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아니라 드라마였다

[프로축구 대전 시티즌 1-0 수원 삼성]

6강에 갔다! 극적으로 6강 플레이오프에 오른 대전 시티즌 선수들이 관중에 인사하고 있다.
6강에 갔다!극적으로 6강 플레이오프에 오른 대전 시티즌 선수들이 관중에 인사하고 있다.이성필

"그러니까 고종수가 수원 시절에 김호 감독님이 키웠고 여러 가지 상황으로 대전에 온 거라고!"

"아 그래서 오늘 경기에 사람이 이렇게 많을 수밖에 없는 거구나."

 

14일 오후 대전월드컵경기장 매표소 앞. 대전팬 송장혁(31)씨는 2007 삼성 하우젠 K리그 26라운드 대전 시티즌-수원 삼성의 '라이벌' 겨루기에 대한 이야깃거리들을 열심히 친구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송씨뿐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두 팀의 인연을 놓고 많은 말이 오갔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경기장은 시작 세 시간 전부터 관중이 몰렸고 3만 8274명이라는 올 시즌 대전 홈경기 최다관중(7월 브라질 인터나치오날 친선경기 제외)을 기록했다. 대 관중에는 수원 서포터 그랑블루에서 스물 세대의 단체관람 버스로 응원을 온 것도 한 몫 했다.

 

대전에서는 평소에는 없었던 남자 장내아나운서까지 투입해 분위기를 배로 끌어올렸다. 관중도 아나운서의 한 마디에 호응하며 대전이 축구특별시로 손색이 없는 이유를 확실히 보여줬다. 반면 수원은 2천 여명에 달하는 팬들이 큰 목소리로 장내 아나운서와 대전 관중의 응원에 맞대응했다.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 대전의 6강 플레이오프 진입과 수원의 1위 역전 여부가 가려지는 경기라 서로 절박감은 너무나 컸다.

 

경기장 안팎은 이렇게 긴장과 흥분으로 넘쳤지만 김호 감독과 기자단이 만난 대전의 감독실은 다소 여유로웠다. 큰 경기를 여러 번 치러봐서 그런지 김호 감독은 "다른 경기와 다를 바 없다"며 웃어넘겼다. 그러면서도 음료수를 순식간 비워내며 "내가 오늘 왜 이러지요? 긴장했나? 음료수를 벌써 마셨네"라고 말해 취재진과 웃음을 같이하기도 했다.

 

모든 취재진은 고종수의 부활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김호 감독은 "고종수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 좀 더 노력해야 한다"며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전매특허인 프리킥도 골문에서 가까운 지역이 아닌 이상은 찰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자단과 대화를 마친 김 감독은 선수 대기실로 들어가 "이런 경기는 그냥 즐겨라. 그래야, 앞으로 큰 선수가 될 수 있다"며 선수에게 동기의식을 심어줬다. 그 말을 들은 대전 선수단은 그라운드로 몸을 풀러 나갔다. 고종수를 비롯한 선수단이 나오자 수원 팬들의 야유가 터져나왔다. 기선제압의 목소리였지만 고종수 앞에서는 작은 박수를 쳐주는 몇몇 수원 팬들도 보였고 야유 소리도 잦아 들었다.

 

경기에 몰린 관심  출입구의 줄이 긴 가운데 중국 음식을 시켜 경기장에 가지고 가는 수원 팬들이 눈에 띈다.
경기에 몰린 관심 출입구의 줄이 긴 가운데 중국 음식을 시켜 경기장에 가지고 가는 수원 팬들이 눈에 띈다.이성필

 

경기가 시작되고 고종수는 감각적인 힐패스를 선보이며 대전 팬들을 열광시켰다. 지난해 대전에서 수원으로 이적해 이번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 이관우도 예리한 코너킥으로 골문을 위협했다. 경기는 빠르게 전개됐고 전반전은 혈투 속에 0-0으로 종료됐다.

 

하프타임, 대전의 선수 대기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넘쳤다. 더불어 몇몇 선수들은 대구FC가 FC서울에 1-0으로 이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승리에 대한 의욕이 더욱 불타올랐다. 그 중에는 올 시즌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수비수 김형일도 있었다. 그는 정신없는 가운데 그라운드에서 장내 아나운서가 "골을 넣으면 대전이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래 조금만 더 잘하자"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결국, 후반 15분 외국인 공격수 슈바가 득점에 성공, 서울에 다득점에서 앞서게 됐고 대전은 이 골을 잘 지켜 승리해 극적인 6강 진출이라는 드라마를 만들었다. 반면 수원은 패하며 성남 일화에 정규리그 우승을 내주고 2위로 정규리그를 마감해야 했다.     

 

대전 선수들은 그라운드를 돌며 관중과 기쁨을 같이했다. 골키퍼 최은성은 "반신반의했는데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형일도 "형들이 하도 6강, 6강을 말해서 뭔지는 잘 몰랐지만 무조건 하자는 생각을 했는데 너무 기쁘다"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최고의 마법사가 된 김호 감독은 마이크를 잡고 관중에게 "대전을 더욱 사랑해 달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대전이 아직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을 팬들에게 주지시킨 것이다. 6강에 진출한 대전은 오는 21일 3위 울산과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된다.

 

그라운드 밖, 선수단 차량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대전 팬들이 몰려왔다. 경찰이 에워싸 서로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이들은 선수 이름을 하나하나 외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전임 최윤겸 감독과 이영익 코치 간의 폭력 사태에 프런트 개혁까지 외치며 어수선한 팀과 운명을 같이했던 그들이기에 극적인 6강 플레이오프는 이들에게 믿어지지 않는 드라마였다.

 

대전 서포터 이현민(24)씨는 "경기 도중 대구 서포터와 연락을 취해 제발 서울을 이겨 달라고 부탁했다. 밤잠을 설치며 이 경기를 기다렸는데 결과가 너무나 좋게 나와서 감독과 선수단에 고맙다. 이제 시험공부하러 가야겠다"고 기쁨을 표현했다.

 

극적인 드라마가 연출된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다시 경기가 열리려면 결승전에 올라가야 한다. 김호 감독과 선수들이 보여 준 경기장의 흥분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해답은 없지만 상위로 올라가기 위한 것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에 모두가 동의한다. 그 가운데 김호 감독과 대전 선수들, 팬들이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있다.     

2007.10.14 19:32 ⓒ 2007 OhmyNews
대전 시티즌 수원 삼성 6강 플레이오프 프로축구 고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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