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겨울 밤, 성우 배한성씨가 진행하는 KBS FM에서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가 방송되고 있었다. 매주 10대들이 좋아할 만한 하이틴 스타를 초대해 이야기도 듣고 노래도 듣던 그 코너에 그날 예정된 손님은 떠오르는 하이틴 스타였다. 이슥히 시간이 흘렀지만 초대 손님은 올 생각을 않고, 배한성씨는 거듭 사과 방송을 하며 그 스타의 집으로 계속 전화를 걸고 있단 멘트만 되풀이 했다.

방송을 듣던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지쳐 잠이 들었고, 다음날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어제 방송에 채시라 나왔냐고. '응, 뒤늦게 왔더라니까. 대학 떨어져서 많이 울었나봐. 앞으로 방송 열심히 하며 집에서 수험 공부 하겠대'.

채시라 롯데제과 '가나초콜렛' 광고 속 모습

▲ 채시라 롯데제과 '가나초콜렛' 광고 속 모습 ⓒ 롯데제과


'스잔'의 김승진, '경아'의 박혜성...그리고 채시라가 있었다

탤런트 채시라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은 그러했다. 초컬릿 광고의 모델로 데뷔 후 당시 최고의 청소년 드라마 '고교생일기'에서 성숙하고 키 큰 여고생으로. 연기는 젬병이지만 '스잔'을 부른 멋쟁이 가수 김승진, 전국의 '경아'들을 두근거리게 했던 박혜성과 더불어 연극영화과 입시율을 최고로 올리면서.

당시로선 드문 3인의 MC가 이끌어가던 '스타데이트'를 거쳐 여성의류와 화장품 모델로 장기간 활동,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아들과 딸들'․ '미망'․특별드라마 '최승희' 그리고 최근의 '천추태후' 같은 작품을 통해 그녀의 연기 폭도 보다 넓어졌다. '유니폼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 후배들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채시라 선배처럼 되고 싶어요' 오직 그것 하나라던 채시라는 이제 사극의 여장부로 우뚝 섰다.

한편으론 지금 소녀시대의 유리와 비교되며 지난날 그녀의 아름다움을 돌아보게 한다. 물론 40대 중반의 채시라는 더 이상 아름답지가 않다.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으니 이전의 아름다움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반면에 날로 깊어지는 생활인의 모습이 팬들을 편하게 해주고 지금 드라마 '인수대비'에서의 카리스마는 보다 중후한 연기자이자, 세상 풍파를 다 맞받아칠 것 같은 어미의 모습을 각인시켰다.

드라마 <인수대비>  .

▲ 드라마 <인수대비> . ⓒ JTBC


어느 자리에서건 똑 부러지는 건 여전하고 대역 없이 온몸을 던지는 채시라.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예전 의류광고 카피를 그대로 닮은 여자. 약속 시간 10분 전엔 무조건 장소에 대기 한다던 십 수어 년 전의 그녀는 이제 집안일, 아이 교육, 남편 수발까지 대충 하는 법이 없단다.

1987년 그녀의 첫 사극 KBS '꼬치미'에서는 국어책 읽듯 연기 한다며 대중들은 비웃었다. 이듬해 MBC베스트극장 '샴푸의 요정'에서는 '예쁘니까 뭐' 소리가 나오게 했고. 메릴스트립이 최고의 멘토라는 지금은 독수리같이 날렵한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그나저나 뒤늦게 연예인 된 동생 채국희도 궁금하네. 나이도 마흔 중반에 들어섰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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