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를 떠난 <디 워>

올해 내내 할리우드영화에 내몰렸던 한국영화의 대반격이라며 연일 매스컴의 지원을 받고 있는 두 영화가 있다. <화려한 휴가>와 <디 워>. 전자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팩션(사실을 근거로 한 허구)영화이고 후자는 신화적 소재를 중심으로 한 철저한 판타지 영화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일방적 공세에 밀리지 않고 한국영화가 선전을 한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굳이 민족주의적 시각에서가 아니라 문화는 무언가가 독주할 때 문화가 가지는 다양한 생명력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짚어볼 문제들이 몇 가지 있다.

▲ 화려한 휴가
ⓒ 기획시대
우선 <화려한 휴가>는 100억의 제작비를 들인 대작이자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영화이며, 현재 600만 관객을 넘어서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또 대구출신의 감독이 만들어 전두환의 출신학교(종로초등학교) 바로 옆에 위치한 극장에서 전국에서 가장 먼저 새벽 12시 경에 개봉을 했다는 사실도 흥미롭고 그 학교 후배이자 전두환 생가를 방화했던 필자가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는 것도 변화된 시대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1980년 5월 시민군의 홍보부장으로 투사회보를 만들며 도청에서 최후를 맞이한 윤상원 열사를 주인공으로 이경영씨가 열연하고 이정국 감독이 연출했던 <부활의 노래>(1990)가 검열에 시달리며 소수의 영화관에서 개봉한 사실에 비하면 100억의 제작비와 500개가 넘는 개봉관을 확보한 <화려한 휴가>는 분명 민주화투쟁의 화려한 산물이다.

그러나 여전히 29만원으로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이 있고 그의 초상화가 학교를 빛낸 인물로 올라있는 현실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수년 전 필자가 초등학교에 들러 교정을 걷다 건물로 들어서서 복도에 걸려진 그의 사진을 보고 경악했던 일이 새삼 떠오른다.

<화려한 휴가>의 제작자 기획시대 유인택 대표의 형인 유인태 참여정부 초대 정무수석이 2004년 설에 전두환에게 세배를 올렸다는 사실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든다. 이쯤 되면 시대는 변했으나 진정성은 제대로 확보되지 않고 민주화가 그 때 그 때 유행하는 트랜드로만 존재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외형적 사실과 함께 <화려한 휴가>내부를 들여다보면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작품성이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기존의 한국영화에 비해 발전한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980년 광주라는 현실이 영화를 압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영화적 연출의 흔적이 매우 옅어 보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연출의 실종 또는 휴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흥행에 대한 압박으로 인한 지나친 대중성에 대한 의식 때문인지 광주는 분명 한국현대사를 가르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사건임에도 정치성을 너무 배제한 나머지 시민군이 봉기한 동기부여도 매우 단순하고 불분명하며 역사적 일면의 나열에만 그친 아쉬움이 크다. 그러다보니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도 설득력이 떨어지고 중간 중간 보이는 멜로적 요소와 코믹적 요소가 콜라주를 한 것처럼 적당히 찍어 붙여놓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진정성과 영화 연출의 부조화라는 측면에서 <화려한 휴가>는 어떤 면에서 광주를 다루었지만 그로 인해 광주민주화운동에 상당히 빚을 진 영화가 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부활의 노래>나 <꽃잎> <박하사탕>등에서 그려진 광주의 모습에 비해 스케일은 커졌지만 심도 깊은 성찰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역사적 사실에 접근하는 영화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한국영화의 과제로 남겨두고 <화려한 휴가>의 공과 과를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럼 다음으로 <화려한 휴가>보다 더 화려하게 전국을 강타한 <디 워>를 살펴보자. 사실 <디 워>는 영화 자체보다는 심형래라는 개인의 성공기(?)가 더 중요한 영화처럼 보인다. 이무기가 주인공이 아니라 심형래 감독이 주인공인 영화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다 아시다시피 CG기술의 일정한 성취와 심형래 감독의 장인정신 등을 긍정적 요소로 취급한다 해도 마치 할리우드에 맞설 한국영화의 대안인 양 비춰지는 모습 등은 비이성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스토리와 연기의 부재는 이미 예견된 것인데 엄청난 성취도 아니고 단지 그래픽기술의 일정한 진전만으로 일방적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일부 네티즌들은 한국영화계에 대한 비판과 <디 워>에 대한 지지를 혼동하고 있는 듯 보인다. 스크린쿼터사수가 한국영화의 질적 향상을 꾀하지 않고 안일하게 자신들의 이권만을 지키려는 영화인들의 이기적 태도라고 보면서 '<디 워>야말로 현실을 핑계대지 않고 할리우드에 정면승부를 건 쾌거'라는 주장에 이르면 논리의 비약과 적절하지 못한 비유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꼼꼼히 들여다보면 어쩌면 <디 워>는 할리우드에 정면승부를 건다기보다는 <용가리>때처럼 미국의 비디오시장을 노린 상품으로 보인다. 절절한 미국에 대한 동경과 사대주의적 발상에서 기획한 영화가 애국주의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기획은 사대주의요 마케팅은 애국주의라는 엇박자가 우리의 대안이 될 수는 없지 않을까?

