낼 수 있었다. 책으로 엮여 세상에 나온 것은 이듬해였으니 무려 17년 만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민중의 처지는 아직도 그대로였다. 이 '비참한 사람들'을 실은 역사의 수레는 너무도 더뎠다.

At the end of the day you''re another day colder, and the shirt on your back doesn''t keep out the chill.
하루가 끝날 때쯤, 날은 더욱 추워지고 등에 걸친 옷으로는 추위를 버텨낼 수가 없네.
And the righteous hurry past, they don''t hear the little ones crying.
귀하신 분들은 서둘러 길을 떠나고, 그들은 어린 아이들의 절규를 듣지 않는다네.
And the plague is coming on fast ready to kill, one day nearer to dying.
겨울은 우리를 죽일 장적을 한 듯 맹렬히 다가오고,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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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 판틴, 코제트, 마리우스

영화는 1815년 어느 날에서 시작한다. 굶주리던 누이와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치다 감옥에 갇힌 장발장(휴 잭맨)은 벌써 19년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1789년 파리의 거리를 가득 메우며 마침내 바스티유 감옥의 벽을 허물었던 거센 혁명의 물결도 장발장의 어린 조카들에게 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는 굶주리고 있을 누이와 어린 조카들에게 돌아가야 했지만 힘없는 이들에게 법은 여전히 가혹하기만 했다. 그의 죄는 점점 불어났고 꼬박 19년을 채운 뒤에야 그는 가석방 되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 사이 잠시 시민의 품에 안겼던 프랑스는 황제의 손을 거쳐 다시 국왕의 발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결국 그는 살기 위해 스스로 장발장을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그에게 비참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이었다.

다시 8년이 흘렀다. 세상은 여전히 국왕과 귀족 그리고 부르주아지들의 것이었다. 도시는 하루하루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야 하는 비참한 사람들로 넘쳐났고, 그나마 일터를 가진 노동자들도 일터에서 쫓겨나면 그만이었다. 판틴(앤 해서웨이)도 그랬다. 가진 것이라곤 맨 몸뚱이뿐이던 그녀는 일터에서 억울하게 쫓겨난 뒤 어린 딸을 위해 살고자 몸부림쳐 보지만 아무리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녀에게는 이곳이 지옥이다.

다시 9년 뒤, 이제 장발장은 판틴의 어린 딸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와 함께 파리에 머물고 있다. 탐욕스런 국왕을 끌어내리려던 또 한 번의 봉기(1830년 7월 혁명)로 파리 시내가 피로 물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지만, 피 끓는 청년들은 포기를 몰랐다. 마리우스(에디 레드메인)도 그 가운데 끼어 있었다. 그들은 국왕의 군대에 맞서 시내 한 복판에 바리케이드를 쌓아 올리고서 다시 민중들이 일어나길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바리케이드는 밀려드는 국왕의 군대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지 어느덧 43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Do you hear the people sing, singing the song of angry men?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 성난 사람들의 노래가?
It is the music of a people who will not be slaves again.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을 사람들의 노래라네.
When the beating of your heart, echoes the beating of the drums.
심장 박동 소리가 울려 퍼져 북을 울리고
There is a life about to start when tomorrow comes.
내일이 밝으면 새로운 삶이 있으리라.

ⓒ UPI


영화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

영화는 다시 16년 뒤로 건너뛴다. 바로 1848년이다. 거리는 또 한 번 거대한 혁명의 물결로 꿈틀대고 사람들은 희망에 들떠 소리 높여 노래한다. 자유와 평등의 노래를.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들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다. 머지않아 삼촌의 가면을 뒤집어 쓴 조카가 나타나 그들이 세운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황제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It is the future that they bring, when tomorrow comes(내일이 오면 새 삶이 시작되리니)'라고 소리 높여 노래하던 이들에겐 안된 얘기지만, 그 예고된 희극이 내 마음을 놓이게 했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던 것이다.

1789년 대혁명으로 무너지는 줄 알았던 앙시앙 레짐은 그 뒤로도 10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몇 번의 크고 작은 민중 봉기와 혁명을 거치면서 프랑스는 두 명의 황제와 세 명의 국왕을 새롭게 맞아야 했고, 손에 잡힐 것만 같던 새 시대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뒤로도 한참을 수많은 장발장과 판틴과 코제트들이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쳐야 했다.

그리고 1870년 마침내 세 번째 공화정이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이 무렵 파리 곳곳이 또 다시 수만 명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는 사실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여기까지 오는 데 자그마치 100년이 걸렸다.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가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난 오늘, 아직도 곳곳에서 사람들의 한숨이 들린다. 아마도 새 시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보였던 탓이리라. 하필 아버지의 가면을 뒤집어 쓴 딸을 새 대통령으로 맞아야 하는 탓일지도 모른다. 무너진 줄 알았던 낡은 체제가 다시 우리의 삶을 덮칠까 두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실망도 절망도 하지 말자. 우리 앞에는 아직 얼마일지 모르는 긴 시간이 놓여있다. 이 영화와, 이 영화가 놓인 19세기 프랑스 민중의 삶이 보여주듯 역사의 수레는 그 긴 시간을 더디게 나아갈뿐 뒷걸음질 치는 법이 없으니까.

영화 <레 미제라블>이 오늘 우리에게 그렇게 위로를 건네고 있다.

레미제라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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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2월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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