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가 2011년, 서른 번째 시즌이다. 수많은 사람이 함께 울고 웃고 환호하고 분노했던 그 서른 해를 기념하고 되새겨 보고자 한다. 해마다 함께 기억할 만한 경기의 한 장면을 뽑고, 그것을 단면 삼아 그 시대의 한국야구를 재조명해보고자 기획을 마련했다.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했던 1982년부터 시작해 한 주에 한 해씩, 30주 동안 이어진다.... 기자말

2010년 10월 13일, 롯데 자이언츠는 지난 세 시즌 동안 내내 팀을 4강으로 이끌었던 제리 로이스터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리고 약 2개월 후인 12월 30일에는 전년도 준우승팀 삼성 라이온즈의 선동열 감독이 돌연 '자진 사퇴' 의사를 발표했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이 '자진 사퇴' 의사 발표 바로 며칠 전까지도 전지훈련 준비와 다음 시즌 구상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그것이 결코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로이스터 감독 약점을 지우기보다 강점을 키우며 돌파해간 로이스터의 야구는 2000년대 후반 한국프로야구가 맞이한 르네상스의 한 축이었다

▲ 로이스터 감독 약점을 지우기보다 강점을 키우며 돌파해간 로이스터의 야구는 2000년대 후반 한국프로야구가 맞이한 르네상스의 한 축이었다 ⓒ 롯데 자이언츠


그리고 2011시즌이 한창이던 6월 13일에는 전년도 3위 팀이자 2007년 이후 SK 와이번스와 더불어 해마다 패권을 다투던 양강의 한 축인 두산 베어스의 김경문 감독이 사퇴했고, 8월 17일에는 지난 4년간 내내 한국시리즈에 개근하며 3번이나 우승한 SK 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이 '시즌 후 재계약 포기'를 선언한 데 이어 이튿날인 8월 18일에 구단으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고 문학구장 감독실에서 짐을 챙겨 떠나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전 시즌 4강 팀 감독이 모두 옷을 벗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네 명의 감독 모두 좋은 성적을 냈고, 각각 개성 있는 스타일로 수준 높은 경기를 연출했으며, 그 결과 각 팀의 팬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지도자들이었다는 점에서도 그것은 괴이한 사태였다.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이었던 로이스터는 '약점을 메우기보다는 강점을 극대화시켜 극복하는' 일명 '노 피어(No Fear) 야구'를 펼쳐 전에 보지 못했던 박진감을 선사했다. 그가 지휘하던 시기 롯데는 늘 야수들의 실책과 불펜 투수들의 '방화 쇼'로 경기를 그르치면서도 그 다음 두 경기를 폭발적인 화력으로 잡아내며 부산의 야구열기에 불을 지르곤 했다.

반면 선수 시절 '국보'라고 불린 독보적인 명투수였던 선동열 감독은 마무리투수 오승환을 주축으로 대리석처럼 단단한 불펜진을 구축함으로써 '일단 앞서나가면 지지 않는' 야구로 기초를 다졌다. 그것을 출발점으로 박선민, 최형우 등으로 이어지는 타선의 화력을 쌓아올리며 '5년을 두고 쌓아가는' 완벽한 팀의 완성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때로는 이런 작전이 야구의 흥미를 떨어뜨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 역시 한국 야구가 일찍이 완성해본 적 없는 스타일로 높이 살 만한 실험이었고, 존중받을 만했다.

선동열 감독 느닷없이 '자진사퇴'를 당해야 했던 선동열 감독은 그의 별명처럼 '쿨하게' 이취임식장에서 미소를 보여주기도 했다.

▲ 선동열 감독 느닷없이 '자진사퇴'를 당해야 했던 선동열 감독은 그의 별명처럼 '쿨하게' 이취임식장에서 미소를 보여주기도 했다. ⓒ 삼성 라이온즈


김경문·김성근... 그들이 보여준 것은?

화려하지 못한 선수생활을 보낸 두산 김경문 감독은 해마다 박명환, 홍성흔, 이혜천 같은 거물급 선수들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어려움 속에서 빈 틈을 메우는 '화수분 야구'의 진수를 선보였다. 그리고 한 번도 완성된 선발진을 구축하지 못하게 한 돌발 변수들(예컨대 선발 투수의 갑작스러운 일본 행 등) 속에서도 무수한 무명 선수들을 길러올렸다.

