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줄탁동시> 포스터

영화 <줄탁동시> 포스터 ⓒ 인디스토리


베니스, 로테르담, 밴쿠버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돼 주목을 받고 있는 영화가 국내에서는 심의의 덫에 걸려 일부 장면이 수정된 상태에서 선보이게 됐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는 20일 독립영화 <줄탁동시>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부여했다. 지난 8일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 논란을 일으킨 <줄탁동시>가 일부 장면을 수정한 끝에 간신히 재심의를 통과한 것이다.

해외 영화제 호평 받아도 국내서는 심의 벽에 막혀

제한상영가 등급으로 인해 언론시사회가 취소되는 등 소동을 겪은 <줄탁동시>는 예정된 개봉일정은 지킬 수 있게 됐으나, 이를 지켜보는 영화계의 시선은 편치 않아 보인다. 영등위의 등급 판정이 경직돼 있어 예술작품으로서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심의가 사실상의 검열이라고 보는 불편함도 자리한다. 해외 영화제에서는 호평을 받는 작품이 국내에서는 원판 그대로 상영할 수 없다는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

한국독립영화협회가 16일 발표한 <줄탁동시>의 제한상영가 등급에 대한 논평에는 이러한 우려가 나타나 있다. 한독협은 해외와 국내 주요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호응을 받은 작품이 삭제 없이 상영될 수 있기를 촉구했으나, 영등위 심의의 벽은 두터웠다.

영등위의 등급 심의와 관련해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제한상영 등급자체가 없어져야 한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이미 오래 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이 난 제한상영가 등급이 계속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이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고 지적했다.

제한상영가 등급 제도는 지난 2008년 7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졌으나 없어지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2009년 4월 당시 한나라당 허원제 의원 등이 관련 법률안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제한상영가 등급 분류 존속을 명시했기 때문이다.  

조 위원장은 "영등위 쪽이 청소년 보호를 내세우고 있지만 청소년불가 등급 자체가 청소년들이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제한상영가는 영화의 상영 기회를 봉쇄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영화 <줄탁동시>의 한 장면

영화 <줄탁동시>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모호한 심의 기준 작품에 따라 다른 판정

영등위 쪽의 심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작품에 따라 허용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오락가락한 판정이 나오기 때문이다.

영등위는 <줄탁동시>의 첫 심의 때 제한상영가 등급으로 판정하면서 '일부 장면에 나오는 체위와 성기 노출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나 2009년 개봉된 <박쥐>에서는 주연 배우의 성기 노출이 영화에 필요한 부분이라고 인정돼 제한상영가 등급이 아닌 청소년불가 등급이 내려졌다. 똑같이 영화에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해 넣은 장면인데도 판정은 달리 나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영등위 심의위원으로 활동했던 한 영화계 관계자는 "심의위원에 비전문가들이 포함돼 있다 보니, 영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많아 등급 문제에 대한 논란이 생기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제한상영가 등급이 내려지는 경우는 기본적으로는 담당 심의위원들이 결정하는 것이지만, 위원장의 의중도 어느 정도 반영되는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영등위 등급 심의에서 수난을 당하고 있는 작품들은 주로 동성애를 다룬 퀴어 영화들이다. 지난 1월 <아버지는 개다>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아 개봉이 불가능해 졌고, 지난해에는 <종로의 기적>과 <REC>의 예고편 영상과 포스터 등이 심의 반려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런 작품들은 시민단체 추천 인사들과 50∼60대 이상의 심의위원들이 주로 문제제기를 많이 한다"며 "예술작품으로서 영화를 이해하기보다는 유해물의 기준으로서 판정하려 하기 때문에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화 비전문가들이 전문가들의 작품을 평가하는 데 따른 한계라는 지적이다.

등급 심사가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표현 자유 제약

영등위 심의위원으로 활동했던 영화평론가 임순혜 씨는 "주로 보수적 시민단체에서 추천한 인사들이 심의위원으로 참여하는 것도 등급 심의 논란이 발생하는 한 이유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소위원회 위원은 공모를 통해 뽑고 있다지만 위원장이 선정하기 때문에 심의위원들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심의위원 선정 절차를 개선할 필요성도 있다고 말했다.

영등위의 심의가 불신을 받는 기저에는 등급 심사가 사안에 따라 정치적인 입김에 휘둘린다는 것과 경직된 판정으로 창작 의욕을 꺾는다는 점도 자리하고 있다. 유해물로부터의 청소년 보호를 명분으로 한다지만, 청소년 대상 작품에 청소년 불가 등급을 내리거나, 다양하게 표현하려는 독립영화들을 제약한다는 의구심도 있다.

2008년 이주노동자와 여고생간의 우정을 그린 <반두비>는 15세 관람을 목표로 했으나, 청소년 불가 판정을 받았다. 당시 영등위 측은 영화의 선정성을 거론했으나 심의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을 쥐로 비하한 표현이 문제가 돼 윗선에서 전화가 와서 청소년 불가 판정이 내려졌던 것"이라고 뒤늦게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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