<디 워>가 게임 타이틀이었다면 모를까 적어도 영화라면 영화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에 대한 정당한 분석속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한국현대사를 겪으며 우리 국민이 가졌던 좌절감과 박탈감을 <디 워>라는 영화 한 편이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님에도 알 수 없는 퇴행적 민족주의가 영화예술의 보편성과 이성적 사고를 가로막고 있다.

찬찬히 살펴보면 심형래 감독은 철저한 개인 비즈니스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마치 대단한 공익적 가치를 위해 인생을 헌신한 것처럼 떠받드는 것은 우리가 열어나갈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인 나머지 앞뒤 재어보지 않고 무언가를 붙잡고 기도하는 꼴이다.

필자 역시 독립영화를 하는 사람이므로 현재의 충무로영화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적 태도를 취해온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의 <디 워>열풍처럼 기존의 한국영화에 대한 비판이 <디 워>에 대한 묻지마식 지지로 이어지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충무로가 가진 약점과 잘못된 관행은 바꾸어나가야 하지만, 현재의 한국영화계가 심형래 감독의 한풀이대상이 되어야할 이유는 없다. 거기에 이성적 판단 없이 일방적 지지를 보내는 것은 더 더욱 바람직하지 못하다.

심형래 감독은 주류영화계로부터 언제나 무시당했다며 하소연하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영화적 성취를 그다지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인정만 받고자 하는 것도 좋은 태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만들어 온 영화들이 일정한 대중적 성취를 이루었을지는 몰라도 예술적 성취를 이룬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있는 것일 뿐이다.

영화적 취향이 다를 순 있어도 임권택 감독을 거장이라고 하고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김기덕 감독과 같은 사람들을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라 부르고 일정한 존경을 보내는 것은 그만한 예술적 성취와 그들이 걸어온 길의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지 객관적 근거가 아주 박약한 상황에서 주류 영화계가 자신을 폄하했다고 항변하는 것은 <디 워>에 대한 마케팅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영화계의 지지를 받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디 워>를 통해 심형래 감독은 많은 성취를 이룬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성취에 대한 평가도 다양할뿐더러 우리 영화가 나아가야할 길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도 현실이다.

심형래감독은 1999년에 신지식인 1호라 불려지며 이런 말을 했다.

"모두들 제가 순수 국내기술로 SF영화를 만들겠다고 하니까 웃더군요. 못해서 안하는 게 아니라 안하니까 못하는 겁니다."

그 때 필자는 그럴 자격이 전혀 없음에도 이런 패러디를 모인터넷신문에 올렸다. <산지식인 1호 윤상원>-"계엄군은 제가 투사회보를 만들며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하자 총을 쏘더군요. 민주주의는 이룰 수 없어 안하는 게 아니라 안 하니까 이루어지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의문을 던지며 이런 견해를 밝혔다.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결과가 달라도 가치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삶의 가치는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디 워>가 화려한 휴가를 떠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미국보다 더한 신자유주의의 광풍을 몰고 다닌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삶은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으로 재단되는 그런 단순한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를 문화로 보지 못하고 "부가 곧 선이다"라는 천박한 논리에 두 눈을 감고 영화에 접근할 때 우리는 삶의 휴가가 아니라 인생의 실종이라는 냉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07-08-29 10:14 ⓒ 2007 OhmyNews
디 워 화려한 휴가 전두환 남태우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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