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이도를 연기한 후배 송중기와 함께 한 한석규

청년 이도를 연기한 후배 송중기와 함께 한 한석규 ⓒ SBS


"지금은 제 시대에요."

1997년 여름, 한 영화전문지와 인터뷰를 했던 한석규는 당시 자신의 현재를 위풍당당하게 표현했다. 한창 영화 <접속>을 촬영 중이던 시기였다. 네 편을 동시에 촬영했던 TV 드라마가 아닌 스크린에서 마음껏 활약하던 여유를 자신 있게 표현한 것이다. 그때까지 한석규는 <닥터봉> <은행나무 침대> <초록물고기>를 연이어 성공시킨 '90년대 혜성처럼 출현'한 배우였다.

그리고 14년이 흐른 지금, 한석규는 세종 '이도'가 됐다. 브라운관 복귀로는 1995년 MBC <호텔>이후 16년 만이다. 30대 초반, 200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에 초석이 됐던 이 관록의 배우는 이제 50대를 앞두고 고향인 브라운관으로 금의환향을 했다. 그리고 SBS <뿌리깊은 나무>를 2009년 <선덕여왕>과는 또다른 정치퓨전사극의 한 전범을 만드는데 단단한 '뿌리' 역할을 했다.

한석규의 SBS <연기대상> 참석 여부에 뜨거운 관심이 모아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시상식을 하루 앞둔 30일 일부 매체가 한석규가 가족과 함께 미국에 체류 중이라는 오보를 냈고,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진 것. 그 만큼 대상 수상이 유력시 되고 있는 한석규의 시상식 나들이는 방송가에 있어 일대 '사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세종의 분노를 연기한 한석규의 명연기

세종의 분노를 연기한 한석규의 명연기 ⓒ SBS


2000년대 무관의 제왕 한석규, 수상 소감이 궁금해

그도 그럴 것이, 1999년 <쉬리>와 <텔미섬씽>의 연이은 성공 이후 휴지기를 보냈던 한석규는 2002년 복귀작인 <이중간첩> 이후 대중의 '열렬한 환호'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 사실이다.

누구보다 가정에 충실한 배우로 알려진 그는 유지태가 연기한 <올드보이>의 이우진 역을 비롯해 <박하사탕> <번지 점프를 하다> <복수는 나의 것> 등의 출연제의를 거절하면서 여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노출이나 소재를 가린다'거나 '신인 감독의 영화만 선호하는 선구안에 문제가 있다'는 요지의 것들이 대부분의 것들이었다.

여기에 <음란서생>(2006)을 제외하고, 임상수 감독이 박정희 암살사건을 다룬 <그때 그 사람들>, 원신연 감독의 폭력에의 탐구 <구타유발자들>, '제2의 <8월의 크리스마스>'를 연상시켰던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이 모두 흥행에 참패하면서 한석규는 2000년대 대중들과 멀어지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었다.

특히 2009년 이후 손예진, 고수와 함께 한 <백야행-하얀 어둠속을 걷다>에 이어 2010년 김혜수와 함께 드라마 <서울의 달>의 '홍식'을 떠올리게 하는 사기꾼으로 분한 야심작 <이층의 악당>까지 흥행에 실패하면서 점점 더 고립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랬던 그가 <뿌리깊은 나무>를 통해 완벽하게 부활했다. 마치 9회말 투아웃에서의 역전홈런마냥, 인간적인 왕 세종 '이도'를 통해 드라마 연기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젖혔다는 평가다.

'지랄'과 '젠장'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사랑하는 백성을 위해 그리고 왕권을 위협하는 밀본에 대항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성군 세종. 이를 위해 한석규는 전형적인 왕의 이미지를 거부하고 특유의 온화한 미소와 함께 눈물과 분노, 연민과 회한 등의 감정을 통해 우리가 그간 접해볼 수 없었던 '인간의 얼굴을 한 왕'의 모습을 창조해냈다.

그래서일까. 지금 SNS상에서는 'SBS <연기대상>은 단연 한석규의 몫'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심지어 자신 또한 유력한 후보인 후배 장혁까지 나서 "한석규 선배가 수상했으면 한다"는 인터뷰까지 했을까.

2000년대 들어 어떠한 상과도 무관했던 한석규다. 16년 만의 브라운관 복귀, 게다가 친정 MBC도 아닌 SBS <연예대상> 자리에 참석해 지을 한석규 특유의 온화한 미소가 보고 싶다. 대중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면에서 <뿌리깊은 나무>와 '이도' 한석규의 수상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화려한 부활' '거장의 귀환'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다.

한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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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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