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1백만 시대를 넘어 선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는 부족하기 그지없습니다. 개봉 당시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반두비>와 <로니를 찾아서>, 그 이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지원했던 인권영화 <여섯 번째 시선>의 여섯 번째 작품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정도입니다.

당찬 여고생 민서와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카림의 만남과 소통을 통해 '관계'에 대해 해학적으로 고찰한 <반두비>는 평단의 상찬과 달리 일부 관객들로부터는 뭇매를 맞았습니다. 한국의 '고딩'이 백인이 아닌 거무튀튀한 동남아 노동자에게 먼저 키스하고 사랑 고백을 해서인지 불타는 적개심으로 영화를 매도했습니다. 모든 영화는 본질적으로 아방가르드인데도 말입니다.

절박한 이주노동자 문제가 희화화되지 않을까 걱정

 작은 키에 동남아스런 외모로 인해 태식은 입사시험을 치는 족족 떨어진 뒤 고향친구 용철이 운영하는 노래방에서 기식하며 백수로 지낸다.

작은 키에 동남아스런 외모로 인해 태식은 입사시험을 치는 족족 떨어진 뒤 고향친구 용철이 운영하는 노래방에서 기식하며 백수로 지낸다. ⓒ (주)상상역엔터테인먼트


그래서일까요? <방가? 방가!>를 연출한 기자 출신의 육상효 감독은 "이주노동자가 나오는 영화들은 리얼리즘계 영화로 손가락이 잘리거나 강간당하는 영화였던 것 같다"면서 "외국인이 처한 사회·경제 상황을 이해하려하지 말고 친근한 사람,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받아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달마야, 서울 가자>로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전작처럼 이주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블랙 코미디로 풀어낸 감독의 가벼운 시선 덕에 그들에 대한 관객들의 적개심은 한층 누그러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영화에는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겪어야 하는 사회경제적 상황과 '차별의 리얼리즘'이 코믹하게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속 차별은 가해자의 눈으로 본 차별일 뿐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폭력적 현실을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해자가 자신의 과오를 씻긴 위한 일방적인 화해 제스처로서 비록 헐렁한 코미디 장르를 표방했다 할지라도 영화가 '반두비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읽힙니다.

<반두비>로부터 180도 전환하는 대목은 어려서부터 '동남아'란 별명을 끼고 산 덕분에 취직이 안 되던 태식(김인권)이 부탄 출신 노동자 방가 캬르키란 이름으로 안산 반월공단 의자공장에 위장취업한 뒤 베트남 여성노동자 장미(신현빈)와 사랑을 키워가는 '관계'입니다.

태식의 도움으로 단속반에게서 벗어난 장미는 고마운 마음을 잊지 못합니다. 하지만 장미의 목표는 한국 남자와 결혼하는 것, 태식에게도 한국 여자를 찾으라고 합니다. 장미와 같은 여성 이주노동자에게 '코리안 드림'은 한국남자와 결혼이라는 이 대목은 사실 <반두비>에서 민서와 카림의 불순한 관계를 정상적인(?) 관계로 복원해 놓은 것에 다름 아닐 테지요.

하지만 태식이 한국 남자이고, 그 사실이 밝혀지면 둘의 사랑이 결실을 맺을 수도 있다는 영화의 근거 없는 우월의식은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차별과 애환을 시종일관 가볍고 경쾌한 웃음코드로 만발시키는 영화의 시각과 반어적 표현방식은 자칫 한국사회 이주노동자 문제의 절박성을 희화화 시킬 수 있는 역기능에 빠져들게 하지 않을까, 사서 걱정하게 합니다.
 
이주노동자는 밥그릇 빼앗지도 한국 여자 넘보지도 않는다

 태식이 용철과 짜고 장미를 단속반에서 구해주자 졸지에 이주노동자들의 회장으로 추대된 뒤 이주노동자들을 상대로 한국의 욕설과 기원에 대해 배꼽 잡는 강의를 한다.

태식이 용철과 짜고 장미를 단속반에서 구해주자 졸지에 이주노동자들의 회장으로 추대된 뒤 이주노동자들을 상대로 한국의 욕설과 기원에 대해 배꼽 잡는 강의를 한다. ⓒ (주)상상역엔터테인먼트


5년여 백수 생활 끝에 위장 취업한 태식은 두 가지를 상징합니다. 먼저 '동남아스런' 외모 때문에 취업을 못하거나 불이익만 당하던 태식이 한국인 노동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면서 부탄 노동자로 취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통해 88만원 세대의 취업 스트레스와 조로 현상 등 절박한 현실을 빗댑니다.

회사 구내식당에서 깜박하고 한국인 노동자들 자리에 앉았다 쫓겨나는 '방가'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건재해 있는 한국 사회를 상징합니다. 피부색과 외모가 관계를 규정짓고 서열화시키는 한국사회의 순혈주의와 백인 콤플렉스가 동전의 양면을 이루면서도 대립 갈등하는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값싼 이주노동자들이 제격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민족주의적 배타성이 이주노동자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화로 자본과 상품이 국경 없이 이동하고 노동 또한 자본의 요구에 의해 자유로이 이주합니다. 더욱이 한국 경제는 이미 이주 노동자들 없이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인간이 아닌 노동력으로 분류되고 일상적인 차별과 인권유린에 시달립니다.

