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우와 장정구
우리나라 프로 복싱사상 최다 방어 소유자 유명우 선수. 그는 W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으로 17차 방어에 성공하며 한국 복싱계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사람들은 당시에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이었던 장정구 선수가 유명우 선수의 라이벌로 기억하고 있다. 많은 권투팬들은 당시에 장정구와 유명우의 라이벌전이 성사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장정구 선수 역시 경량급에서 롱런가도를 달리며 15차 방어에 성공한 선수로, 복싱 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수였다. 이들이 비슷한 체급으로 라이벌이 되었을 수도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두 사람의 대결은 성사되지 못했다.
변칙 스타일의 장정구와 정통파로 여겨지는 유명우의 대결이 성사되었다면 아마 엄청났을 것이다. 4전 5기 신화의 주인공 홍수환의 말을 들어보면 홍수환이 1980년대 후반 유명우와 장정구의 대결을 추진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 두 사람에게 똑같이 1억원을 제시했지만 방송사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에 장정구는 KBS에, 유명우는 MBC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홍수환의 입장에서는 두 사람의 대결이 성사되었다면 우리나라 복싱이 한 단계 발전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만약 두 사람이 대결했더라면 승자는 이후 더욱 빛을 보는 반면, 패자는 라이벌전에서 패한 것에 대한 상처로 그 이후의 앞길이 순탄치 못했을 것이다.
라이벌전은 흥행의 빅카드는 되지만 대결 결과는 두 사람의 향후 인생에 있어서 상당한 전환점이 되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조심스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명우와 손오공
유명우가 막 신인티를 벗고서 세계 무대로 진입하기 전에 유명우의 라이벌은 손오공이라는 선수였다. 이들 둘이 서로를 의식해서 라이벌이 된 것이 아니라 언론에서 두 사람을 라이벌로 만들어 버렸다.
당시에 유명우는 동양챔피언으로 세계 정상에 도전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권투협회에서 흥행을 고려하여 당시에 강타자로 소문이 나 있는 신인왕 출신의 손오공과의 대결을 주선한 것이다. 소위 ‘도전자 결정전’.
유명우 선수는 당시로서는 권투협회가 억지로 대결을 추진한 것이라고 불만을 품고 있었지만 대결에 임해야 했다.
당시 언론이나 권투계에서 유명우 선수는 무패의 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펀치력이 약하다고 평가절하하고 있었다. 항상 판정으로 이기는 그가 KO시킬 펀치력이 없어서 만만한 상대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와 싸우겠다고 나서는 선수들이 많았다고 유명우 선수는 회고하고 있다.
당시에 손오공이라는 선수는 MBC 신인왕전 우수선수이고 상위랭커였으며, 국제경기도 많고 화끈한 경기를 펼쳐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경기 전까지 많은 전문가들은 손오공 선수의 승리를 예상할 정도로 펀치력을 인정받는 선수였다.
1985년 9월 8일, 유명우 선수와 손오공 선수는 세계 챔피언 도전자 결정을 위해서 서로 맞붙었다. 언론과 매스컴은 두 사람이 처음 대결하는 상황인데도 라이벌이라고 추켜세우며 흥행을 노렸다. 두 사람의 경기는 결과적으로 라이벌전답게 화끈한 난타전이 되었다.
이 경기에서 유명우 선수는 7회에 KO승을 거두며 도전자 자격을 획득하였다. 이후 유명우 선수는 세계 챔피언이 되고 롱런 가도를 달리며 불세출의 복서로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패한 손오공 선수는 복싱 팬들의 기억에서 빠르게 사라져갔다.
유명우 선수와 대결하기 전에 20전 19승(9KO) 1패를 기록하고 3연속 KO승을 거두며 경량급의 기대주로 주목을 받았던 손오공 선수는 이후 재기를 시도했지만 끝내 챔피언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28전 24승(11KO) 4패(1KO)를 기록하며 1988년을 끝으로 링을 떠났다.
빠르게 사라져간 복서 손오공
그는 어쩌면 한 차례 정도는 세계 타이틀에 도전할 법도 했지만 그에게는 세계 챔피언에 도전할 자격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다. 손오공과 대전을 치렀던 사람들 중에서 세 사람이 세계정상에 도전을 하는 행운을 차지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최문진으로 손오공과 1승 1패를 주고 받은 전력이 있다. 그는 유명우와 손오공의 대결이 있기 두 달 전에 먼저 당시 W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인 조이 올리보에게 도전했다. 결과는 15회 판정패였지만 최문진은 적어도 세계 타이틀전을 치렀다는 점에서 손오공보다는 행운아였다(최문진은 한국 챔피언을 역임했다).
다음 번 주인공은 유명우로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최문진을 꺾은 조이 올리보를 판정으로 누르며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고, 17차 방어까지 성공하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권투 선수로 인정받게 되었다.
세 번째 주인공은 정비원이다. 조금은 낯선 이 선수는 유명우에게 패한 직후 재기를 노리며 대결한 상대였다. 1985년 12월에 열린 이 경기에서 손오공은 판정 패했다. 정비원은 이듬해 무게감은 떨어지지만 IBF 세계 챔피언에 오르는 행운을 가졌다.
언론에서 만들어준 라이벌전, 승자는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기회의 대결이지만, 패자에게는 좌절을 안겨주는 절망이 될 수 있다. 손오공 선수에게는 한 차례 다가온 기회를 놓치면서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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