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메인포스터 〈돈의 맛〉

▲ 메인포스터 〈돈의 맛〉 ⓒ 휠므빠말


솔로몬. 그는 아버지의 명예와 유산 덕을 톡톡히 봤다. 왕정시대 최고 권력자였고,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고, 천 명이나 되는 처첩을 거느렸다. 그의 밥상은 언제나처럼 산해진미로 가득 찼다.

돌이켜 보면, 물질주의가 그의 쾌락을 불러왔고, 쾌락이 허무주의를 재촉한 거였다. 그 인생 끝 날이 되어 돌아서긴 했지만 그 인생을 모두 탕진하고 난 뒤였다.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은 재벌가(家)의 화려한 외면이 아닌 치부를 드러낸 영화였다. 막대한 재산 상속을 위해 늙은 아버지에게 젊은 여자들을 상납했다는 '안주인(백금옥)'(윤여정)과 돈이 주는 맛에 길들여진 채 검은 뒷거래를 주도하며 온갖 뒤치다꺼리로 모욕을 겪어야 했던 윤 회장(백윤식), 돈 맛에 매혹되어 젊은 육체까지 안 주인에게 바쳐야 했던 주 실장(김강우)은 우리시대 재벌가의 또 다른 속살을 보는 듯하다.

재벌가 사람들은 왜 물욕에 빠져들까? 영화에서 보여주듯 이미 어렸을 때부터 돈이 주는 맛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백씨 집안사람들은 사람보다 언제나 돈을 우상시했다. 그 돈을 지키기 위해 모든 권력을 동원해왔고, 그 돈을 불리기 위해 분식회계와 탈세, 무자료거래와 장부조작, 다단계인수합병 등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재산상속을 합법화했다.

스틸 한 컷 영화〈돈의 맛〉, 윤 회장의 모습

▲ 스틸 한 컷 영화〈돈의 맛〉, 윤 회장의 모습 ⓒ 휠므빠말


그건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백 여사의 대저택엔 수많은 명화들이 걸려 있었다. 평소 백 여사가 화랑에 관심이 있었던 걸까? 아니다. 이은의 <박회장의 그림일기>는 돈 세탁을 위해 고가의 미술품들을 구입한다는 걸 그려낸다. 이미 드라마 <대물>에서도 환히 알려줬던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백씨 집안의 비즈니스 파트너였던 미국인 '로버트'도 그들의 검은 돈을 스위스 비밀 계좌로 빼돌리려 했다. 

이 영화에서도 보여주듯이, 물질이 우상으로 자리 잡게 되면 필연코 뒤따르는 게 있다. 바로 성적 타락이 그것이다. 그것은 안주인 백 여사가 주 실장을 탐한 것도 그렇고, 그 남편 윤 회장이 하녀 '에바'(마우이 테일러)와 사랑을 나누는 것도 다르지 않았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고 하듯이 그것은 그 아들과 딸에게도 흐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음욕이 그 집안 대대로 휘감고 있었던 것이다. 끝없는 물욕은 그렇듯 한없는 음욕을 부추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허무주의란 바로 그런 연착륙에서 비롯되는 결과다. 온갖 물질주의가 성적인 타락을 이끄는 쾌락을 불러오고, 그 쾌락 속에서 허우적거려도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는 허무주의가 밀려든다. 젊었을 때부터 돈이 주는 맛에 길들여진, 그래서 돈 때문에 수많은 모욕을 겪어야 했던 윤 회장도 수많은 여성들을 끼고 살았다지만 결코 만족할 수 없었다. 급기야 그 하녀 '에바'와 함께 필리핀으로 떠나려 했지만 그마저도 물거품이 되자 끝내 극단의 선택을 하고 만다. 인생 허무주의가 보여준 최대 결말이었다.

스틸 한 컷 영화〈돈의 맛〉, 백 여사가 하녀의 목덜미를 잡고 있다. 저 멀리 윤 회장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잠잠히 식사를 하고 있고.

▲ 스틸 한 컷 영화〈돈의 맛〉, 백 여사가 하녀의 목덜미를 잡고 있다. 저 멀리 윤 회장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잠잠히 식사를 하고 있고. ⓒ 휠므빠말


재벌가의 그런 속살들은 이미 책이나 드라마나 다른 영화를 통해 접해왔다. 다만 이 영화의 내용 중 신선하게 다가 온 게 하나 있었다. 하녀 '에바'가 죽자, 그 시신이 담긴 관을 필리핀으로 이송시켜 그녀의 자식들에게 안겨준 게 그것이다. 그것은 자식들을 위한 배려를 넘어 그 나라에 대한 예의를 다한 모습이었다. 돈과 쾌락에 길들여진 재벌가라도 하녀에 대한 인격과 그 나라의 품격만은 존중해줘야 한다는 감독의 뜻 말이다.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은 백씨 재벌가의 비극을 주제로 한 멜로 영화였다. 아쉬운 건 서두에서 꺼낸 솔로몬의 예와는 정반대의 결말을 맞이한 데 있다. 온갖 물질과 음욕에 빠져 살던 솔로몬도 인생 허무를 깨닫고 바르게 턴했듯이, 백 여사와 윤 회장을 그렇게 그려냈다면 어땠을까? 비극이 아닌 또 다른 해피엔딩으로 말이다. 재벌가의 치부와 가면을 벗겨내고 파멸을 도출하는 것으로 끝내기보다 개과천선하는 것 말이다. 그랬다면 이 시대의 재벌가들에게 더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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