영화에서 사장 대리가 장미의 엉덩이를 시도 때도 없이 주무르며 성추행을 일삼고, 한국 노동자들은 야근을 자유롭게 선택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필수며, 현장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욕설이라고 이주노동자들조차 상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모습은 그 일단에 불과합니다.

상황이 이럴진대 최근에는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 판에 이주노동자가 '밥그릇'을 빼앗을 뿐 아니라 한술 더 떠 한국 여성을 넘본다는 선동도 들려옵니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입니다. 태식이 한국인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는 것을 본 이주노동자들이 '가라 민증'을 만들기 위해 회사에 임금을 요구하지만 이미 떼어 먹힌 상태입니다. 또한 사장대리가 장미의 엉덩이를 주무르는 것을 앞장서 막으려는 이는 한국 노동자들이 아니라 우즈베크 노동자 마이클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영화 속 마이클처럼 의식을 잃을 정도로 본드냄새가 진동을 하는 의자공장과 언제든지 손가락이 잘려나가 '손 무덤'을 차곡차곡 쌓는 프레스공장 아니면 지독한 화학약품으로 현기증과 구토를 달고사는 가죽공장이나 서서히 중금속에 중독되어 가는 도금공장에서 코리안드림을 꿈꾸고 있습니다. 88만원 세대의 일자리를 탐하거나 우리들의 밥그릇을 가로채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식대와 기숙사비를 임금에 포함시키는 '비전문 외국인력 정책 개선방안'이라는 것을 내놨습니다. 재벌대기업 위주 정책에서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이랍시고 내놓은 게 이주노동자 고혈짜기였던 것입니다. 지난 날 열사의 땅 중동에서 외화를 벌어들인 한국사회에 혹독한 이주노동자 정책은 과연 어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까요?

영화, 작고 진실하게 공동체를 만들라 한다

<방가? 방가!>가 동남아스런 외모의 태식이 이주노동자들과 낮은 차원의 연대의 꽃을 피우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렸다면, 한국 여성처럼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7년여 동안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던 네팔 여성이 있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의 실제 주인공 찬드라 구롱입니다. 섬유공장에서 '시다'로 일하던 찬드라는 돈이 없어진 줄도 모르고 공장 근처 식당에서 라면을 시켜 먹은 뒤 계산을 하지 못합니다. 식당 주인은 그녀를 경찰에 신고하고, 한국말을 더듬는 그녀를 경찰은 행려병자로 취급해 정신병원에 수감한 것입니다. 만약 찬드라가 영어를 하는 백인이었다고 해도 이랬을까요?

동남아인이거나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에 와서 일한다는 것만으로, 한국말을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편견과 차별의 대상으로 전락해 철저하게 인권이 짓밟히는 찬드라들이 지금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양산되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영화의 엔딩 장면. 법무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동단속반에 검거된 장미 일행이 우여곡절 끝에 이주노동자 노래대회에 참여해 그동안 용철의 노래방에서 생고생하며 연습했던 편승엽의 '찬찬찬'을 부르려 합니다. 하지만 알 반장이 고향 방글라데시에 두고 온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며 눈물만 흘리자 태식의 선창으로 애잔한 방글라데시 사랑가를 함께 부릅니다.

영화의 미덕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이주노동자들의 심정을 절절하게 담아낸 노랫말은 일순간에 코미디를 걷어내고 관객들을 훌쩍거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시상식에서 소동이 벌어지고 장미 일행이 도망치다 장미가 다시 붙잡힐 위기에 처하자, 태식이 몸을 날려 격투가 벌어지고 장미는 빠져나갑니다. 이주노동자들의 애환과 상처가 비로소 관객의 눈에 꽉 차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이주노동자들의 도시 안산 원곡동에서 찍었습니다. 1980년대 초부터 한국인 노동자들의 쪽방촌으로 형성된 원곡동은 이제 국경없는 마을이 되어 7만 이주노동자들과 75만 안산시민들이 어우러져 다문화시대를 꽃 피우고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방가 방가는 인터넷상에서 누리꾼들이 대화방에 들어와 반갑다는 의미로 나누는 인사말입니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코믹하게 다룬 영화를 관객들과 당사자인 이주노동자들이 불편한 마음 없이 방가 방가하며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사회는 언제쯤이나 올 수 있을까요?

영화들은 말합니다. 작게, 하지만 진실하게 시작하라고. <반두비>는 민서가 홀로 이태원에 있는 방글라데시 식당에서 방글라데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롱컷으로 찍으며 무반주 상태로 엔딩 크레딧을 올립니다. 카림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고난으로 가득찬 앞길에 굴복하지도 희망을 잃지도 않겠다는 듯이. 원망은커녕 못 배우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 한국에서 갚을 길 없는 신세를 졌다고 말한 찬드라가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듯이. <방가? 방가!>에서 태식과 장미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며 한 겨울 추위를 헤치고 파안대소하듯이.

이렇게 차별 대신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작은 노력들이 켜켜이 쌓일 때, 최소한 지난 2007년 여수 수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로 10명의 이주노동자가 죽고 17명이 중상을 입은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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