그리고 선 굵은 공격을 중심에 놓되 '육상부'라 불린 첨병들의 스피드와 'KILL 라인'이라 불린 불펜 필승조의 적극적 활용을 배합한 '비빔밥 야구'로 언제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예측 불가능한 승부로 끌고 들어가는 끈적끈적한 야구의 깊은 맛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7년 이후 한국야구계의 정점이자 화두가 된 인물, 바로 김성근 감독이 있었다. 늘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의 결과를 뽑아내는 것으로 이미 명성을 얻고 있었던 그는 2007년, 전년도 6위 팀 SK 와이번스를 맡아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그 중 3번의 우승을 달성하는 '설명이 필요 없는'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365일 야구만 생각하고 야구만 연구하는 그의 집중력이 남긴 감동, 그렇게 늘 선두주자로 치고 나가면서 그 해법에 대한 과제를 한국야구계 전체에 던져 모두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이끌어가면서 야구사적 의미를 남겼다.

김성근 감독의 SK를 잡기 위해 두산은 주루 능력과 수비 조직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야 했고, 삼성은 불펜요원들의 구위와 기술적 완성도 외에도 스타일의 세분화와 운영의 타이밍에 대한 연구를 해야 했다. 롯데는 수비력과 불펜의 완성도 외에 전장으로 적을 이끌어 섬멸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했다. 말하자면 김성근 감독은 2000년대 후반 한국프로야구에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출제하는 시험관이었으며, 그렇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이끌어간 선구자였다.

그들은 하나하나 복기하며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질 높은 경기라는 최고의 상품을 생산해냈고, 그 상품의 높은 질에 의지해 한국프로야구는 최고의 중흥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 네 명의 명장들이 불과 몇 개월 사이 하나하나 타의로, 혹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옷을 벗었다.

물론 팬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이유나 명분이 제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어느 프런트들의 '개인적 생각'이었기에 '오프더 레코드'라는 전제를 붙여 '구단을 향해 무리한 요구를 계속했다'거나 '무리한 거액을 요구했다'는 뒷말을 흘리는 것이 전부였다.

프로야구단, 팬들이 먹던 밥상을 걷어차다

프로야구란, 두말할 것 없이 '야구를 상품으로 유통하는 산업'을 말한다. 구단은 야구단을 운영해 이윤을 얻고, 팬들은 기꺼이 주머니를 열어 야구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그렇게 구단과 팬들은 야구라는 상품을 사이에 놓고 파는 자와 사는 자의 관계를 맺게 된다. 파는 자가 사는 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더 질 좋은 상품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기술적·미학적 수준이 올라가는 게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적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휴대폰 사용자들은 굳이 전자회사를 찾아다니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설명하지 않고도 상상했던 것 이상의 기능을 가진 휴대폰을 가질 수 있다. 영화팬들은 굳이 시위를 벌이지 않고도 수백 억짜리 불량영화를 조용히 끌어내리는 동시에, 홍보할 돈도 없는 가난한 영화를 장기흥행으로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프로야구단들은 종종 아무도 먹지 않는 밥상을 차려놓고 먹지 않는 이들을 탓하기도 하며, 때로는 많은 사람들이 칭찬을 연발하며 입맛을 다시던 밥상을 걷어 차버리기도 한다. 2011년에도 야구팬들은 즐기고 환호하고 음미하고 감동하던 야구를 하루아침에 빼앗겼고, 항의 시위씩이나 벌이는 정성을 베풀고도 '폭도' 취급을 당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유형, 무형의 영역에서 자신의 주머니를 열어 상품을 소비하고 산업을 키워가는 팬들의 가치와 위상이 얼마나 무시되고 짓밟히는가를 보여주는 단면이며, 한국 프로야구 산업을 담당하고 있는 구단의 경영자들이 경영적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소비자에 대한 존중'을 망각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팬들이 야구를 즐기는 것은 단순한 홈런과 삼진과 승리와 패배의 순간을 목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야구를 보면서 매 순간 감정이입하고, 또 무언가를 상상하며, 느끼고 감동하고 개입한다. 그렇게 팬들이 공감하고 참여하고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진정성을 담을 때 한국프로야구가 성공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다.

먹자골목 '욕쟁이 할머니'마저도 고객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가지지 않고는 장사로 밥을 벌 수 없다. 각 구단이 프로야구라는 산업에서 별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팬들을 무시하고 모욕하며 수십 년째 쫓아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닌지, 30년째를 맞는 이 대목에서는 한 번 진지하게 짚어보고 넘어갈 때가 되었다.

김성근 감독 2000년대 후반, 김성근 감독의 SK와이번스는 늘 선두주자로 치고 나가며 한국야구계에 과제를 던지는 시험관이었다.

▲ 김성근 감독 2000년대 후반, 김성근 감독의 SK와이번스는 늘 선두주자로 치고 나가며 한국야구계에 과제를 던지는 시험관이었다. ⓒ SK 와이번스


김성근 선동열 로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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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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